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강요하진 않았지만 저는 약속을 꼬박꼬박 지키고 있었습니다. 백 번의 일요일 동안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어요. 그렇게 오늘이 왔습니다. 2년 전 첫 글을 올릴 때 미리 달력에 저장해둔 날에 드디어 알람이 울렸네요. 영원히 먼 훗 날 같던 날이었는데요.
지난 100주간 글을 올리며 저에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삶의 행로가 달라졌어요. 매주 글을 쓰다 보니 일상과 글의 세계를 시나브로 혼동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 글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의 점성이 점차 늘기 시작했답니다. 그러다 보니 생의 방향이 저도 모르게 차츰 조정되어 갔지요. 직장에 다니다가 덜컥 휴직하고 공유서재를 차린 것도, 사는 곳을 서울에서 춘천으로 잠시 옮긴 것도 다 매주 글을 쓰다가 벌어진 일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사이 덤으로 두 권의 책 출간 계약을 하는 행운까지 누렸습니다. 한 권은 첫서재를 고치고 다듬고 운영한 날들과 이곳에 살면서 세공한 생각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한 권은 사회생활하면서 고작 이 정도의 어른이 된 저 자신을 성찰하는 에세이예요. 타인의 시선이 닿는 곳에 매주 글을 쌓아두지 않았다면 결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기록들이었겠지요. 아마 올봄이 가기 전에 두 권이 잇따라 출간될 것 같아요. 지금 두 출판사의 편집자분들과 함께 열심히 교정, 교열과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답니다.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놓기 부끄럽지만, 그래도 출간이 되면 매주 제 글을 읽으러 와 준 구독자분들께 가장 먼저 자랑할 거예요. 어차피 그 부끄러움은 사라지지 말아야 할뿐더러 사라질 리도 없는 감정이라는 걸 이제는 깨닫거든요.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가 글을 내보일 때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신받은 게 가장 큰 성과였습니다. 꾸준히 쓰는 일이 고되었어도 보람되었고, 하물며 창작글을 쓰고 싶다는 어릴 적 꿈까지 그사이 스멀스멀 되살아나기 시작했어요. 매주 글을 기다려준다고 말씀해주는 분들 덕분에 일상의 행복감과 자존감도 높아졌고요. 가끔 첫서재에 손님으로 왔다 가시면서 ‘브런치 글 잘 보고 있어요’라고 웃으며 말씀해주는 분들 덕에 하루하루가 환해지기도 했답니다. 남겨주신 댓글들도 두고두고 아껴 읽고 있어요.
오늘 글은 길어지면 안 될 것 같네요. 뭐 크게 이룬 것도 아니면서 괜히 우쭐하는 마음이 손가락을 간지럽혀서요. 그래도 이 성취감을 짧게라도 기록해두고 싶었어요. 아마 다음 주부터는 매주 일요일마다 연재하듯 글을 올리지는 않을 것 같아요. 행복했지만 힘에 부치기도 했거든요.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닌데 마치 마감을 정해둔 주간지 기자나 웹툰 작가처럼 사는 게, 때로는 스스로 옭아맨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100번 연재의 약속을 기어코 지켰으니, 이제는 당분간 주기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 올리고 싶은 글을 올리고 싶을 때 올리려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오랜 꿈인, 창작글을 쓰는 데 남은 휴직 기간을 집중해보려 해요. 저 자신과의 새로운 약속으로 삼고 역시 매주 꾸준히 써 보려고요. 물론 부끄러워서 이곳에 차마 올리진 못할 것 같지만요. (전혀 다른 이름으로 새로운 브런치나 블로그 계정을 몰래 오픈해볼까 하는 꿍꿍이도 있습니다.) 어쨌든 창작에 도전하려는 토대도 매주 이곳에 글을 놓아두기 시작하면서 쌓여갔으니, 다시 한번 이 계정을 쓰다듬어주고 싶네요. 어른이 될수록 누군가에게 쉽게 조언을 건네기 힘들어졌는데, ‘매주 글을 써 보라’는 조언만큼은 조심성 없이 누구에게든 건네고 싶어졌어요. 당신의 묵은 꿈이 발견되거나 되살아날 수도 있다고요.
마지막으로 그동안 저의 반복되는 일요일이 저만의 외로운 사투가 아니도록 함께 글을 읽어주고, 응원해주고, 댓글을 남겨준 한 분 한 분께 진심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이 감사의 마음을 활자에 온전히 묻힐 기술이 아직 제게는 없네요. 아무쪼록 오래오래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어요. 혹시 꾸준히 찾아왔지만 한 번도 읽은 흔적을 남기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이 글에 짧은 댓글이라도 덧대주시면 더 감사할 거예요. 이름이라도, 별칭이라도 손가락으로 만져보고 감사의 마음을 전이하게요.
언제 어디서든, 이 계정이든 또 다른 곳에서든, 저는 항상 쓰고 있을 거예요. 누구에게도 아닌 저에게 건네는 말입니다. 존경하고 질투하는 타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저의 애매한 필력과 얕은 식견을 자책하고는 하지만, 매일 읽고 쓰는 것 외에는 그들을 닮아갈 도리가 달리 없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미진하면 미진한 대로 쓰는 습관을 삶의 유일한 강박이자 동력 삼아 앞으로도 살아나갈 겁니다. 그 여정의 첫 오르막 구간을 같이 걸어주셔서 몹시 힘이 되었어요. 정다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