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Essay_ 모든 걸 솔직히 보여줄 필요는 없잖아
브런치에 연재된 플라워 에세이 '일 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 2021년 4월 말, '꽃이 필요한 모든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발간됩니다.
이제 서점에서 만나요!
'일년, 열두달 흔들리는 꽃'은 매월,
하나의 에세이와 그 달에 어울리는 꽃과 사진을 정리한 이야기, 총 2개의 글을 발행합니다.
나는 어떨 때는 뻔뻔한데 어떨 땐 바보처럼 제 밥그릇을 잘 못 찾아 먹는다. 쓸데없이 양반 기질이 남아 있어서 그런 걸까? 양반으로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종종 괜한 얌전이나 내숭을 떤다.
특히 내가 못 견뎌 하는 건 누군가 나를 칭찬할 때.
‘네 덕분이야.’라며 고마워할 땐 그냥 가만히 잔잔한 미소나 띠고 있으면 될 걸 굳이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 제가 혼자 한 것도 아니에요!’라면서 ‘그거 그냥 대충한거에요'라는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이곤 한다. 그래도 남의 집에 가서 식사는 하고 오셨냐는 말에 차마 아니라고 말 못 하고 하루 종일 굶었다는 우리 할아버지의 일화에 비하면 내가 조금 더 뻔뻔하긴 하지만(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놀리듯 우리에게 들려 주었다).
왜 칭찬에 유독 견뎌 하질 못할까 생각해 본다.
나는 무언가가 너무 창피했던 것 같다.
그럼 무엇이 그렇게 창피했을까?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상황이 창피했던 것 같다.
거창하게 무언가를 시작했다가 쪽팔리게 끝날 것에 대한 창피한 마음이 겸손함의 일종으로 발현된 게 아닐까? 얌전함이나 내숭처럼 보이지만, 더 잘 포장하자면 겸손함이지만, 사실 까 놓고 보면 창피당할까 두려운 마음.
내 생일은 3월말쯤이다.
그래서 3월이 되면 남편이 ‘생일선물로 갖고 싶은 것'을 묻는다. 나는 사실 누군가 나에게 선물을 줄 때 ‘무엇이 가지고 싶냐'고 물어보는 것을 대답하는 것이 굉장히 괴롭다. 실제로는 가지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지만 ‘아무것도 갖고 싶은 게 없다'고 대답한다.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이다. 나의 위시리스트는 단 한 번도 줄어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
주는 선물을 감사하게 받을 수는 있는데, 내가 내 입으로 선물로 무엇을 달라고 요구는 못 한다. 조금 느낌이 다르지만, 위의 이유와 결은 닮아 있다. 내가 이걸 이 사람에게 당당히 달라고 요청해도 되는 정도의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아마도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거절당하는 건 창피한 일이고 나는 그런 실패를 굳이 겪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들으면 무척 서운해할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평생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정말 내 마음속 1순위의 무언가를 줘! 라고 하지 못했다. 엄마 아빠에게까지도.
그들은 발끈하며 ‘무슨 소리야! 해달라는 건 다 해줬잖아!’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건 2순위나 3순위 쯤 있던 것이었다.
이 정도는 부담스럽겠지? 이 정도를 해달라고 하면 내가 좀 염치없는 거겠지? 하는 마음이 언제나 솔직함을 앞섰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감추기 위해 내가 받고 싶은 1순위 위에 넘사벽인 가짜 순위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세웠다.
‘선물로 뭐가 갖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경기도에 땅 300평쯤 사줘.’라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답을 댔다. 그러면 상대는 ‘에이 뭐야~ 그건 못 해줘. 다른 거?’라고 하며 되묻는다. 그럼 난 한 3순위쯤 되는 것을 대면 된다. 그건 안전하다.
그렇게 받은 지난 해의 생일 선물이 ‘주말농장 분양'이었다. 나는 또 “받고 싶은 거 없어. 가장 갖고 싶은 건 땅! 땅 사줘. 꽃 심게.”라고 말했다. 남편은 땅 빼고 다른 거, 라고 물었고, 나는 3순위에 있던 ‘주말농장'을 댔다. 땅을 사줄 수는 없었던 남편은 (그걸 받을 거라 기대도 하지 않은 나도)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나는 그렇게 5평 땅을 일 년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설레는 마음으로 3월 꽃샘추위에 심었던 튤립 구근과 수선화 구근들은 모두 얼어 죽었다. 꽃 농부가 되겠다며 야심 차게 시작했던 농사가 첫 스텝부터 꼬였다. 4월 초에 또 새로운 모종을 사다 심었다. 잘 자라는 듯하다가 또 마르듯 얼어 죽었다. 결국 본격적인 농사는 4월 중순이 지나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게으른 내가 주말농장을 시작했다는 말에 엄마는 ‘뭐 얼마나 하겠니?’라는 말로 혀를 찼고, 아빠는 비슷한 의미로 콧방귀를 뀌었다. 선물해준 남편도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원한다니 해주지만, 큰 기대는 없는.
그들의 기대처럼 내 주말농장의 꽃밭은 별것이 없었다. 몇 송이의 꽃들이 피고 지고, 더 많은 잡초들이 나고 뽑아야 했지만 나는 작은 내 마음의 방어벽이 있어서 그 실패가 아무렇지 않았다. 언제나 모든 것에 솔직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완벽히 내 감정에 솔직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도 싶다.
이 정도의 이기심은 내 것이어도 되지 않겠어?
매월 첫번째 월요일에는 그 달의 에세이를 써서 발행합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는 그 달에 어울리는 꽃, 직접 만든 꽃, 찍어 놓은 사진을 정리하여 발행합니다.
저의 글과 꽃과 사진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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