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은 객관, 인식론은 주관, 기호학은 소통이다(下)

지식 덕후의 탄생

by 안영회 습작

지난 글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글입니다.


왜 인문학은 자유롭고 다양할 수 있을까?

인문학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존재론이 과학이라면 인식론은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자유롭고 다양하다. 아이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맘껏 뛰어놀듯 존재론이 탄탄하면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새로운 관점이 생기고 그 관점은 나의 생각과 삶을 풍성하게 해 준다.

저에게 '인문학'의 의미는 최봉영 선생님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뉩니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인문학'은 '유행하는 운동화'나 '동네 소문'만큼이나 저에게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는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알게 되고 시나브로 '묻따풀'을 하게 된 후에는 중요성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저의 인문학은 뭐라고 아직 말로 표현할 정도는 아닙니다.


두 번째 문장이 인문학에 대한 곤궁한 처지에서 탈출하게 해 줍니다.

인문학은 자유롭고 다양하다.

왜 그럴까요? 처음 생각해 보는 질문입니다. 최근 경제학자의 책을 읽고 쓴 <도시의 승리>의 문장을 하나 인용하며 돌파구를 찾습니다.

개인의 선택과 재능은 정말로 예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범죄의 급증 같은 도시의 현상들도 그만큼 이해하기가 어렵다.

자유 의지의 존재 때문일까요?


새로운 인문학이 자아실현을 위한 대안 교육이 될까?

이어지는 문장이 또 제 취향을 저격합니다.

아이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맘껏 뛰어놀듯 존재론이 탄탄하면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새로운 관점이 생기고 그 관점은 나의 생각과 삶을 풍성하게 해 준다.

윤여경 선생님도 교육에 관심이 많으신데, 저도 그런 편입니다. 다만, 현실의 교육과는 거리다 멀다는 점에서 '자아실현'위한 대안 교육에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겠네요.


욕망 중 가장 으뜸은 바로 소통이자 관계다

개인적으로 '욕망'이라는 단어도 최봉영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는 꺼리던 말이었습니다.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욕망을 불러온다. 욕망 중 가장 으뜸은 바로 소통이자 관계다. 나이들며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면 세상 제일 재밌는 것이 ‘말(수다)’이라는 사실이다. 이 말을 정말 재밌게 하려면 소통능력이 필요한데, 이 소통능력이 바로 디자인이다.

그런데, 욕망 중 가장 으뜸이 바로 소통이자 관계란 말은 뜻밖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클로드에게 물었더니 많은 수준이 아니라 엄청난 계보가 이어져 온 생각이었습니다.

반면에 '세상 제일 재밌는 것이 수다'라는 말에는 저 역시 나이가 들면서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


소통능력이 왜 디자인인가?

하지만, '소통능력이 바로 디자인이다'라는 말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다시 클로드에게 저자 역할을 맡겼습니다.

클로드는 직관적이지 않은 이유는 통념을 뒤집은 데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디자인을 시각적 꾸밈, 즉 전문가의 기술로 좁게 이해합니다. 저자는 이것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디자인은 특수한 직업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소통하는 행위 자체에 내재된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말 잘하는 사람은 이미 디자이너입니다. 상대의 수준에 맞게 언어를 고르고, 순서를 조율하고, 강조점을 배치하는 행위가 모두 기호 설계이기 때문입니다.

분야는 조금 다르지만 설계 덕후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입니다.


시각기호학과 시각언어학...

다시 윤여경 선생님의 글로 돌아갑니다.

디자인은 ‘디+사인’의 합성어로 사인은 한자어로 기호이다. 그래서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해 기호학을 공부해야 한다. 나는 본래 디자인의 바탕이 되는 기초이론을 만들기 위해 미친듯이 책을 읽으며 고민해 왔다. 그런데 그 대상이 사인(기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니까 기호학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이 짓을 계속해왔다. 내 공부의 목적이 ‘시각기호학’ 즉 ‘시각언어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새삼 많은 생각들이 정리된다. 또한 과거 기호학을 정립한 분들의 책을 읽으며 그분들의 고민이 나와 다르지 않았음에 위로가 된다. 남은 것은 정리다. 하긴 굳이 정리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소쉬르도 메모만 남겼고, 퍼스도 이런저런 생각 스케치만 가득할 뿐이니까. 어쩌면 정리와 평가는 내 몫이 아닐지도.


지난 지식 덕후의 탄생 연재

(65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65. 인공지능으로 구축하는 월드 모델과 들쭉날쭉함의 원인

66. AI 에이전트의 보상과 가치 그리고 RLHF

67. Validation 번역은 검증이 아닌 타당성으로 하자

68. '복사-붙여 넣기' 패턴과 레거시 코드의 공통점

69. LLM 벤치마크의 세 가지 평가 기준

70. 지식의 체화는 무의식적 유능을 쌓는 일입니다

71. 찰라살이에서 두 가지 나로, 다시 느슨한 결합으로

72. 인터페이스로 등장한 자연어와 일관성 기술의 등장

73. 개발 조직에도 정의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74. 멀티모달 토큰화에 대해 가볍게 듣기

75. 콘텐츠를 사료로 제공하는 비즈니스와 습관을 만드는 힘

76. 인간은 특별한 기계이고, 지능은 창발적 현상이다

77. 케데헌이 보여주는 문화적 시대정신은 어떤 모습인가?

78. 듀얼 브레인의 멘탈 모델과 월드 모델

79. 과연 관광 콘텐츠의 정의는 무엇일까?

80. 존재론은 객관, 인식론은 주관, 기호학은 소통이다(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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