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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y 20. 2024

메타 인지, 본성의 무관심성 그리고 실천적으로 바라보기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이 글은 <누구를 불편하게 할 것인가? 그것이 내 문제라면?>에 이어서 <대체 뭐가 문제야> 14장 '재닛 자워스키, 손을 부르르 떨다'를 다루며 전과 같이 중요하게 느낀 점 세 가지를 더 묻고 따지는 글입니다.

인식, 인지와 메타 인지

본성의 무관심성

운명의 기로와 실천적으로 바라보기


인식(認識)과 인지(認知)

다음 포기말[1]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개념은 '인식'이었습니다.

현 상황에서 모든 것을 관료주의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그것은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사람의 본성이 그렇기 때문에 별도리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

아마도 <같은 현상도 서로 다른 일로 인식할 수 있으니 차리기>를 쓰면서 인용한 다음 그림을 다른 글에서도 여러 차례 인용하면서 생긴 습관이자 현상일 듯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 시청한 박구용 교수님 강의 영상[2]에서 인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머릿속에서 '인지와 인식은 어떤 관계지?'라고 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외부로부터 자극이 올 때, 정보 처리를 하는 방식, 과정과 태도를 말한다. 비유적으로 메모리와 CPU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글을 쓰는 상황이 왔으니 사전에서 두 단어를 찾아보며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실천하겠습니다. 먼저 인식의 풀이입니다. 認(알 인)과 識(알 식)이 합쳐진 낱말입니다.

「1」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

박구용 교수님은 다룬 심리학적 맥락의 풀이도 함께 봅니다.

「2」 『심리』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 지각, 기억, 상상, 개념, 판단, 추리를 포함하여 무엇을 안다는 것을 나타내는 포괄적인 용어로 쓴다. =인지.

국립국어원은 인지와 인식을 같은 것으로 보나요? 그렇네요. 인지의 풀이를 찾아보니 첫 풀이는 다릅니다.

「1」 어떤 사실을 인정하여 앎.

하지만, 세 번째 풀이는 정확하게 같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씨말 구성도 뒷 글자 知 다르지만 '알 지'자로 뜻은 識(알 식)과 같습니다.[3]

「3」 『심리』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 지각, 기억, 상상, 개념, 판단, 추리를 포함하여 무엇을 안다는 것을 나타내는 포괄적인 용어로 쓴다. ≒인식.


인지(認知)와 메타 인지

박구용 교수님 강의를 들으면 메타 인지와 자기 객관화 능력을 연결합니다. 개괄적으로 말하면 인지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인지할 수 있어야 자기 객관화가 가능하다는 논리죠. 그 내용을 <대체 뭐가 문제야>와도 연결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인간사회 문제는 욕망을 빼고 정의할 수 없다>에서 다룬 다음 질문은 이렇게 객관화로 가는 혹은 메타 인지를 부르는 순간을 '정신적인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그리하여 다음 질문은 정신적인 전환을 부르는 질문이 되는 것이죠.

누구의 문제인가?


당시 제가 사례로 그렸던 아래와 같은 그림 안에 저 자신도 넣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는 자기 객관화가 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본성의 무관심성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자기 객관화를 하는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본성의 무관심성이다. 문제를 사람이나 실제 사물, 행위의 탓으로 돌릴 때는 문제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책에서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자연의 본성은 간사하지만 악의는 없다.'

그리고 훌륭한 해석을 제시하죠.

자연의 본성은 우리 혹은 우리의 문제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2022년 4월 이 책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읽을 때 마침 <단위로 읽는 세상>을 읽을 때라 다음 구절을 인용한 바 있습니다.

재해라는 표현에는 ‘일어나지 않으면 좋았을’ 혹은 ‘얼어나지 않아야 할’ 현상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자연현상을 아주 인간중심적으로 파악한 표현에 불과하다. <중략> 어느 것이건 자연의 일상적 움직임 중 하나다.


운명의 기로와 실천적으로 바라보기

저는 당시(2022년)에 또 다음 다발말[4]을 읽을 때 '운명의 기로'라고 메모했습니다.

비자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재닛은 자신이 이 모든 혼란을 관료주의에 돌리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재닛이 그 유혹에 굴복했더라면 그녀가 평생 저축해 모은 돈으로 준비한 이 여행을 운명의 손에 맡기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운명은 본성의 또 다른 이름이며, 행동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가장 흔한 핑곗거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운명의 기로가 다름 아니라 <누구를 불편하게 할 것인가? 그것이 내 문제라면?>에서 '실천적으로 바라보기'라고 표현했던 관점 전환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마침 어제 읽은 <감정의 발견>에서 만난 촌철살인 포기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감정은 일종의 정보이다.


부연 설명을 위해 <감정의 발견> 내용 일부를 조금 더 인용해 봅니다.

한 개인이 무언가를 경험할 때 내면에서 어떤 메시지가 발생하는지를 전하는 뉴스 보도와 비슷하다. 이 정보에 접근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면 가장 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한편, 더 이전인 2020년 또 다른 동료들과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아래 포기말을 두고 '해결 가능한 실마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어쨌든 문제는 본성의 영역을 벗어나 건설적인 사고와 단호한 행동이 가능한 영역으로 옮겨졌다.

당시에 스스로 '실마리를 찾았으니 신날까?'라고 동료들에게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신나는 일을 찾는다면 자신의 욕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신이 나지 않는다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설사 이를 문제로 정의하고 해법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추진력을 찾지 못하는 탁상공론에 머물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단호한 행동이 가능한  영역으로 옮기는 일'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것은 <나만 잘하면 전체가 나아지는 XP>에 진입하는 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포기말을 또 다른 정신적인 전환을 부르는 질문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내 문제라면?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매불쇼 영상 약 16분경 이후부터 등장합니다.

[3] 한자 사전을 찾아 識(알 식)과 知(알지)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4]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1. 문제에 대한 공감대, 문제의 역동성과 본질

12. 문제의 본질, 허상의 문제 그리고 유머 감각

13. 끝없는 사슬로 나타나는 문제

14. 부적합을 발견하지 못하다

15. 문제의 본질 파악하기

16. 올바른 정의를 찾는 것은 문제 해결사의 의무다

17. 변화 속에서 차원을 달리할 수 있게 해 주는 로드맵

18. 나만의 스코어보드가 없다면 실패하는 투자다

19. 불편을 겪는 사람의 문제가 되게 하라

20. 허상의 문제로 다루는 힘 그리고 유머라는 지능의 날개

21. 누구를 불편하게 할 것인가? 그것이 내 문제라면?

22. 가치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23. 고통을 다루는 방법: 욕심과 고통과 임자를 연결시키기

24. 고통과 행복은 언제나 변하는 유기물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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