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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Feb 13. 2020

여행에세이 연재9. 불일암에 계시는 법정스님께

나미래의 여행에세이, <나는 아들과 여행한다> 전라도 순천편

  [갈대의 도시_전라도 순천9] 불일암에 계시는 법정스님께


  스님 잘 계시지요? 얼마 전에 불일암에 홀로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하며 암자를 둘러보았어요. 스님이 묻혀 계시는 후박나무본래 이름은 일본목련인 향목련이며, 나무껍질을 후박이라 이른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법정스님의 책에서는 후박나무로 묘사주변 고목이 내어준 의자에 앉아 여러 마음을 다듬고 왔습니다.

  암자의 텃밭 화단에는 스님께서 아끼셨던 목단이 눈에 띄더군요. 앙상한 시린 가지로 겨울을 보내고 꽃봉오리를 빛낼 새싹들이 옹기종기 불콰하게 물을 올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또한 겨우내 미처 떨구지 못한 수국의 꽃잎과 이파리들이 겨울의 잔해를 전해주더군요. 곧 푸른 마음을 받을 때가 오겠지요.

  나무의 가지만 보고 나무의 이름을 판단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불일암에 자생하는 모든 식물과 친구가 된 듯했어요. 어느 해 시장에 나가 사다 심으셨다던 목단의 글 사연을 기억합니다. 여전히 스님의 자리를 바로 지키며 맑은 봄 햇살을 쬐고 있었습니다. 후박나무 가지 아래 스님의 육신의 재가 묻혀 있는 곳을 돌다보니 꼭 옆에 계시는 것 같은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무소유  정신을 가진 강직



  한 분을 어찌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 봄에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스님 때문이기도 했지만, 불일암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스님의 손때가 묻지 않은 나무들이 없겠죠. 책에서 묘사된 암자 뜰 앞의 자연을 만나 얼마나 반가웠던지요.

  그 중에서도 겨울을 따뜻하게 나도록 파초가 있는 자리엔 비닐과 짚이 덮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연못 뒤에 하얀 비닐과 짚으로 덮은 건 파초를 보호하는 장치라는 것을 TVKBS1 다큐 프로그램, 힐링다큐 나무야 나무야 시즌3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이 아끼셨던 파초는 따스한 이 계절에 푸름을 선보일 테지요.

  파초 바로 앞에는 검정색 플라스틱 통으로 만든 작은 연못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침묵을 하며 드나드는 행인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예전에는 저렇게 넓을 통을 소나 가축의 여물통으로 쓰기도 했다는데요. 스님의 영혼이 남아 있는 불일암은 소박함으로 풍경을 더하고 있었어요. 하얀 벽에서 웃고 계시는 스님을 보고 스님의 말씀 잊지 않고 새기며 살겠노라고 되뇌고 말았어요.

  


  오래전 제가 한국을 잠시 떠나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잠깐의 어학 생활쯤으로 생각하고 떠났던 일본이었는데 대학까지 밟으면서 오래 있게 됐던 곳. 그곳으로 향하던 20대의 아팠던 청춘의 저는 스님의 책을 몇 권 짐 속에 챙겨갔던 기억이 납니다. 깔끔하고 쉬운 문장, 군더더기 없는 시원함의 필체는 스님의 상징이었어요. 세련된 지적 통찰을 경험하기도 했으며 또한 올곧은 스님을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님의 수상집隨想集,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적은 글들은 모아 엮은 책을 가까이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절판이 될 줄 어떻게 알았을까요. 무더기로 스님의 책을 사두며 뿌듯했던 기억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서재에 쌓인 책들을 정리하다 스님의 오래된 책들을 다시 들춰보게 되었어요. 이맘때 떠나신 스님을 생각하며 불일암을 찾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편안한 여행되고 계시지요? 스님!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2018.3.




나미래의 여행에세이

[나는 아들과 여행한다]

갈대의 도시_전라도 순천편(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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