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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Nov 13. 2022

아무렇지도 않을 미래

썬데이 파더스 클럽 (8)

1. 8년 전 봄


백일이 갓 지난 아이를 놓고 출장길에 올랐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하게 될 무렵이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저녁에 숙소에서 쉬는데, 백색소음 삼아 켜놓은 CNN 채널에서 익숙한 바다가 등장했다. 배… 배가 가라앉고 있었다.


곧이어 속보가 떴다. 다행히 전원 구조.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은 잠시 뿐이었다. 나는 바다를 건너 귀국했는데, 그 배를 탄 아이들을 포함해 3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찬 바다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슬픔으로 가득 찬 뉴스를 보다 우연히 희생자 명단을 접했다. 내 아이와 같은 이름을 가진 희생자가 있었다. 순간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참혹할 만큼. 고백하건대 서른이 훌쩍 넘은 그때까지도 다른 이의 슬픔이 온전히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뉴스에서 보는 남의 불행은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제 일처럼 여기지 못했다.  


아이가 생기고 아빠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다른 이의 아픔과 공명하고 있다. 간신히. 삼십여 년을 넘게 살았으나 그전까지는 공동체, 공감이라는 단어를 머리로만 이해했을 뿐, 입에 발린 소리만 하고 있었음을 추모공간 한쪽에 쓰인 결코 남같을 수 없는 이름이 가만히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아이를 잃는 것은 부모가 겪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공포다. 내가 그 공포를 겪고 싶지 않듯 다른 부모들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 간절해졌던 2014년의 봄이었다. 


2. 얼마 전


외부 미팅 차 방문한 평일 낮의 이태원은 여느 때처럼 평화로웠다. 자유분방한 기운이 흘렀다. 이태원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동행들과 커피를 마셨다.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근처에서는 공연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 후 1주도 채 지나지 않아 이태원에서 참사가 일어났다. 할로윈을 즐기러, 하루나마 젊음을 만끽하러 나온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됐다. 다시 이태원을 찾을 수 있을까. 평화롭고 자유분방한 이태원의 느낌을 예전처럼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영어학원 할로윈 파티에 맞춰 옷을 사고 사탕 담을 호박 바구니도 샀던 아이는 파티가 취소되었다는 말에 주말 내내 못내 시무룩해졌다. 월요일에 학원을 다녀온 아이는 무감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빠, 압사가 영어로 뭔 줄 알아?”

“아… 모르겠는데?”

“선생님이 알려줬는데, 스땜삣이래.”

“스땜삣?”


‘스탬피드(stampede)’. 사전을 찾아보니 낯선 단어였다. 사람이나 동물이 한쪽으로 우르르 몰린다는 뜻도 있다. 초등학생 아이가 배워 알기에는 너무 슬픈 낱말이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시내 영어학원에서 파란 눈의 외국인 선생님에게 영어 말하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학원으로 가는데 길가에 매캐한 연기가 자욱했다. 소독차 연기인가? 갑자기 목이 따끔따끔하고 눈도 매웠다. 여전히 최루탄이 가끔씩 등장하던 시절*이었다.

* IMF 외환위기 직전이었던 그 겨울은 국회에서 노동법 개정안이 ‘날치기’로 통과되면서 전국적 시위가 일어났던 때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콜록거리며 간신히 학원에 갔더니 선생님과 나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매일 조용히 구석에 앉아만 있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국인 선생님과 1대 1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선생님은 칠판에 ‘demonstration’이라고 썼다. 데몬스트레이션. 시위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다.


선생님 이름, 얼굴, 다른 기억들도 모두 사라졌지만 칠판에 적힌 그 단어만큼은 그날 거리에 자욱하던 연기와 함께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3. 언젠가 아이들이 더 자라서 이태원으로 갈 때


시시각각 속보로 전달되는 이태원 참사 관련 뉴스를 보며 마음이 여전히 무겁다. 본격적으로 삶을 꽃피울 무렵의 수많은 청년이 한순간 사라졌다. 그 청년의 부모는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 창자가 끊어질 만큼 고통스러운 상황을 일컫는 ‘단장지애’라는 말 그대로가 아닐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 중 하나로서 그저 먹먹하고 힘겹기만 하다. 


사회는 “미래 세대를 위해 좋은 세상을 물려주자”는 말을 곧잘 한다. ‘좋은 세상’이란 말에는 양질의 일자리, 깨끗한 환경, 그리고 안전한 공간도 포함될 것이다. 어릴 때는 미처 몰랐지만, 적어도 이전 세대는 제 나름의 노력을 통해 지금 세대에게 언제든 길가에서 최루탄 연기로 고생하는 풍경 정도는 더 이상 물려주지 않는 데까지 성공했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부모, 지금 세대도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아름답고 젊은 시절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안전한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8년 전의 아픔을 교훈 삼아 많은 걸 바꿔왔다고 생각했지만, 모두가 목도하는 것처럼 우리에겐 여전히 갈 길이 아주, 멀다. 


언젠가 아이들이 더 자라서 이태원에 갈 때를 그려본다. 오늘 하루 할로윈 파티 즐기러 나간다고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휙 말하고 나가더라도, 내 마음에 일말의 근심도 찾을 수 없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미래가 오길 바란다. 


스탬피드 같은 단어는 굳이 배우지 않아도 될, 그런 미래를 아이들에게 전하려면 지금부터 뭐라도 해야겠지. 젊은 시절 거리에서 2002년 월드컵의 흥분을 온전히 즐기고 누렸던 세대로서. 이 모든 일들이 다름 아니라 나와 우리의 일이란 걸 늦게나마 깨닫고 있는 부모로서.





정민@jm.bae.20

  

다음 책이 언제 나올 지 모르는 에세이스트. 윈스턴 처칠의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죽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 야구팀의 우승을 보는 것이 꿈이다.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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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Chris Liveran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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