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터코드 인사이트
늘 그렇듯 페이스북에서 아래와 같은 소식을 접합니다.[1] 기사와 페벗 님의 견해가 함께 있죠.
저는 기사가 전하는 소식에 특별한 관심이 없기 때문에 도리어 '지분'이라는 단어에 끌려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 지분을 조정하며 겪었던 일들은 아무래도 저에게 비교적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지분'이라는 단어가 기억을 소환한 것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지분 자체에 대한 기억은 아니었습니다. 공동 창업자이기도 한 파트너가 제휴를 타진해 온 협력사의 주요 구성원을 묶어서 '컴소시움'이라고 부르는 말습관이었습니다.
우리는 MOU를 맺은 것도 아니고 대개의 경우 시도를 할 뿐인데, 왜 컨소시엄이라고 부르는지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컨소시엄'이라는 단어 뜻에 맞춰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서로 잘하는 일만 하는 구성체'를 말했습니다. 그러한 대답을 들은 후로 그를 보니 다른 구성원의 동의와 상관없이 그 입장을 견지하는 모습이 확고하게 보였습니다.
이런 기억이 바탕에 깔린 이후에 시간을 역전해서 더 이전에 벌어진 지분에 대해 갈등, 아니 사실은 이해관계를 두고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견해가 갈리던 모든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는 가급적 중요한 단계라고 여기면 구두로 소통한 내용을 기록하고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잊지 않습니다.
앞선 페북 글로 이러한 생각을 끌어낸 후에 같은 기사에 대해 전혀 다른 코멘트를 붙인 페벗 님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 뜻이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아 질문을 올렸더니 명쾌한 답을 주셨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일을 적과 아군의 시각으로만 보지 말 것, 독점을 지향하는 자본의 논리 그리고 엔터업계의 변모 등을 압축하여 견해를 쓰신 듯합니다.
두 분 페벗님의 견해를 짧은 시차를 두고 보면서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이른바 '프레임'이란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공교롭게 회사 동료 두 명이 같은 주제의 다른 책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를 너머 글을 쓰도록 자극한 듯합니다.
저는 페벗 두 분의 직업에 기인해서 두 분의 프레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짐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가 보는 세상과 사업가가 보는 세상은 당연히 다르니까요. 다만, 박종윤 님의 페북 글 본문은 함축적이고 비유를 쓰셔서 확인차 질문을 하여 명확한 표현을 구하는 단계를 거친 것이죠.
프레임을 이해하려면 관점을 투사한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가까이 해온 사람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사람을 다 알 수 있을까요? 본질적으로는 대화를 통해야 합니다. 대화를 효과적으로 하는 일도 사실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속일 수도 있고, 당사자 스스로도 자신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 혹은 행동을 이해할 때 그가 주어진 입장을 활용하면 대화에 의존하는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제일 먼저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사실 저도 '프레임'이란 주제로 생각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동료들을 위해서 첫 시도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문제를 담은 질문'을 던져 본 것입니다.
앞서 혜리포터 님의 글을 보고 제가 생각한 내용을 예시로 담아 보겠습니다.
이분법입니다.[2] 머릿속에서는 최근 다시 읽고 있는 팩트풀니스의 '간극 본능'도 떠오릅니다. 지인이 요약한 내용을 활용합니다.
기사에서 다루는 사건이 두 당사자 사이의 사건이었을 리가 없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죠. 따라서, 양자 간의 대립에 초점을 맞춰서 사건을 설명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프레임으로 보는 사건에 대한 해석이죠.
이렇게 의미를 제한할 때 인간의 본능을 활용해야 유리합니다. 미디어나 호사가들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미디어는 다수의 인간 즉, 대중의 본능을 학습하고 그에 따라 반응해야 주목을 얻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걸 읽지 못하고 기사를 접하면 세상을 왜곡된 창으로 볼 우려가 생깁니다. 이에 대한 제 견해는 이미 <정보홍수시대에 문해력은 어떻게 갖출 수 있는가?>에 쓴 적이 있습니다.
자, 어떻게 상대가 제시한 틀에 갇히지 않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는 하나의 예시를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몇 가지 생각을 했는데 솔직히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고, 한 가지 분명하게 남은 생각만 다룹니다.
먼저 저는 개발자들과 논할 때 제가 보기에는 같은 말이 약간 다른 상황에 쓰였을 뿐인데, 그런 저를 반대로 다른 내용을 섞어서 말한다고 느끼는 듯했던 대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3] 그랬다가 웹 프로그래밍 기술도 클라이언트와 서버라는 양자 관계(혹은 이분법)를 벗어나면서 설계 방법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러니 하게 양자 간에 지속했던 역학 관계(서버가 주도)와 기존의 설계 지식이 통하는 않는 상황이 도리어 창발적 설계를 도운 듯도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시는 제 경험이지만, 기존에 너무나도 당연하에 의심조차 하지 않고 있던 사실에 의문을 던져 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두 글과 동일한 사안을 다루지만 전혀 다른 입장으로 쓰인 글을 소개합니다. 가볍게 쓰신 글인지 진지한 내용인지 알 수 없지만,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 보아도 그럴듯하게 해석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입장을 갖는다는 것은?>이라는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사실 어떤 현상에 대해 자신의 입장이 있을 때 분명하게 관점을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분명한 관점을 갖기 어려워 누군가 만든 프레임에 빠지거나 머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스스로 무엇을 바라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던 동료가 과거에 '어떻게 질문을 만들어낼 것인가?'를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노력하더니 자신의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났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다 쓰고 보니 두서없는 글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임’ 고민을 하는 동료들의 타이밍에 맞추는 시의성을 중요하게 여겨 발행하기로 합니다.
[1] 개인적으로는 뉴스 사이트에 가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걸러진 뉴스만 보는 일이 저에게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익숙해져서 지금은 그저 습관이 되었죠.
[2] 혜리포터 님이 명시적으로 '이분법'을 사용했다는 뜻이 아니라 저에게 그렇게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이 차이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3] 헤드리스와 BFF가 제 이해로는 분산 환경에서 '포트와 어댑터' 패턴의 변종일뿐인데, 개발자들은 이들은 전혀 다른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예시로 본문에 넣자니 프로그래밍 배경 지식이 요구되어 제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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