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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y 19. 2024

고통과 행복은 언제나 변하는 유기물적인 것이다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지난 글에 이어 틱낫한의 <고요히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의 1장 <고통을 다루는 방법>을 읽고 제 삶을 위해 쓰는 글입니다.


호기심을 활용하여 시행착오가 주는 고통을 변용하기

알듯 말듯한 다발말[1]입니다.

행복은 오늘, 바로 지금 가능합니다. - 단, 그것은 고통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행복해지려면 그 외 모든 고통을 피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끊임없이 경계하고, 끊임없이 걱정합니다. <중략> 아픔을 인식하고 그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결국 알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 말한 대로 '행복의 기술'이 있다면, '오늘, 바로 지금 가능'해야 익힐 가치가 높아질 것입니다. 제약사항이 많다면 덜 유용하겠죠. 고통을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이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이 낯설고 꺼려지는 탓에 알듯 말듯하다 여기는 듯합니다. 동시에 <고통스러움과 두려움 없는 삶>에 썼듯이 저를 성장시킨 좌절[2]을 기억하기 때문에 내용을 부정하거나 전혀 모른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한편, 고통을 작은 고통으로 한정하면 '시행착오'라 부를 수 있고, 저의 한때 저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아기 발걸음'과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지난 시간 배운 내용을 더해 볼까요? 추진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욕심'으로 호기심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사고 모형으로 세운 가정에 맞춰서 의도된 시행착오를 만들면 아픔을 줄일 수 있습니다. 혹시 이 과정이 변용과 연관성이 있을까요?


인지적 공감에서 행복의 기술로

다음 포기말[3]을 보겠습니다.

고통을 잘 겪어 내고 행복하기 위한 길은 지금 이 순간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지하고 그것과 긴밀히 교감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감지하고 그것과 긴밀히 교감하는 것'이라는 매듭말[4]을 볼 때 두 가지 사례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지난 시간에도 인용했던 장면 즉, 씻는 대상을 충분히 감지하고 느끼는 일을 통해 '내 경험 속에 내가 현존하기'입니다.

두 번째는 <당신이 옳다>에서 배운 인지적 공감입니다.

우연이 만들어 준 길이지만, 세 번째 읽은 <당신이 옳다>에서 당장 배울 수 있는 부분은 고갈된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서 <고요히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 내용이 더 효과적이란 확신이 듭니다. 그러니 이제는 '행복의 기술'을 익힐 때인가 봅니다.


무상(無常): 언제나 변하는 유기물적인 성질

의미심장한 다발말입니다.

고통과 행복 모두 본질적으로 유기물적인 성질을 갖습니다. 양쪽 모두 무상합니다. 언제나 변한다는 뜻입니다. 여기 아름다운 꽃이 한 송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들어 버리면, 그것은 비료가 됩니다.

'유기물적인 성질'이란 표현은 저의 관심사[5]를 직격하는 특징이라 자주 쓰는 표현인 '유기체'와 같은 뜻인 탓입니다. 바로 몇 시간 전에도 곧 있을 개발자 행사 발표 자료에 '유기체'의 특징을 설명하고 활용법을 제안하는 내용이 있었던 터라 절묘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잠시 무상의 풀이를 찾아봅니다. 無(없을 무)와 常(항상 상)이 만난 낱말입니다.

「2」 일정하지 않고 늘 변함.

다시 한번 일상(日常)을 떠올려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상의 사전 풀이는 다음과 같지만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그 일상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변하는 無常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日을 '날마다'로 읽지 말고, '해를 닮아서 뻗어나가는 삶의 살'로 비유하면 日常은 전혀 다른 뜻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반전을 위해서 필요한 태도를 포함한 말이 '다정한 전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행복도 유기물적이고 유한하다

한 대 맞은 느낌이 드는 다발말입니다.

행복 또한 이와 같이 유기물적이고 본질적으로 유한합니다. 그것은 고통이 되었다가 다시금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행복도 유기물적이라니! 그러나, 인간에게 비롯한 것이니 유기물이 아닐 수가 없을 듯합니다.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물질이 아니라 우리 생명과 함께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고통이 되었다가 행복이 될 수 있다니요? 어떻게 그럴까요? 최근 과거 아내에게 소홀했던 시간을 후회했던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촉매가 된 사건은 행복한 순간일 때도 있고, 고통인 순간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네요. 바로 공감할 수 있습니다.


다음 다발말도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을 펼치게 합니다.

계속해서 꽃을 깊이 들여다본다면, 많은 다른 것들도 발견됩니다. 가령 토양과 광물질도 있겠지요. 그것들 없이 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꽃은 꽃이 아닌 여러 요소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사실이 됩니다.

첫 포기말(문장)은 다년간 묻따풀 활동을 해 온 덕분에 익숙해진 '바탕 차림'을 통해 알게 된 얼개로, 다른 말로 하면 '쪽인 나'로 존재하는 양상입니다. 하지만, 마치 빙산의 아랫부분처럼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진흙탕에 빠져 압도되도록 허락하지 않기

두 번째 포기말을 읽을 때면 '꽃은 꽃이 아닌 여러 요소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바로 유기체의 특징이란 사실을 배웁니다. 그렇다면 행복 역시도 행복으로 그대로 존재하고 있지는 않겠죠. 어딘가로 나아가서 온전히 '행복의 형태로 존재하는 행복'을 찾으려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 틀림없습니다.


무심히 읽던 다음 포기말은 최근의 '진흙탕' 경험을 소환했습니다.

살면서 인생의 '진흙' 속에 처박히는 경우는 물론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다섯 번째 좌절로 부를 수 있는 그 경험 속에서 저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으로 내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라고 스스로 선언한 일이 떠올랐습니다.

수행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절망에 스스로 압도되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면 압도되기 직전에 가까스로 취한 행동에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면 다음 포기말에 희망을 품게 됩니다.

자신의 고통, 나아가 세상의 고통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달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글이 길어져서 여기서 멈춥니다. 다음 글까지 1장 <고통을 다루는 방법>을 다루겠습니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실천으로 사전을 찾아봅니다. 挫(꺾을 좌)와 折(꺾을 절)이 합쳐진 낱말입니다.

「1」 마음이나 기운이 꺾임. ≒좌돈, 최절.

[3]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4]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어구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매듭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5] 명시적으로 표현해 본 적은 없기에 즉시 써 보자고 시도하니, '소프트웨어 설계 혹은 구성' 그리고 '조직과 구성원의 협업' 따위가 떠올랐습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1. 문제에 대한 공감대, 문제의 역동성과 본질

12. 문제의 본질, 허상의 문제 그리고 유머 감각

13. 끝없는 사슬로 나타나는 문제

14. 부적합을 발견하지 못하다

15. 문제의 본질 파악하기

16. 올바른 정의를 찾는 것은 문제 해결사의 의무다

17. 변화 속에서 차원을 달리할 수 있게 해 주는 로드맵

18. 나만의 스코어보드가 없다면 실패하는 투자다

19. 불편을 겪는 사람의 문제가 되게 하라

20. 허상의 문제로 다루는 힘 그리고 유머라는 지능의 날개

21. 누구를 불편하게 할 것인가? 그것이 내 문제라면?

22. 가치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23. 고통을 다루는 방법: 욕심과 고통과 임자를 연결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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