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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Dec 31. 2022

2022년의 책들

233권, 연말 결산 

233권.

그렇다. 2022년은 약 200여 권을 읽어냈다... 올해도 꽤 많이 읽었나. '많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살아가며 허기와 공허와 무력과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 작년과 흡사히 양껏 해치워버린 느낌(?) 도 적잖이 있어서 과연 이것이 좋은 독서인가라는 의문을 부끄러워하며 늘 마음에 품고 산다. 그럼에도 어찌 되었든 매해 누적된 책들을 모두 기억하려 애썼던 이런 기록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 못 읽으며 산다고 생각했었는데. 매일 달리기만 더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달리기를 더 열심히 하기도 했지. 매일 달렸으니까.) 나란 인간... 아무튼 그럼에도 꽤 읽으며 지냈구나 싶은 것이다. 이렇게 매 달의 책들이 쌓인 독서기록들을 살펴보면서. 올해의 책을 떠올려보면서. 



나는 내가 좋아지려 했다. 문득. 이 순간만큼은 확실하게. 나라는 인간을 정확하게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기특하고 대견하고 다행스럽다는 말을 내게 하고 말았으니까. 혜원.... 너는 너를 포기하지 않은 것 같아서. '나'를 포기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역시 그러지 않은 것 같아서. 



그런 너의 올해 책은 어땠니 라며- 이렇게 묻고, 이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정한다. 정하고 있다. 정했다.  나의 올해의 책은. 이 이야기들이었다고. 



1월 : 중앙역, 김혜진 (소설) 


2월 : 곤란한 결혼, 우치다 다쓰루 (사회)


3월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사회 정치) 


4월 : 돌보는 마음, 김유담 (소설) 


5월 : 어른 없는 사회, 우치다 다쓰루 (사회정치) 


6월  : 통찰 지능, 최연호 (인문) 


7월 : 고작 이 정도의 어른, 남형석 (에세이) 


8월에서 11월까지 


8월

- 헤어질 결심, 정서경 박찬욱 (시나리오 각본) 

- 사랑은 왜 끝나나, 에바 일루즈 (사회) 


9월 : 내가 된다는 것, 아닐 세스 (과학) 


10월 :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병률 (에세이) 


11월

- 인생의 역사, 신형철 (인문) 

-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경영) 


12월 : 재수사, 장강명 (소설)




베스트 5권 


매달의 베스트 책들 중 내가 가장 사랑하고 싶었던, 사랑한 책은, 이 다섯 권의 이야기들이었다. 



- 사랑은 왜 끝나나


- 인생의 역사 



-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내가 된다는 것 


- 중앙역


(써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좀 더 좋은 인간이 되어보고 싶어 졌으니까요.. ) 





몇 시간 후면 달력의 숫자와 요일들이 한 칸씩 움직일 테다. 2022년은 지나가고 2023년이라는 새로운 365일을 맞이하려는, 늘 변함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365일 동안 차곡차곡 쌓아진 책들을 정리하면서 매 달의 기억들을 떠올리곤 한다. 1월부터 12월까지. 내가 통과했던 시간들. 자주 절망했고 가끔 기뻤던. 그 시간 속 기억들에 대해서... 



절망, 환멸, 슬픔과 우울은 여전하다. 없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을 또한 알 것도 같다. 그럼에도 자주 맞닥뜨렸던 그러한 감정들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하는 내가 되어 가는 중이다. 이것이 경륜인 걸까. 잘 모르겠지만, 한 해씩 나이라는 것을 먹어갈수록.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입술을 깨문 채로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힘이 쌓여간다고 믿고 산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나는 나아지고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믿고 싶다. 나는 이런 나를. 사실은 싫어하지 않는다고. 사랑하고 있다고....



자주 맞닥뜨렸던 비애와 애탄을 그럼에도 딛고 잊고 살아가게 만든 건 사실 이러한 찰나의 기억들 덕분이었다. 짧지만 강렬한, 이런 기억들이 나를 구원하게 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새벽의 공기, 운동 후의 샤워, 거실에 쏟아지는 햇빛, 깨끗하게 정돈된 빨랫감,  버터프레첼과 슈크림빵, 얼그레이와 밀크티, 식탁 위에 읽다 만 책, 사무실 책상 앞 아침의 다이어리, 출퇴근길의 하늘, 그리고 나의 아이들... 보고 싶다던, 가지 말라던, 내내 옆에 있어 달라던, 이리 오라던,  사랑한다던, 너희들의 목소리... 내 절망의 원천이자 내 사랑의 최후. 때때로 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실마리에 존재하면서도 결국 살아가게 만드는 동력이 되고 마는, 나의 절대적 권력자, 나의 유일신.... 나의 너희들. 그리고 당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불과한 12월 31일이지만. 달력과 나이, 시간이라는 그 숫자들이 전하는 묘한 각오에 휩쓸려 나는 상기하고 만다. 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앞으로도 하면서 살아내 볼 것이라고. 새로운 365일, 2023년도. 시간을 마이크로 하게 쪼개야 겨우 읽고 쓰는 시간을 유지할 수 있음에도. 나는 그럴 것이라고. 그것이 나를 포기하지 않는, 나를 사랑하고 마는 유일한 시간이니까.... 



잘 읽었고 잘 지켰던 내게 고마워하며, 오늘로 한 해를 매듭짓고 다가오는 새해를 이렇게 맞이한다. 잘 읽으며 확실히 지킬 것을, 좀 더 아끼며 열렬히 사랑할 것을. 너는 그럴 필요가, 아니 그럴 자격이 충만한, 꽤 괜찮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믿고, 기억할 것.

헤븐.... 고마운. 너. 너는 결국 나...



퓨어코튼 향기로, 한 해를 매듭짓는, 이 시절은 '가장 정확한 사랑의 실험' 이자 사랑 그 자체였노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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