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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y 27. 2024

문제의 궁극적 근원은 대부분 어떤 사람의 욕망이다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지난 글에 이어서 <대체 뭐가 문제야> 16장 '일을 만드는 사람과 공을 가져가는 사람'을 다루며 전과 같이 중요하게 느낀 점 세 가지를 묻고 따지는 글입니다.

궁극적 근원이라는 함정

누가 문제를 정하는가?

그들의 욕망과 나의 일은 거리가 멀다


궁극적 근원이라는 함정

이상하게도 우리는 '궁극적인' 혹은 '본질적인'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자주 합니다.

요약하면, 문제의 '궁극적인' 근원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문제 해결사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왕, 대통령 혹은 학장과 같은 사람들이 문제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제가 ‘이상하게도'라고 여기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을 듯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문제는 대부분 사람에게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말해 왔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보면 <끝없는 사슬로 나타나는 문제>를 두고도 <올바른 정의를 찾는 것은 문제 해결사의 의무다>라고 강조합니다. 끝없는 순환인데, 어떻게 올바른 정의를 찾을까요? <문제의 본질, 허상의 문제 그리고 유머 감각>을 쓸 때 눈치를 챌 수 있었습니다.

위 그림을 보죠. 이렇게 가정을 해 보겠습니다.

둘 중에 힘이 센 사람이 문제를 정하고 키울 수 있다면?


위 가정에 대해 고민한 후에 다음 포기말을 읽는다면 안 보이던 것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정직한 스위스 노동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군축회의를 아침 6시 30분에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아니면 부드러운 가죽 의자 대신에 딱딱한 나무 의자를 놓는다면? 아니면 제네바의 르 세나에서 옹블 슈발리에와 포메 앙글라세를 먹는 대신, 애크론 드라이브인 같은 곳에서 냉동 생선 토막과 축축한 감자칩을 식사 대신 먹는다면?

저는 과거에 욕망이란 것을 염두하지 않고 읽었을 때와 지금의 저의 이해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한편, 2022년 이 책을 읽을 때 남겨 두었던 기록에서 또 다른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호통을 치지만 별 의미 없는 권위적인 행위들을 접할 때마다

감정이 일어날 때 조심할 수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 만든 관성에 빠져서 새롭게 부여된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란 점입니다.


누가 문제를 정하는가?

쿠데타가 벌어진 이유를 명료하게 설명하는 듯한 다발말[1]입니다.

어떤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군대의 행진이 거기서 멈추어 버리지도 않는다. 그들은 멈추어 있는 군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멈추어 있는 군대들은 그들 고유의 역량을 발휘할 만한 국내 문제들을 찾아내곤 한다.

실마리를 잡기 위한 포기말[2]이 있습니다.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리고 의미심장한 다발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일을 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 할 일을 만드는 사람. 일을 만드는 사람들을 멀리 하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

멀리 하라는 교훈을 보면서 개발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그림이 떠오릅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뜨끔한 생각이 들어 반성해 봅니다. 그랬더니 OKR 따위를 이용한 목표와 비전 정렬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과거에 개발케이스를 만들어 프로젝트의 혼란을 단번에 정리했던 일도 기억납니다.

그랬더니 다음 포기말이 전하려는 의미도 좀 더 풍부해지는 듯합니다.

단지 문제 해결 과정, 사람, 조직 자체가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기본적인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뿐이다.


한편, 20년 전에 읽었던 <책문>을 읽을 때는 과거 제도에 대해 찬양한 저자의 관점에 빠져서 왕만이 문제를 내는 사회구조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더불어 다스뵈이다 310회에서 박구용 교수님이 당원 주도로 바뀌고 있는 민주당의 변모에 대해 했던 강의 내용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당원들이 국회의원들에게 자신들의 문제 혹은 우리의 문제를 내는 상황입니다. 놀라운 변화를 모르고 살았구나 싶습니다.


그들의 욕망과 나의 일은 거리가 멀다

다시 책 내용을 인용합니다. 흥미로운 다발말입니다.

그렇게 하기가 겁나는가? 겁낼 필요 없다. 일을 만드는 사람들은 당신이 뭘 하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좋아할 것이다.

제가 흥미를 느낀 결정적 요인은 바로 위 다발말에 나온 교훈을 깨닫고 실제로 행동으로 실천한 두 명의 지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이 책을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 데에는 분명 최봉영 선생님을 통해 배운 욕망에 대한 깨우침이 작용합니다.

나의 욕망과 나의 계약(고용 계약)과 나의 신념 그리고 고용주의 욕망과 동료와의 신의, 협업 결과물 따위를 분명히 인지하고 차릴 수 있다면 일에 대한 정의는 더욱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6. 올바른 정의를 찾는 것은 문제 해결사의 의무다

17. 변화 속에서 차원을 달리할 수 있게 해 주는 로드맵

18. 나만의 스코어보드가 없다면 실패하는 투자다

19. 불편을 겪는 사람의 문제가 되게 하라

20. 허상의 문제로 다루는 힘 그리고 유머라는 지능의 날개

21. 누구를 불편하게 할 것인가? 그것이 내 문제라면?

22. 가치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23. 고통을 다루는 방법: 욕심과 고통과 임자를 연결시키기

24. 고통과 행복은 언제나 변하는 유기물적인 것이다

25. 메타 인지, 본성의 무관심성 그리고 실천적으로 바라보기

26. 문제의 근원은 대부분 당신 안에 있다

27.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게 하는 힘

28. 어떻게 내가 무엇을 모른다는 것을 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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