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살뜰 챙겨주는 가정에서 손가락에 물 안 묻히고 큰 것도 아닌데 스무 살 성인이 된 나는 요리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집안 사정이 어떻든 간에 철딱서니가 없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자취할 때는 룸메이트 J 언니가 살림을 잘해서 언니가 해주는 밥을 많이 먹었다. 그리고 일돌 남편에게 코 꿰어 스물 네 살에 결혼을 했는데 할 줄 아는 게 없는 거다.
남편은 기본적으로 손맛이 있다. 포장마차, 생선장사를 했던 어머니를 닮았다. 장사를 하던 어머니는 식구들 먹을 국이나 반찬을 한 솥씩 했다고 한다. 보고 자란 게 무섭다고 남편은 소고깃국도 곰솥으로 가득! 돼지등뼈볶음도 한 솥으로 했다.
남편의 요리 중 베스트는 고등어 추어탕이다. 아이들도 아빠가 해주는 고등어추어탕을 좋아한다. 숙주와 얼갈이배추를 듬뿍 넣고 고등어를 삶아 살만 발라서 된장과 함께 풀어 청양고추, 대파, 마늘을 팍팍 넣어 푹 끓인다. 한 솥을 끓여 식혀 친정엄마 한 그릇 갖다주고 소분해 냉동해 두고두고 먹는다.
나는 물컹하고 비릿한 생선이나 오징어 등의 촉감은 팔뚝에 솜털이 섰고 핏물 베인 붉은 살덩이는 보는 것도 만지는 것도 싫었다. 생선을 먹다가 입 안에 가시가 걸리면 비위가 팍 상해 구역질이 났다. 마누라는 채소가 아닌 것은 만지는 걸 싫어하고 남편은 생선장사 하는 엄마 거들며 이런저런 손질을 잘한다.
한 참 서서 고등어살을 발라내던 남편이 생색을 있는 대로 낸다.
"울 엄마는 나처럼 이렇게 안 했어. 큰 가시만 발라내고 생선을 채에 짓이겨서 넣었지. 먹을 때 가시가 입에서 엄청 걸려. 네가 가시를 너무 싫어하니까 이렇게 수고스럽게 하나하나 골라내는 거다."
고맙다. 고맙지요 남편님아, 근데 양껏 하는 요리 시다바리도 힘들다고.
일돌 남편은 요리는 곧잘 하는데 설거지는 귀찮아한다. 칼질도 싫어한다. 씻고 데치고 써느라 몇 배의 시간을 고생하고 뒷설거지를 하다 보면 생색내는 남편이 얄미울 때가 있다. 식당 주방에서 초짜가 허드렛일을 다하고 나중에 주방장이 와서 휘리릭 짧은 요리를 완성해 내면 모든 찬사는 주방장이 받는단 말이지.
남편이 가아끔 스페셜하게 해주는 요리만 바라볼 수 없다. 매끼 우리는 밥을 먹어야 하고 잘해도 못 해도 해 먹여야 하는 입장이 되었으니 어떡하나. 요리책을 보거나 친정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면서 반찬을 했다.
"넌 볶음이랑 무침 하나는 잘해! "
"진짜? 에이, 볶음은 웬만해서 다 맛있지."
"얘가 뭘 모르네. 무침, 볶음 맛없게 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입 짧은 내가 맛있다고 하면 잘하는 거야."
남편의 칭찬에 힘입어 열심히 반찬을 해대기를 수년.
처음으로 주꾸미를 사서 내장을 떼어내고 요리를 한 날 알밤양이 울 엄마가 이런 것도 하다니 신기해했다. 나도 내가 기특하고 신기했다.
그런데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아주 조금씩 일돌 남편은 집안 살림에서 발을 빼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화장실 청소를 안 하더니 바쁘다며 방청소를 손 놨다. 그리고 요리하는 횟수도 많이 줄었다. 결혼 24년 차 현재 남편은 아침에 출근했다 9시에 퇴근해서 밥 먹고 겨우 밥그릇 담그는 평범한 남편이 되어 있었다. 나 어쩐지 조련당한 기분이네.
미야작가 / 연은미
만화가 &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을 그릴 때나 그리지 않을 때나 삶은 계속됩니다. 먹고 자고 싸고 청소하고 지지고 볶고 일하고 사랑하며 하루가 지나갑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지만 내 눈으로, 내 몸으로 보내는 날들입니다. 까먹기 대장이라 시작한 미야일상툰, 가볍게 즐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