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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지망생 Apr 14. 2016

호남은 왜 안철수를 지지했나

디플레 시대의 총선

이 브런치를 처음 개설했을 때, 결심한 게 있다. 시사 관련 글은 쓰지 말자는 거였다. 기자 노릇으로 밥벌이를 하는데, 여기서까지 시사 현안을 다루고 싶지는 않았다. 또 이 브런치의 개설 목적 자체가 '습작'이다. 시사 관련 글을 쓰다보면, 본래 목적에 소홀해질 거라고 봤다. 


하지만 결심 지키기가 쉽지 않다. 소설 습작은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간다. 머릿속에 온갖 아이디어가 떠다니는데, 이야기로 풀어내는 게 힘들다. 플롯을 짜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절감한다. 


그래서 선거 끝난 김에 몇 마디만 적어본다. ㅋ 이것만 쓰고 다시 생업+습작 모드로 전환하련다. 


1. 엄살 전략, 언제까지 통할까. 


카카오톡 시대, 새로 나타난 선거 풍경이 있다. 투표일이 다가오면 온갖 선거 정보가 돌아다닌다. 카카오톡은 폐쇄형 SNS이므로 허위 사실을 전해도 적발하기가 어렵다. 반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반개방형이다.


폐쇄성을 악용해서 허위 정보를 뿌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 대선 투표일에는 문재인 후보 지지율이 박근혜 후보를 추월했다는 메시지가 나돌았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다. 박 후보 측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목적으로 뿌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학습 효과 탓인지,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엄살 경쟁을 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충격이다. 자신들이 엄살 떨었던 것보다 큰 규모로 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약간 무안하게 됐다. 김종인 대표 정도는 알았을 게다. 아니, 알았다고 한다. 판세가 뒤집어지고 있다는 걸. 그래도 계속 엄살을 부렸다.  


하지만 엄살 전략도 자꾸 쓰다보면, 효과가 없다. 이런 전략은 상대에 대한 공포가 강력할 때만 통한다. 친박 세력이 앞으로도 너무 센 힘을 갖는 데 대해선 어지간히 보수적인 분들도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니까 '쟤들이 압승하고 우린 참패할 거야'라는 메시지가 통했다. 


만약 현 집권 세력이 중도 성향이라면? 엄살 전략은 손해가 될 수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지는 편에는 매력을 못 느낀다. 이기는 쪽, 떠오르는 세력에 가담하고 싶어한다. 엄살 전략이 통했다는 건, 뒤집어 말하면 현 정부가 그만큼 무시무시한 이미지라는 거다. 기필코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특이한 건 국민의당이 쓴 전략이다. 그들은 엄살 전략 대신 자랑질을 했다. 그들의 득표력은 이번 선거에서 처음 검증대에 올랐다. 따라서 그들은 사표 방지 심리와 싸워야 했다. 그들을 찍은 표가 실제 의석으로 이어진다는 걸 강조해야 했다. 이기는 쪽, 떠오르는 세력에 가담하고 싶어하는 일반적인 심리에 편승하는 전략이다.


국민의당 약진을 계기로, 3당 체제가 자리를 잡을까. 국민의당은 그렇게 홍보한다. 하지만 세상일은, 특히 정치는 내일을 알 수 없다. 대통령제 하에서의 3당 체제는 확실히 어색하다. 어떤 식으로건 양자 구도로 재편되리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홍보하듯, 3당 체제가 자리를 잡는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건 몰라도 투표일을 앞두고 엄살 전략을 쓰는 일은 줄어들거라고 본다. 세 개의 정당이 경쟁하는데, 두 개의 당이 너무 심한 엄살을 부리면, 나머지 한 개의 당이 어부지리를 얻는다. 국민의당이 이번에 그랬다. 더불어민주당이 너무 앓는 소리를 하니까, 새누리당을 싫어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색깔은 탐탁치 않아 하는 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국민의당을 찍었다. 예컨대 보수 성향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싫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보기엔 더불어민주당이 너무 약해보인다. 그들을 밀어줘봤자 다음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또 이길 것 같다. 그럴 바엔 제3의 세력을 키워보자, 라는 판단을 한 거다. 


만약 다음 선거에서도 3자 구도가 된다면, 이런 학습 효과가 작동하리라고 본다. 물론 개인적인 바람은 3자 구도가 아니었으면 하는 거다. 어떻게든 야권 단일화가 이뤄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안철수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2. 호남 엘리트의 우방 한계선


한국에서 호남 사람이 극우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극우가 되려면 '일베'마저 긍정해야 하는데, 그곳은 호남에 대한 인종주의적 비난의 숙주다. 새누리당 당원이 되기도 어렵다. 어찌됐건 새누리당의 주류는 영남 출신이다. 새누리당에 들어간다는 건, 스스로 비주류를 자처하는 일이다. 호남 엘리트 입장에선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호남 출신으로 주류 엘리트인데,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에겐 싫든 좋든 (더불어)민주당이 답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사람의 정체성은 출신 지역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고향은 호남이지만, 사회경제적으론 아주 보수적인 입장일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정치를 하고 싶다면, 지금까지는 답이 없었다. 새누리당에 들어가서 굳이 비주류가 되고 싶지는 않다. 출신 지역을 뺀 다른 영역에서는 모두 주류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게다. 그럼 민주당에 들어가야 하는데, 민주당의 색깔은 그보다는 왼쪽이다. 그러니까 답이 없다. 


결국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 민주당이 더 오른쪽으로 가도록 요구하는 거다. 실제로 이런 내부 투쟁이 있었다. 호남 출신 주류 엘리트가 86세대 운동권 정치인을 비난하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새로운 당을 만드는 거다. 실제로 다양한 형태의 호남당 창당 시도가 있었다. 그 가운데 첫 성공 사례가 나왔다. 국민의당이다. 안철수와 손잡았기에 가능했다. 아무리 호남당이라지만, 대놓고 지역정당을 표방할 수는 없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깡패 하정우가 말했다. 상대편 깡패를 치려고 하면서 한 말이다. "명분이 없단 말입니다. 명분이." 깡패도 그럴진대, 하물며 정치는 말할 것도 없다. 어쩌니저쩌니 해도, 결국 정치는 명분의 세계다. '새정치'를 표방한 안철수와 손 잡으면서 명분이 생겼다. 다행히 안철수는 부산 출신이다. 지역 이기주의 혐의도 벗는다. 기존 양당 체제를 삼당 체제로 바꾸는 '새정치'라는 명분을 얻으면서, 호남당 창당 시도는 성공 궤도에 올랐다. 


국민의당은 어쩌면 호남 주류 엘리트의 우방 한계선인 셈이다. 지금까지는 투표하는 정당의 이념 색깔과 실제 이념 사이의 간극이 컸다. 무상급식에 반대하고 내심 햇볕정책이 못마땅했던 사람이 다른 대안이 없어서 민주당을 찍곤 했다. 이제 그 간극이 해소됐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호남 표심이 보수와 진보로 갈린다면, 장기적으론 좋은 일일 수도 있겠다. 


3.  디플레 시대의 강남, 분당 민심


강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약진한 건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세곡동 일대에 임대주택이 많이 지어졌다. 그밖에도 인근 신도시로 주민이 드나드나드는 등, 강남 벨트의 계층적 성격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꼭 그 때문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그런 설명으론 분당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크게 이긴 걸 설명하기 어렵다. 중상위 수준 자산가들의 정서 변화가 있었다고 본다. 


강남, 분당 등에 자기 집 갖고 있는 사람들이면 꽤 잘 사는 축이다. 중상위, 아니면 상위 계층쯤 된다. 전에는 이들 계층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낙관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미래도 낙관했다. 자기 자식들의 미래는 더 낙관했다. 그러니까 정부의 규제 정책이 못마땅했다. 자산을 이리저리 굴리고 경제에도 밝은 그들이 보기에, 한국은 더 성장할 여지가 있는 나라다. 그런데 불필요한 규제에 발목 잡혀 더 성장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더 강한 시장주의 정책을 원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 한국도, 자기 가계도, 자식의 미래도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요컨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는 것 같아서 화가 나는 게 아니다. 예전에는 이런 이유로 노무현 정부에 화를 냈다. 하지만 지금은 자칫하면 더 나빠질 것 같아서 불안하다. 그러니까 전처럼 강력하게 규제 완화를 외칠 이유도 없다. 규제 푼다고 더 큰 기회가 올 것 같지 않다. 그들보다 더 상위에 있는 그룹에게 잡아먹히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전에는 대기업에 다니는 강남 주민들이 자식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되기를 바랐었다. 아니면 자기는 국내 명문대를 나왔지만 자식은 아이비리그에 진학하기를 바랐다. 요컨대 자식은 자기보다 더 잘 되기를 바랐고, 그게 가능하다고 믿었다. 조금만 애를 더 쓰면 말이다. 


지금도 이런 분위기가 근본적으로 바뀐 건 아니다. 하지만 염원의 밀도는 확실히 떨어진 것 같다. 천문학적인 유학 비용 들여서 하버드를 나온들, 별것 없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도 예전같지는 않다. 이런 정서다. 알파고 충격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 경로가 자식 세대에선 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까 사교육에 너무 아등바등할 필요는 없다. 미미하게나마 이런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 


자고 나면 부동산 가격이 오르던, 인플레 시대엔 부자라면 당연히 새누리당을 지지해야 했다. 빚을 끼고 부동산을 매입했다면 더 절박하다. 새누리당이 부동산 부양책에 가장 적극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부동산 대박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시대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이러나저러나 별 차이 없다는 걸 안다. 자기 취향껏, 이념대로 택하면 된다. 그 결과가 이번 총선 아닐까. 



소설가 지망생입니다. 습작 용도로 개설한 브런치인데, 습작이 아닌 엉뚱한 글만 열심히 썼네요. 선거도 끝났으니, 습작을 이어가겠습니다. 

    


소설 '알을 품은 섬'


첫 번째 이야기 :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두 번째 이야기 :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세 번째 이야기 : "활 잘 쏘는 자가 왕 노릇 하는 까닭"

네 번째 이야기 : "화살 맞아도  끄떡없으니 활쏘기란…" 

다섯 번째 이야기 : "화살이 눈에 박히자 가야 전사들은"

여섯 번째 이야기 : "그 활로 나를 쏘거라"

일곱 번째 이야기 : "그들을 나와 함께 황천으로 보내라"

여덟 번째 이야기 : 왕이 제 자식 죽인 자를 접대한 까닭

아홉 번째 이야기 : "죽은 왕은 알에서 태어났소"

열번째 이야기 : "우리 자식들 대신 그들을 묻읍시다"

열한 번째 이야기 : "죽은 왕은 썩은 피를 타고 났소"



소설 '내 남자친구는 북한 간첩'


<1> 내 남자친구는 북한 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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