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물정의 물리학>을 읽고 생각하기
<세상 물정의 물리학>을 펼쳤습니다. 어떤 경위로 구입했는지 검색해도 알 수 없는데, 박문호 박사님 책을 읽을까 하다가 매달 팟캐스트로 듣는 비중이 커서 다른 책도 좀 읽자고 책장에 모셔둔 책을 꺼냈습니다.
언제부턴가 머리말을 꼭 읽게 되었는데, 이 책도 첫인상부터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전통적인 물리학에는 '지금', '여기'란 없고, 물리학 논문에는 '나'가 없다. 물리학은 세상물정과 무관해 보인다.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제 읽은 책에서 'here and now'란 표현을 보고, 동조하여 아래 그림까지 소환하여 글을 쓴 후인 탓입니다. 잠이 들기 전에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고 마음먹고 자고 일어난 후입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펼쳐 든 책에서 '지금, 여기'와 무관한 물리학을 다루는 책이라니...
하지만, 영화 Serendipity를 보고 난 후에 그 단어로 기억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문장이 다음 쪽에 등장했습니다.
나는 '지금'과 '여기'라는 시공간spacetime의 한 점에 발을 딛고 존재하는 물리학자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저자인 김범준 교수님이 이미 저의 페벗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리학자인 김범준 교수님은 매력적인 글을 쓰는 저자입니다. 첫 장의 첫 문장에서 이를 증명합니다.
가치중립적인 과학은 없다.
이 문장 탓인지 저는 첫 번째 내용을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활용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이 등장하자 밑줄을 쳤습니다.
완벽한 상명하복 계층 구조(p=0)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때맞음 정도가 커진다. <중략>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민주적 의사소통 구조(p=1)가 상명하복 의사소통 구조(p=0)를 넘어서는 결과를 얻는 상황이 일어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활용도에 대한 생각 이전에 지난주에 중국 상주 경험이 있는 지인 모임에서 의견 합일이 있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미국보다 오히려 중국이 더 잘 헤쳐나가는 듯하다는 의견 통일, 그리고 중국이 다음 단계(?)에 도달하면 필히 민주주의를 수용해야 될 것이란 점에서도 세 사람은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책에 소개된 그래프를 보니 이를 증명하는 과학의 산물이 있는 듯했습니다.
'사회물리학'이라는 표현도 이 책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그리고, 왜 가치중립적인 과학은 없는지에 대한 답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나와 공동연구자들은 이 결과를 얻고 상당히 기뻤다. 내가 싫어하던 원 논문과는 다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원 논문의 결과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결과는 사람들의 개성이 다양한(구성원의 고유 진동수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다.
저는 드러커가 말하는 경영자로 일하려는 입장에서 다음 글을 쓸 때 정립했던 제 생각의 방향에 대해 지지를 받는 듯한 느낌도 얻었습니다.
8쪽 만에 '지금 여기'를 말하는 사회물리학의 효용성을 경영자 입장에서 바로 체감합니다.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해 로드맵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차에 ART 모양을 빌려 시작한 '집단 결정 회의'의 효용성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더불어 최근 HBR로 배운 '인풋보다 아웃풋'이 구동하는 소통의 맥락(원격근무를 해도 잘 운영하면 때맞음 결과가 더 좋을 수 있다)이나 '비허가형 기업'이 구동하는 맥락을 연구 결과가 어렴풋하게 지지하는 인상을 받았다.
당장 효용성을 못 느끼는 분들에게 저자의 결론을 말씀드리면,
그 답은 '뒷담화'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애자일을 활용하며 피드백의 힘을 경험한 나 역시 오래전에 이런 문장들로 뒷담화의 중요성을 인식한 바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25쪽까지 읽고 생각한 내용입니다. 글일 길어지니 여기서 멈추고 연재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