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여행에세이, <나는 아들과 여행한다> 지리산편
[여행에세이 연재13] 스님과 절 마당 툇마루에서 큐브
아들의 큐브는 요 근래 상자 속 깊은 곳에 갇혀 있었다. 초등 1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큐브를 맞추었고 여러 종류의 큐브를 사서 모으기 시작했다. 양손에 쥐기도 힘든 대형 큐브들은 조각조각 고장이 나기도 해서 비닐봉지 안으로 들어가는 신세를 겪기도 했다.
얼마 전, 아들은 상자 속에 묶여 먼지가 짙게 쌓여가는 큐브를 다시 꺼내왔다. 띄엄띄엄 만져보기는 했으나 888큐브까지 마스트를 하고 나서는 속도를 갱신해야 한다는 것에 민감해하지 않은 듯했다. 여전히 손은 굳지 않았던지 가볍게 돌려본다.
"엄마, 큐브는 참 경우의 수가 많아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
"다시 연구를 시작해야겠어요."
이렇게 말을 하곤, 큐브 노트를 만들어초등 1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A4용지에 대충 적어놓은 메모가 꽤 많이 없어졌다. 칠판에 적어놓고 지워버린 녀석들이 아깝다며 큐브 노트를 만들어서 그곳을 이용하라는 엄마의 말을 따른 듯 다양한 경우의 수를 조금 적어놓기도 했다. 나의 핸드폰에 큐브 타이머를 깔고 자신의 것처럼 빌려가서는 독점을 할 때가 많았다.
이번 지리산 연곡사 템플스테이에도 큐브와 함께였다. 차를 타고 있는 동안 손을 움직이고 싶었던지 가장 무난하고 편한 222큐브와 333큐브를 챙겨 드는 것이었다.
연곡사에서는 스님들이 아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다. 더 가깝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마다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아들이었다. 스님들과 여러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을 하는 녀석의 모습에서 지금까지의 나의 잔소리가 잘 먹혔나 싶었다. 아들은 유독 절의 밤을 두려워했었다. 저녁 공양을 하고 잠시 절 주변을 돌아보고자 했던 계획은 '귀신이 나올 것 같다'는 아들의 외침에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엄마가 최고여서 여행을 함께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기에.
지리산 연곡사에서 엄마와 쌓은 여러 추억들을 정리할 무렵이었다. 주지스님은 짐 정리를 하고 있는 우리 두 모자에게 '천천히 더 놀다가 가시라.'라는 말을 남겨주었다. 조카와 구례에서 만날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좀 더 여유롭게 절집 마당에서 피아골의 그 숲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으리라. 조금 친해진 아들과 헤어지려니 주지스님은 계속 질문을 더 쏟아낸다.
"지산이 뭘 좋아한다고 했지?"
"학교 공부요? 아님 다른 거요?"
"네가 좋아하는 것 말이야. 공부 말고."
"저 큐브를 만지는 거 좋아해요."
"큐브가 뭐야?"
"그 그거 있잖아요. 네모난 조각들이 모여 있어 맞추는."
"그게 뭘까?"
스님이 궁금해 하는 것 같아 나는 아들에게 차에 가서 얼른 가져오라는 신호를 했다.
"오호. 이거구나. 너 이거 이상하게 섞어놔도 금방 맞출 수 있단 말이지? 그런 자신감이 있단 말이지?"
단호하게 ‘네’라고 말하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동영상을 찍으면서 바라본 스님과 아들의 모습에서 기쁨이 넘쳤다. 무엇이든 잘 들어주는 어른 앞에서. 특이한 어른 앞에서 아들은 작은 날개를 펴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엔 큐브를 들고 똑같은 이야기만 하는 듯한 아들이었다. 늘 봐달라고 들고 와 내 눈앞에 큐브를 내어놓는 녀석의 손을 자주 무시했다. '저리 가서 혼자 하면 좋겠다.'라고 자주 말을 했었던 나를 순간 조금 반성케 했다.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자 들고 간 큐브가 절집 툇마루에서 그 소리가 빛날 줄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곡사 템플스테이는 아들에겐 분명히 즐거웠던 여행이었음이 틀림없다. 2017.10.
나미래의 여행에세이
[나는 아들과 여행한다]
연곡사 기행, 지리산(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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