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정리' 후 '투자'.
요즘같이 쌀쌀한 겨울날에 저의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실감합니다. 맞벌이 부모님 대신에 어린 저를 돌봐주셨던 할아버지는 말년에 참 오랜 시간 병상에 계셨습니다. 할아버지를 보며 요즘 의사들이 말하는 '생로벼어어어어엉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마음으로 배웠습니다. 병마와 싸우는 것도 힘든데, 이 와중에 들어가는 간병인비용과 병원비가 엄청납니다. 하지만 간병인을 안 쓸 수도 없습니다. 아픈 부모님이 있는 자식은 또 그 자식이 돌봐야 할 자녀가 있으니까요. 요즘 '간병파산'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된 요즘, 우리 할아버지는 대단했다고 새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재정적으로 할아버지는 본인의 노후를 본인이 책임지셨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를 통해 한 인간이 본인의 노후를 재정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외의 많은 교훈도 얻었습니다.
5,60대 부모라면 노후준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 시기의 부모가 재정적으로, 법적으로 체크하고 생각해 볼 리스트를 아래에 남겨봅니다.
첫 번째로 할 일은 내 자산과 채무 목록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예금통장, 적금, 주식, 채권, 부동산 등등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자산을 나열합니다. 의외로 내가 잊고 있는 휴면통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는 금융결제원에서 운용하는 계좌정보통합관리서비스 사이트가 있으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링크 클릭).
채무 또한 정리해봐야 합니다. 신용카드, 주택담보대출금 등등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채무를 나열해 보는 것입니다. 총자산에서 총부채를 뺀 금액이 나의 순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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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산과 채무 목록을 정리하고 순자산을 계산했다면, 이제 이 순자산을 현재 내 나이에 필요한 은퇴자금액수와 비교해봐야 합니다. 미국의 대표 자산운용사 피델리티에 따르면 50세에는 내 연봉의 6년 치가, 60세에는 내 연봉의 8년 치가, 67세에는 내 연봉의 10년 치가 순자산으로 있어야 한다고 나옵니다. 연봉이 5,000만 원이라 가정하였을 때 50세에는 3억 원, 60세에는 4억 원, 67세에는 5억 원의 순자산 있어야 합니다.
아직 은퇴자금이 부족하신가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투자보다 필요 없는 고정지출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생각보다 줄일 수 있는 고정지출이 많을 수 있습니다. 매달 나가는 보험금을 확인해 보세요.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한 성인이라면 더 이상 부모의 '소멸성' 생명보험은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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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를 생각하기 전에 우선은 비상금 통장에 충분한 비상금을 넣어두어야 합니다.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면 12개월의 생활비를, 이미 은퇴를 한 경우라면 24개월에서 36개월의 생활비를 가지고 있는 것을 권합니다. 예상치 못한 의료비가 발생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비상금은 말 그대로 비상시에 사용하는 돈이기 때문에, 저는 금리가 높은 통장에 넣어두는 걸 선호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5,000만 원이 예금자 보호 한도입니다. 은행이 갑자기 망해도 나의 돈을 보호받을 수 있는 돈의 한도란 뜻입니다.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하나의 은행통장 (예: 은행 A)에 5,000만 원의 잔액이 있다면 다른 은행 (예: 은행 B)에 돈을 예금하기를 권합니다. 다른 지점이 아니라 각각의 은행에 예금자 보호 한도가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이자율이 5퍼센트 이하라면: 매달 최소 납부액만 냅니다.
이자율이 5퍼센트 이상이라면: 최대한 빨리 갚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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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 수명이 90세라고 합니다. 50세라고 해도 아직 40년의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1에서 5번의 리스트를 지나고도 여유자금이 있다면 충분히 연금저축펀드에 돈을 납입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주식은 기업의 소유권을 나타냅니다. 기업에는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그 직원들이 내가 은퇴한 후에도 나의 파트너가 되어 줄 것입니다. 주식은 미국의 S&P500 ETF에 투자하는 것을 권합니다. 채권은 대한민국 장기국채 ETF를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채권보다 주식에 비중을 두시길 권합니다. 시간이 충분한 돈은 그 자리를 오래도록 지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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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은 생활 규모를 줄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운사이징 형태는 다양합니다. 첫 번째는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고 줄이는 것입니다. '맥시멀리스트'였던 할아버지가 편찮아지시니 할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는 것은 모두 가족의 몫이 되었습니다. 맨 처음엔 정성껏 정리하던 짐들도 양이 많으니 결국 그저 없애야 하는 물건이 돼버렸습니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물건들만 남겨두세요. 그리고 정리를 함으로써 집도 넓어질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주거 공간을 더 작은 집이나 아파트로 바꾸는 것입니다. 제가 사는 미국시골동네에는 은퇴하고 큰집에서 작은집으로 이사 온 노부부들이 많습니다. 당연히 작은집이 큰집보다 가격이 저렴하니 집을 팔면서 남은 돈을 노후자금으로 씁니다.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더 이상 꼭 좋은 학군에 살 필요는 없습니다. 자녀들이 이미 결혼을 했다면 더 이상 방이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사는 개인의 선택이나, 우선 집안에 짐을 줄여야 이것이 가능한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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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건강할 때 전문 변호사를 만나서 유언장을 작성하십시오. 유언장이라고 하면 흔히 자산분배만 떠올리는데, 내가 거주하는 나라의 법에 따라서 채무도 대물림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대물림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전문 변호사를 만나 미리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리빙 윌 (Living Will)은 본인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본인 스스로의 의사로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가족들과 의료진이 취해야 할 조치들을 적어 놓은 것을 말합니다. 이 리빙 윌은 내가 건강하고 정신이 맑을 때 작성해 놓아야 법적 효력이 있습니다. 나의 건강상태가 의학적으로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해졌을 때, 인공호흡기나 기타 생명 연장 장치를 사용하시고 싶나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중요할 결정을 가족이 대신하게 하지 마세요. 저의 경험상, 가족이 환자 본인 대신 결정을 내리게 될 경우 어떤 결정을 해도 가족에겐 후회가 남습니다.
미국에서는 리빙 윌이 보편적이나 대한민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문 변호사와 상의해보시기를 바랍니다. 혹여나 리빙 윌이라는 것이 없다 해도 본인의 결정을 가족에게 미리 알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배우자와 휴대폰 비밀번호를 공유해 두십시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겨 휴대폰을 열어봐야 할 경우 비밀번호를 모르면 곤란할 수 있습니다.
격동의 대한민국 시절을 보내고 멋진 삶은 살아온 당신에게 존경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