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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Dec 31. 2018

교육 개혁의 맨 앞에 와야 하는 것

시론 | 김진경 (제2기 국가교육회의 의장)

미래세대가 절망하는 이유


 미래 희망을 공무원이라고 말하는 대다수 초등학생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고등학교 교실, 머지않아 국가소멸을 가져올 수도 있을 정도로 악화되어 있는 저출산 현상, 젊은 세대의 입버릇이 된 “헬 조선”. 우리 사회 어디에도 젊은 세대가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고 있다는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미래세대는 왜 이렇게 절망하고 있는 걸까?


 그 주된 원인은 현재의 경제사회체제가 미래세대에게 매우 적대적이라는 데 있다. 현재의 경제사회체제는 빚으로 소비하는 체제이다. 노동인구가 대폭 늘어나는 추세일 때는 그래도 “미래 소득을 당겨 쓴다.” 정도의 점잖은 말로 넘어갈 수 있겠지만, 미래 노동인구가 대폭 감소하는 추세라면 그것은 미래세대에 대한 약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산업화 시대 공교육이 학생의 미래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실한 답을 주었던데 반해 현재의 공교육은 학생의 미래에 대해 답을 주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된 데는 빠른 변화와 인공지능 자동화로 직업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공교육 시스템이 여전히 산업사회 교육체제와 시장주의에 머물러 미래사회에 필요한 답을 주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기성세대가 “더 많은 소유와 더 많은 향락”이라는 산업사회의 탐욕적 가치관으로 미래적 가치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도 절망이 만연한 이유 중 하나이다.


 한국은 이미 고도 성장기를 넘어 저성장기, 경제적 정체기에 들어서 있고, 사회 계급계층도 상당히 고착되어 있다. 그럼에도 산업화 시대 고도성장기의 가치 기준과 방식을 강요하면 미래세대는 극한 경쟁으로 내몰려 절망할 수밖에 없다. 산업사회와 시장주의를 넘어서 미래 패러다임을 정립해가는 대개혁은 한국사회의 지속적 유지를 위해 매우 절실한 과제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그 대개혁은 미래세대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미래세대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는 산업사회 시스템


 근대산업 국가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노동력으로 보고 재생산을 관리하며, 자본의 안정적 축적을 지원하는 시스템으로서 출현했다. 자본은 축적 자체를 목적으로 하니 근대산업 국가는 축적을 위한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인 셈이다. 맹목적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시스템은 모든 것을 대상화하여 관계를 파괴하기 마련이다. 심각해진 환경문제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노동력의 안정적 재생산 관리체제로서의 근대산업 국가는 인간의 노동력이 자본의 축적에 절대적 역할을 하고 노동 가능한 인구의 대다수에게 안정적 노동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전제 아래서만 성립이 가능하다. 인간의 노동력이 자본축적에서 갖는 비중이 줄어들고, 제대로 된 노동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근대 산업국가 패러다임은 그 실효성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80년대 중후반 이후 근대산업 국가 패러다임의 실효성은 급격히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자본의 축적을 지원하는 생산성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삶의 질 향상을 중심에 두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현실에선 자본 축적을 지원하는 국가의 역할이 강화되었고, 그러한 역주행의 결과는 분배 소비 영역의 급속한 악화와 그로 인한 생활 생태계의 고갈을 가져왔다. 1인 가족의 급속한 증가와 저출산 문제, 지금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경제적 파국은 80년대 중후반 이후 급속히 진행된 생활 생태계의 고갈에 그 원인이 있다.


 수렵 종족이 자연생태계의 고갈을 막기 위해 일주일에 15-16 시간 넘는 노동을 금기시했듯이 생활 생태계의 고갈을 막고 풍부화하기 위한 새로운 노동 분배 양태, 부의 분배 양태와 그에 적합한 국가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 체제의 방향성과 미래세대에게 필요한 역량


 인공지능 자동화의 전면화로 인간의 노동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통적 의미에서 안정적 노동의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될 때 근대교육시스템은 존립 근거 자체가 흔들린다. “산업사회형 직업 – 실업 – 일과 놀이가 어우러지는 문화적 일자리 –  산업사회형 직업 – 사회 문화적 일자리 ……”와 같은 삶의 형태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획일적 생산성의 기준에 따른 평가를 강요하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은 ‘죽으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미래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다양한 교육 직업 생애를 통일적으로 인식하고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역량이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기 정체성의 형성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삶에 대한 의욕과 모험심이다.


 인공지능 자동화의 전면화는 기존 노동자의 임금과 자본의 이윤을 통해 이루어지던 부의 분배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기본소득 보장, 사회복지의 확대와 같은 증여적 분배 방식이 비중 있게 도입되지 않으면 미래 사회는 극단적인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의 폭증으로 말 그대로 지옥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증여적 분배 방식의 도입과 확대는 산업사회 기득권의 양보를 받아낼 때만 가능하다. 미래세대에게 민주적 권리에 대한 자각과 민주적 역량이 필요한 이유이다.


 자본 축적을 위한 중앙집권적 시스템으로서의 근대 산업국가의 해체는 에너지의 지역으로의 분산이라는 시스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분권화와 에너지의 지역 분산은 궁극적으로 지역생활 생태계의 활성화를 지향한다. 사라지는 산업사회형 일자리를 대체하는 사회 문화적 일자리의 전면적 출현은 생활 생태계의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며, 사회복지의 확대, 기본소득보장 등 증여적 분배 방식의 확대와도 맞물려 있다. 이러한 변화는 미래세대에게 공동체적 의식과 관계 맺는 능력의 강화를 요구한다.


 학자들은 현재의 사회를 지능정보사회, 혹은 인지자본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러한 시대에 성장기의 문화적 결핍이나 기초학습능력의 결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산업화 시대에는 성장기의 문화적 결핍이나 기초학습능력 결여가 살아가는 데 치명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인지자본주의 시대에는 정상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치명적 요소이다. 성장기의 문화적 결핍이나 기초학습능력의 결여로부터의 자유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보장되어야 할 기본 권리의 성격을 갖게 될 것이다.


교육 문화 대개혁을 위한 선결 과제


 이제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산업사회와 시장주의로부터 탈피하는 패러다임의 전환과 대개혁은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그럼에도 개혁의 시도들이 끊임없이 좌절하여 원위치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산업사회형 사회적 통념이 변하지 않는 데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미래 산업 자원으로 바라보는 도구적이고 서구편향적인 시각을 넘어서는 일이 우선 필요하다."

 하지만 완강하게 변화하지 않는 산업사회와 시장주의 시스템이 앞에서 언급한 미래가치를 억누르고, 부분적인 개혁의 시도들을 끊임없이 원위치시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떤 개혁도 사회적 합의 수준과 통념을 크게 넘어서서 진전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 수준을 높여 사회적 통념을 바꾸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완강하게 변화하지 않아 개혁, 특히 교육 문화적 개혁의 진전을 어렵게 하는 사회적 통념으로 어린이 청소년관을 들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통념으로 자리 잡고 있는 어린이 청소년관은 근대 초기인 일제강점기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 있지 않다. 육당 최남선은 최초의 근대시로 평가되는 “해(海)에게서 소년에게”에서 소년을 서구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가정과 국가를 부흥시킬 존재로 예찬하고 있다. 당시 상황에서는 신선한 의미를 가졌을 수도 있는 이러한 청소년관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나치게 도구적으로 보고 있으며 서구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동심 천사 주의 역시 근대 초기에 아동을 중심에 두는 서구 핵가족 지향이 아동관으로 표현된 것으로 서구 편향 도구적 아동관의 다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도구적이고 서구 편향적인 아동관은 박정희 시대를 거치며 교육제도로 자리 잡았다. “서구에서 생산된 지식을 빨리빨리 받아들여 될 수 있으면 짧은 시간에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에게 주입시키고 암기하게 함으로써 서구 선진국을 하루빨리 쫓아가야 한다.”로 요약되는 산업화 시대 교육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의 어린이 청소년에 대한 통념은 여기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한국은 이미 선진국의 문턱에 이르렀고, 로봇밀도가 압도적 세계 1위(일본의 두 배 이상 미국의 세 배 이상이어서 더 이상 따라갈 앞선 모델이 있을 수 없는 나라이다. 이제 스스로 길을 만들어나가야 하고 어쩌면 우리가 세계의 모델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미래 산업 자원으로 바라보는 도구적이고 서구 편향적인 시각을 넘어서는 일이 우선 필요하다. 이것이 “미래사회를 위한 어린이 청소년 교육, 문화 권리선언”이 교육, 문화 대개혁의 맨 앞에 와야 하는 이유이다.  


 국가교육회의는 산업사회와 시장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2030 교육체제 수립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고, 2019년 10-11월 OECD 에듀케이션 2030 워킹그룹회의를 유치하여 사업의 중간 결집점으로 삼을 예정이다. 새로운 어린이 청소년관과 미래사회를 위해 어린이 청소년의 교육 문화적 권리에 대한 토론의 결과는 OECD 2030 교육체제 국제 콘퍼런스의 서두에 선언 형식으로 집약될 것이고, 이후 추진되는 2030 교육체제 수립 사업의 중심에 미래세대의 관점을 확고히 세우는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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