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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Feb 13. 2020

여행에세이 연재10. 순천만 갈대밭,바람과 안개가...

나미래의 여행에세이, <나는 아들과 여행한다> 순천편

  [갈대의 도시_전라도 순천] 순천만 갈대밭엔 바람과 안개가 숨어 있다


  순천만의 갈대밭이 그리웠다. ‘가을과 겨울 사이’라는 흔한 계절의 대명사는 이곳을 위해서 꼭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유연한 초록을 태우고 너울대는 황금 갈대의 그림자는 여전히 고즈넉한 이곳 습지의 풍경화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흔들리는 여자의 마음을 비유한 갈대’만을 그리워했던 건 아니다. 순천만 습지의 갯바람. 너른 갈대밭을 휘감고 자리 잡아 들어앉은 그 된바람을 먼저 찾아왔는지 모른다. 그 맑지만 거센 바람, 찬바람, 겨울바람을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마른 찬 공기는 안온함으로 다가오는 걸 느끼고 말았다.

  우리 가족은 순천만습지 갈대축제2018.11.2.~11.4.가 있었던 그 일주일 전에 방문했다. 친정에서는 호박고구마가 무르익고 있었고, 그 고구마를 수확해 뒷정리를 하고 남은 시간 순천을 향해 달렸다. 친정은 순천과 지근거리에 있어 기쁘다. 고향을 오가는 길에 잠깐 여유를 내고 싶을 때 찾아가는 그런 곳이 되기에 내겐 더 반가운 지역이 아닐 수 없다.

  순천만 갈대밭은 늦가을의 정서를 오롯이 다 지니고 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넉넉한 평야는 눈에게는 화려함을 내려놓게 한다. 우리들에겐 자연의 색을 덧칠한 너른 습지 갈대밭을 말없이 바라보라 한다. 바람이 내게 말을 건다. 몸을 내어놓고 가을을 타보자고.




  근래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복잡한 시간이 켜켜이 쌓아졌었다. 이곳의 바람은 이미 나의 그런 마음을 알아차리고 있었고, 나의 뼛속 DNA까지도 시원하게 다른 공기로 바꿔내라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구름옷을 걸쳐 입은 갈대들의 소리가 정겹다. 가을 타는 침묵에 반反할지라도 속내를 새로 쓰고 지우고 어울려가는 모습은 아름답다고 한다.  

   순천만의 또 다른 명물. 나는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 어스름에 소복이 내려앉는 이 지역의 안개가 밝은 오후의 상상 속에서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소설가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배경 무대가 되었던 순천만 일대의 명물을 ‘안개’로 표현했던 문장을 한 번 보시라.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김승옥 [무진기행] 일부분>’



  3년 전 가을, 시월의 바람이 잠시 콧등을 스치고 기억을 데려온다. 고교 시절 은사님을 만나기 위해 친구와 함께 떠나왔던 순천만 일대. 송병천 선생님을 순천만 갈대밭에서 만났다. 기나긴 산책을 했고 순천만 습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용산전망대에 오르기까지 했다. 또한, 김승옥 작가가 70여 일 정도 기거한다는 문학관으로도 발길을 옮길 수 있었다. 시월의 갈대는 아직 푸름을 간직한 건장한 모습이었다. 물론 선생님도 시월의 갈대를 닮아있었다. 

  고교 시절과 어느 시점의 과거, 현재, 앞으로의 이야기를 맛있게 버무려 먹게 해준 선생님은 내겐 아련함과 맑음 사이를 풀어내는 안개와도 같은 분이다. 헤어질 때 선생님은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동창 친구와 내게 작가 친필 사인을 넣어 건네주었다. 뜻깊은 작가와의 만남 뒤, 정작 갈대를 볼 때마다, 순천만을 찾을 때마다, 그 작가보다 안개의 지역에 사시는 우리 선생님이 더 생각난다.  

  위대한 일상이란 평범한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생각들과 사물들이 아닐까. 애면글면 바람이 지나갈 넉넉한 자리 하나 만들어놓고 노랗게 나이 들어가는 갈대들이 나를 닮은 것만 같다. 갈대밭엔 바람도 안개도 모두 숨어있다. 이 가을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갈대를 닮았다. 그냥 그렇다. 2018.10.



예제없이  

헤살 대는 

습지 가을바람 


흐드러진 

갈대밭에 

안개도 숨었네


찰진 머리 

땅으로 보듬은 

바람의 축제여!


멋진 신사 어디에

갈대 곁 한숨 엮는 

감성 화석男만


<갈대밭엔>




나미래의 여행에세이 

[나는 아들과 여행한다]

갈대의 도시_전라도 순천(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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