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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서태지 13- 서태지와 응원봉

서태지 팬덤 301

by 지현

한 마디로 얘기하자.

서태지 팬덤에게는 응원봉이 없다.


2024년 12월 얼토당토않은 계엄령 포고로 시작하여 빛의 혁명이 진행된 대한민국의 이곳저곳. 겨울이라 밤이 길었던 이 시기에 시위의 주체로 나선 수많은 20, 30대 여성들이 광장에 있었다. 촛불은 그 효용을 다했다는 듯, 한국이 LED강국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너 나 할 것 없이 집에 있던, 아이돌 콘서트에 주로 사용하던 응원봉들을 가지고 나와 눈이 부신 발광력으로 형형색색 거리의 열기를 달아오르게 했다. 탄핵을 외치는 깃발이 없었다면 아마 콘서트장이나 거리 축제라고 다들 생각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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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 시위에 사용된 응원봉. BBC 캡처


가장 민주적이라고 꼽히는 40대들이 대부분인 팬덤의 주인공답게 2024년 성탄 메시지에서 서태지는 "요즘 7년 만의 탄핵 정국으로 대한민국이 시끌시끌하다"며 "우리 팬들도 집회에 많이 참여한 것 같은데, 아직도 작동하는 응원봉이 있던가요" 하며 물었다. 세상에 응원봉이라니. 우리는 그런 거 없었다. 그걸 서태지가 잊어버리다니... 주된 이유는 물론 서태지가 한참 활동하던 20년 전 아직 응원봉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설사 번쩍번쩍 빛나는 최고의 기술력의 응원봉이 있어도 그 당시 서태지 팬들이 그런 것을 원했을지는 의문이다.


아이들때는 잘 모르지만 6집 컴백 뒤에는 우리는 알록달록 팬시한 물품으로 우리를 치장하지 않았다. (비록 콘서트 전에 열리는 장터에서는 능력 있는 팬들이 제작한 팬 아트 등이 공유되기는 했지만) 4-5만 원씩 하는 응원봉을 구매하지도, 그것을 리듬에 맞춰 흔들지도 않았고 '우유빛깔 서태지'를 노래 후렴마다 합창하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면 그런 팬 활동을 조직할 팬클럽조차 없었다. 어떤 팬들도 클럽회장이라는 이름으로 특혜를 받지도 않았고 서태지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기회를 잡을 수도 없었다. 초상권 옹호 대표 서태지의 팬답게 콘서트 때 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고 폰을 꺼내면 수많은 팬들의 눈총과 제재를 받았다.


그럼 뭐가 있었냐고? 우리는 노란 손수건이 있었다. 1996-2000 서태지의 은퇴 5년 동안 집에 없는 사람을 여전히 가슴 벅차게 기다린다는 상징의 노란 손수건이 우리의 심볼이 되었었다. 노란 손수건을 팔목에 감고 머리를 양갈래로 땋고 (뒤로 묶으면 헤드뱅잉 할 때 뒷사람을 다치게 한다) 소위 '그루피'가 아니라 '쿨한 락팬'으로 놀았다. (그루피가 락팬에 대한 여성혐오적 단어임을 지금은 안다. 그때 나의 인식이 그랬다는 것이다.) 전국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항상 서태지가 어느 공연장을 가든 음향 상태를 팬들의 자리에서 점검했다) 사운드 시스템과 쾅쾅 울리는 스피커들 밑에서 음악을 즐기고 슬램을 하고 파도를 타고 헤드뱅잉을 했다. 땀이 나면 노란 손수건으로 닦았다. 7집 때는 하얀 FM 아대를 구할 수 있어서 그걸로 땀을 닦았다. 조명이 필요한 블루지한 음악이 나오면 라이터로 불을 켜서 콘서트 장을 밝혔다, 다 흡연자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노릇이다. 2000년 6집 콘서트에는 라이터였지만 2014년 9집 콘서트에서는 다들 스마트폰이었다.


6796968.1.jpg 2000년 서태지 컴백쇼의 팬들. 노란 손수건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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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팬 활동은 사실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경제적인 활동이었다. 광고는 활동기 당 하나 정도 했고 그것도 토스카 같은 차여서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도 않았다. 팬클럽 회비도 없고 사야 되는 의무 머챈다이즈도 없었다. 그저 음반만 그리고 콘서트만 다녀도 되었다. 특히 조공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서태지는 솔로 활동 이후에는 사치품으로 채워지는 팬들의 선물 꾸러미 즉, 조공같은 것을 전혀 받지 않았고 아이들 시절에도 종이학처럼 정성이 들어간 선물을 특히 소중히 여겼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살림이 넉넉해진 팬들은 사치품 선물을 받지 않는 서태지를 너무 잘 알기에 2010-2011년에는 아마존의 구아피아수 지역에 서태지 숲을 조성하는 글로벌 스케일의 조공을 지구에다 했다. (서태지숲 관련 웹페이지 https://www.seotaiji-archive.com/xe/activity/58846#comment_552825) 지금 생각하니 그는 참 자본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활동을 했다 싶다. 이미 대스타였고 가지고 있는 자산이 있어서였겠지만 팬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던 태지의 인성과도 연관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팬들은 추억을 오래 간직할 만한 물걸들을 구입하길 원했고 공식굳즈가 없어서 아쉬워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결론은 뭐냐고. 우리는 응원봉이 없는 오래된 연식의 팬덤, 스타를 닮아 쓰레기 줍고 낭비 하지 않고 도덕성을 무섭게 지키려던 팬덤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말했듯이 참여였다. 그는 앞에 언급한 2024 성탄 ㅓ메시지에 "이번엔 특히 20대 친구들이 많이 참여했다는데, 그 옛날 함께 투쟁하던 우리들 생각도 나고, 기특하더라"라고 썼다. 우리는 응원봉이 없어도 이번에도 함께였다.


아무튼 서태지-서태지는 왜 10집을 내지 않는가


1부: 서태지의 음악

102: 서태지의 자연사랑과 방랑벽 - 프리스타일, 모아이, 숲속의 파이터

103: 서태지의 반항과 비판의식 - 교실이데아, 틱탁, 시대유감

104: 서태지의 고유성, 지키기 위한 싸움 - 레플리카, 수시아

105: 서태지의 플라토닉 러브 - 줄리엣, 10월 4일, 영원

106: 서태지의 이성애적 사랑 - 버뮤다[트라이앵글]

107: 서태지의 본업, 기계취미 - 휴먼드림, 로보트

108: 서태지의 절망, 고독, 비탄 - 코마, Take 3, Zero


2부: 서태지 이야기

201: 그가 이룬 것은...

202: 지극히 사적인,

203: 페미니스트 서태지

204: 세계속의 서태지(?)


3부: 서태지의 팬덤

301: 서태지와 응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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