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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Oct 07. 2022

아빠 근데 엄마는 어디가?

썬데이 파더스 클럽 (7)


“코리아오픈 여자 테니스 결승이라는데
한번 가볼까?”


시작은 영화 한 편이었다.


테니스 여제 세레나 윌리엄스의 은퇴 예고 뉴스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뇌리에 계속 남아있었다. 그러던 차에 세레나 윌리엄스의 아버지 리처드 윌리엄스의 생애를 다룬 영화 ‘킹 리처드’가 눈에 들어왔던 것. 아내도 흥미로워 보였는지 옆에서 함께 봤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어찌 저찌 이런 날이 오긴 온다. 극장판 헬로 카봇, 짱구는 못말려가 아니라 윌 스미스가 나오는 영화를 오롯이 부부 둘이 함께 보는 날이.)


영화를 보며 비너스와 세레나 두 딸을 모두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낸 아버지 리처드의 모습을 좇았다. ‘그래! 역시 아이들의 미래는 운동선수가 최고인가?’ 생각하며 혼자 감격한 것도 잠시. 그 다음 날이 되어서는 바로 까맣게 잊어버렸다. 하지만 행동주의자 아내는 달랐다. 곧바로 테니스 연습장을 등록했다. 그리고 곧이어 아이와 함께 연습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중에 만약 아이가 테니스를 곧잘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오롯이 엄마의 결단력 덕일 것이다.)


틈틈이 테니스를 배우던 아내가 며칠 전 갑자기 경기를 보러 가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애들이랑 같이 가긴 힘들겠…지?”


물론 힘들겠지. 테니스 경기는 잠실 올림픽 공원에서 주말에 열릴 예정이었다. 테니스 인기가 높은 요즘이니 인파도 많을 터였다. 어떤 의도로 던지는 질문이었는지 알기에 아내가 기대하던 대답을 들려주기로 했다.


“내가 애들이랑 있을 테니 다녀와.”

“오호…? 웬일이래?”


그렇게 아내는 테니스 경기를 보러 가기로 했다. 같은 시간 나와 아이들은 어린이 뮤지컬을 보러 가기로 했다.


약속한 일요일 오후를 맞았다.


사실 아이들도 주말엔 집에 있고 싶어한다. 편히 쉬면서 한 주간 학교와 유치원에서 쌓인 피로를 없애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전에 동화책으로 봤던 ‘장수탕 선녀님’을 뮤지컬로 보면 얼마나 재미있을지, 이 기회가 얼마나 흔치 않은 기회인지를 설파해야 했다. 무사히 아이들을 차에 태웠다. 잠실 부근 올림픽 공원 앞에 아내를 내려주고 서울숲으로 향했다. 홀연히 내리는 엄마를 보고 아이가 물었다.


“아빠, 근데 엄마는 어디가?”

“엄마는 다른 급한 일이 있어. 오후에는 아빠랑 같이 노는 거야! 진짜 재미있겠지?”

“...”


아빠와 오후 한나절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충격을 받았는지 아이들은 잠시 차 안에서 말을 잃었다. 그래도 마음씨 좋은 아이들은 그럭저럭 아빠를 잘 따라 주었다. 서울숲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같이 간식도 먹고, 자기들 좋아하는 빵도 샀다. 햇볕은 따뜻했고, 바람도 선선하니 좋았다. 공원을 거닐다 멋지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질주하는 언니와 형들을 보며 때아닌 승부욕(?)을 불태우기도 했다. 말 그대로 평화로운 주말 오후였다.


공원 산책을 마치고 뮤지컬을 보러 들어가기 전, 넌지시 둘째에게 물었다.


“은아, 화장실 가야지?”

“아니, 나 안 마려운데. 진짜 하나도 안 마려워.”


훗. 그런다고 경험 없던 예전처럼 섣불리 당하지 않는다. 이래 봬도 10년 차 아빤데 돌발상황 가능성을 모를까. 괜찮다는 아이를 살살 꾀어 가족 화장실에 데리고 갔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편안하고 끊김 없이 뮤지컬을 관람했고, 환한 얼굴로 공연장에서 나왔다. 아빠가 추천한 거라 별로일 줄 알았는데 진짜 재미있었다고 입 모아 이야기하며.


나중에 따로 집에 들어온 아내의 얼굴도 환했다. 실제 선수들 경기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니 진짜 대단해 보였다는 이야기를 거듭했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잠시 사그라졌던 테니스에 대한 열정이 몸속에서 온전히 다시 지펴진 듯 보였다. 아이들은 욕실 문 옆에 ‘장수탕’ 표지판을 떡하니 붙여 놓았다. 나는 썩 괜찮은 시간이었다고 자평했다. 평소에 다 같이 있을 땐 엄마에게 1차적으로 집중되던 아이들의 관심을 오롯이 독차지(?)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아내는 아내대로, 나와 아이들은 우리대로 모두 각자 따로 행복하게, 주말 오후를 보냈다.


두 아이를 함께 키워가며 투닥일 때가 사실 적지 않다. 본의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일로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 때도 솔찮다. 하지만 육아라는 공동의 과제 앞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알아간다. 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고, 나의 행복이 곧 그의 행복이라는 것을.


육아를 하는 동안은 아이들이 우선이라지만, 그렇다고 늘 아이들이 우선이어서는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없다. 그게 지나온 10여 년을 돌아보고 내린 나만의 결론이다.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살피고 자기 마음이 지금 어떤지 보듬을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 충만해져야 아이들에게도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 인생의 파트너로서, 육아 동지로서 나나 아내가 잠시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할 때는 서로가 흔쾌히 그 영역을 보장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반드시 긴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아주 찰나의 시간, 끝없는 육아로부터 잠시 숨돌릴 한나절, 단 며칠이나마 확보할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시애틀에서 만났던 한 인생 선배님은, 육아를 ‘실로 끝이 없는 세계’라 정의 내리셨다. 어느 정도 아이들이 크면 육아가 끝날 줄 알았는데, 학령기가 되고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가도 그에 맞춰 계속 새로운 도전이 끊임없이 생기더란다.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때도 안 썼던 육아 일기를 대학에 보내면서 쓰기 시작하셨다고.


‘아, 그렇구나.’ 망치로 세게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부모에게 자식이란 평생 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니까. 자신이 이미 지나온 인생의 힘겨운 순간들을 한 계단 한 계단 뒤따라 밟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게 되면 이래저래 마음이 아릴 수밖에 없다. 마치 우리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보면 육아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삶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육아가 긴 여정이라면, 아이를 키우는 육아(育兒)인 동시에 우리 자신도 함께 돌보는 육아(育我)이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나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오래 함께 행복하기 위해, 가끔은 각자에게 필요한 시간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그렇게 서로 응원하고 배려하는 ‘지속 가능한’ 육아 라이프가 이어지길 꿈꿔 본다.


테니스에 빠진 사람이 나의 아내만은 아니었다 ©배정민





정민@jm.bae.20

  

다음 책이 언제 나올 지 모르는 에세이스트. 윈스턴 처칠의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죽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 야구팀의 우승을 보는 것이 꿈이다.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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