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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Dec 25. 2022

크리스마스에는 손톱을

썬데이파더스클럽 (9)

“정신없고 힘들긴 해요. 그런데 엄청 귀여워요.(뿌듯)”


기록적인 저출생 시대. 그래도 주변을 돌아보면 올해 엄마 아빠가 된 사람들이 있다. 송년 모임을 핑계로 출산 전후로 한동안 보기 어려웠던 이들을 만났다. 눈물 없이는 듣지 못할 그간의 소회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신기하게도 얼굴빛이 닮아 있다. 말하는 내내 묘한 흥분이 감도는 달뜬 얼굴. 그동안 까마득히 몰랐던, 새로운 세상과 만난 사람의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깨는 아기 때문에 잠을 설치고, 분유 타기, 기저귀 채우기, 유아식 만들기로 끝없이 이어지는 육아 노동의 굴레가 역시 듣던 것처럼 결코 쉽지 않음을 토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토로가 실은 우리 아기가 얼마나 방긋방긋 잘 웃는지,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는 가슴 뿌듯한 자랑으로 이어진다. 말하는 이의 얼굴은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사람의 얼굴이다. 마주한 사람마저도 입가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흐뭇함에 겨운, 고슴도치 부모의 얼굴이다.


처음에는 까마득한 과거처럼 아득히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는 몇 개월 차에 몇 밀리그램의 분유를 타 먹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이 부모가 된 이들의 따끈따끈한 경험담을 듣고 있자니 어느새 나도 과거의 그 초보 부모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특히 첫돌이 지나지 않은 아기를 위한 물건 중 앙증맞은 것들이 많았다. 옷, 신발 등 세상에 이렇게 작은 물건들이 사람을 위해 존재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필요한 것 같아서 첫 아이를 키울 때는 장바구니에 많이도 담았다. 


유아용 손톱깎이가 유난히도 기억에 남는다. 이걸 처음 봤을 때, 세상에 이걸 처음 발명한 사람은 대체 누굴까 하마터면 탄성을 지를 뻔했다. 유아용 손톱깎이의 손잡이는 문구용 가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대신 연약한 아기의 손톱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둥글게 마감된 아주 작은 날이 붙어 있다. 누가 봐도 ‘이건 아기를 위한 것이로군’ 싶게 만들어진 도구였다. 손톱깎이라기보다는 손톱가위라고 부르는 게 정확한 표현일 수 있겠다. 어쨌거나 아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쳤을 물건이었다.


유아용 손톱깎이를 들고 한밤중에 살금살금 숨죽여가며 잠들어 있는 아이의 손톱을 정리해주던 때도 떠오른다. 스스로 아빠가, 부모가 되었다고 느낀 순간이다. 겨우 힘들게 재웠는데 행여나 다시 깰까 봐 연약한 아기 손톱을 손톱깎이로 하나씩 오리고(!) 있다 보면, 내가 이 아이의 보호자가 맞긴 맞는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분유를 타고 기저귀를 가느라 정신없던 낮의 느낌과는 다른 감정이 손톱깎이와 함께 자라나곤 했다. 손톱처럼 계속 자라지만 아직 손톱 같이 연약한 아이다. 자식을 보호해야 한다는 감정이 일종의 본성이라면, 아이의 열 손가락을 하나하나 보듬으며 손톱을 정리하는 시간들은 매번 그 본성이 충만히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며칠 전 아내가 출장차 자리를 비웠다. 아이들도 이제 웬만큼 자란 터라 더 이상 엄마가 안 보인다고 울고불고 하진 않는다. 오히려 엄마 잔소리를 피할 수 있어 좋다는 표정마저 배웅하는 얼굴에 살짝 드러났다. 그동안 까먹은 점수를 만회하고자 잠시 일탈을 허용하기로 했다. 아빠 덕분에(!) 아이들은 평소보다 조금 더 놀고 숙제는 조금 덜 하다가 잠들었다.


오늘도 겨우 제시간에 재웠다. 속으로 휴, 콧노래를 부르며 불을 끄고 자려는데 아이들 손톱, 발톱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아이돌 노래도 웬만큼 따라 부르고, 엄마 아빠랑 말싸움을 해도 여간해서는 지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손톱, 발톱은 기다랗게 제멋대로다. “나도 이제 다 컸어. 아기 아니라니까”라는 말을 입에 달며 제법 큰 체하지만 아직 애들은 애들이다.


오랜만에 손톱깎이를 들어 두 아이 손톱과 발톱을 차례로 정리해주었다. 톡 톡 톡. 모두 가지런히 깎아주고 나니 잠시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가, 금세 미안해졌다. 아이들 손톱과 발톱을 깎아준 게 대체 얼마만이지?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본인이 직접 깎을 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할 리 없으니 대부분 엄마나 할머니가 정리를 도와줬을 것이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방문한 유령들을 통해 개과천선한다. 얼마 전 초보 부모들과의 만남이 내게는 비슷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이들이 새로 부모가 되어 느끼는 감정을 내게 고스란히 전하지 않았다면, 나도 유아용 손톱깎이를 손에 들고 아이 손톱을 손질하던 그때 감정을 오롯이 꺼내보지 못했을 테니. 


아이들과 복닥복닥 지내왔던 한 해가 저물어간다. 이제 유아용 손톱깎이는 더 이상 쓰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도 아이들이 제 손톱을 깔끔하게 정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내년부터라도 혼자서 깔끔하게 손톱 깎는 방법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 더불어 언젠가 결국 떠나갈 자식이 내 품에 있는 동안이나마 잠들었을 때 몇 번 더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교차한다. 


이참에 내년부터 아이들의 손톱 발톱 정리를 내가 전담할까? 어쩌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서야 이 남자가 개과천선했다고 아내가 쾌재를 부를지도 모르겠다. 비록 손톱만큼이더라도.




정민@jm.bae.20

  

다음 책이 언제 나올 지 모르는 에세이스트. 윈스턴 처칠의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죽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 야구팀의 우승을 보는 것이 꿈이다.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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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B Vonlanthe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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