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 책의 '09. 성미' 내용을 묻고 따지고 풀어봅니다.
다음 포기말[1]은 분명히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은 사람이 저마다 갖고 있는 맛을 '인간미人間味'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전에도 등록된 단어입니다. 한편 그 풀이를 보면 흥미味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인간다운 따뜻한 맛.
인간다움이라는 잣대가 바탕에 있고, 잣대를 충족할수록 '따뜻하다'라고 느낀다는 점입니다. 인간미가 하나의 잣대라고 한다면 개성을 두고 인간미로 보는 말이 '성미性味'라 하겠습니다.
한국인은 사람마다 맛을 가르고 가리는 나름의 성질을 '성미性味'라고 일컫는다. 성미는 '성품으로 빚어진 맛 또는 맛깔'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성미 역시 사전에 있고,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성질, 마음씨, 비위, 버릇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중국에 갔을 때, '質量'이라는 단어가 도처에 붙어 있어 의아했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인간미와 성미라는 낱말은 중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낱말이다.
알고 보니 중국말 '質量'은 우리말 '품질'을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최봉영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과 글을 구분하는 일은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한글과 한국말이 어떻게 다른 지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자를 쓴다고 해서 한자로 만들어진 말을 똑같이 쓰지는 않습니다. 영어도 그러할 텐데. 우리만 쓰는 영어 표현을 '콩글리쉬'로 폄하하던 기억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급하게 충조평판 하기에 앞서 한국인이 말을 만들어 쓰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일이 최봉영 선생님을 뵙기 전에는 없었습니다.
우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다발말[2]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갖가지 것들을 맛보는 과정을 통해 본성이 습성으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저마다 나름대로 성미를 형성한다. 성미는 맛에 대한 이끌림으로써 한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내는 핵심이다.
첫 포기말을 읽어나갈 때 가장 먼저 <우리는 처음부터 개성을 가진 존재다>에 담았던 아이 사진을 볼 때의 제 느낌이 그대로 살아났습니다. 개성의 소중함을 깨닫고, 스스로 분명히 하기 위해 글을 쓴 내용이죠.
'알려준다'는 나의 욕심을 앞세워서 '갖가지 것들을 맛보는 과정'을 침해하는 모습은 바로 '충조평판'이 주를 이루는 현대 사회의 대화 속에도 그대로 살아 숨을 쉽니다.
그렇게 개성을 인정해 줄 때 비로소 '본성이 습성으로 드러나는 과정'이 제대로 일어납니다. 한편, 본성이 습성으로 드러나는 과정이라는 매듭말[3]을 보니 중국에서 처음 찾아본 공부의 한자가 떠오릅니다.
그 후 5년이 지난 다음에야 썼던 <배움의 순간: 공부란 무엇인가?>이란 글을 쓰며 새긴 내용 그리고 최근 페북에 올린 글에 담긴 2015년의 추억도 소환됩니다.
한편, 다음 포기말에서 지난 시간의 흥미와 재미를 넘어 의미意味를 만납니다.
의미는 사람이 뜻을 맛으로 담아냄을 .... 말한다.
내용이 길어져 의미란 낱말을 볼 때 떠올린 느낌과 생각에 대해 기록하고 나머지 내용에 대한 풀이는 다음 글로 넘깁니다. 먼저 사전 풀이를 봅니다.
「1」 말이나 글의 뜻.
「2」 행위나 현상이 지닌 뜻.
「3」 사물이나 현상의 가치.
순환 참조로 느껴지는 내용을 보면 하나의 패턴이 보이는 듯합니다. 뜻은 씨말 意(뜻 의)와 일치합니다. 그런데 세 번째 풀이에 있는 '가치'는 어디에 대응할 수 있을까요? 자연스럽게 <가치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서 생각한 내용이 소환됩니다.
저는 가치는 태생적으로 주관적이고, 생물체에게서만 정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한국말에서는 가치를 표현하는 말이 바로 '맛'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을 빈곤한(?) 사전 풀이를 보면 명확하게 해 주는 듯합니다. 의미意味를 구성하는 두 개의 씨말을 두고 意는 뜻이라고 하면 味가 혼자 '가치'거나 意와 합쳐서 '가치'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봤던 味(맛 미) 한자 풀이도 불러옵니다. '미세한 차이'를 느끼는 '미세한 감각 기관'을 갖춘 생물체만이 가치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에 대한 열망 때문인지 흥미와 재미, 의미라는 세 단어를 보니 이를 활용하고 싶어 졌습니다.
막상 그리고 보니 재미와 흥미는 유사한 잣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치우치는 자신과 동시에 스스로의 개성을 확인하기 위해 성미性味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 고칩니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어구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매듭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64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66. 한국말 살다, 살음, 살기, 삶, -살이와 살리다
70. 햇살처럼 펼쳐 나가는 사는 '맛' 그리고 새로운 독서법
72. 느낌에서 비롯하여 무엇을 어떤 것으로 풀어 알아봄
73. 느낌을 만든 알음이 엮이면서 맥락을 형성하여 앎이 된다
74. 우리는 숨을 쉬는 유기체이고, 동시에 욕망하는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