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모두가 자라는
'푸른 꿈 작은 공부방'

교육 성장 네트워크 '꿈들'

제주시 건입동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 앞에 작고 소박한 건물 한 채가 서 있다. 2006년 제주교육대학교 학생들의 열정으로 태어난 ‘푸른 꿈 작은 공부방’. 교육 성장 네트워크 ‘꿈들’을 꾸리고 지난해 10월 이곳에 새 공부방을 지어 올리는 동안 예비 교사들은 어엿한 선생님이 됐다. 스토리펀딩은 그들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청춘, 

 그 순수한 무모함 


연면적 194㎡, 지상 1층 규모의 ‘푸른 꿈 작은 공부방’.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 옥상까지 달려 올라갈 수 있는 완만한 오르막길, 옥상의 야외 무대, 텃밭을 가꿀 수 있는 정원을 갖춘 꿈의 공간. 아이들의 꿈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열정이 설계도가 되고 건물이 되어 이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공부방의 13년 역사는 부침의 연속이었다고 허은지 선생님은 말한다. “매 순간이 위기였어요. 처음 공부방을 연 선배들이 한 1~2년 갈까 하는 마음으로 했다는데,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으니 얼떨떨하고 신기해요.” 


공부방은 2006년 제주교대 학생회장으로 출마한 오준수 씨가 내건 공약에서 시작됐다. 학원에 가지 않는 건입동 저소득층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치는 공부방을 만들어 교육복지 사업을 해보겠다는 조금 막연한 이야기였다. “건입동은 제주 구도심 권역이에요. 한때 중심가였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낙후된 거죠. 교육 환경이 제주 외곽으로 발달하는 도시를 따라 형성되면서, 건입동 아이들은 교육 혜택을 받을 기회가 적어졌어요. 그게 공약이 탄생한 배경이었을 거예요.” 


학생회 자치기구를 주축으로 구상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공부방은 건입동 어느 가정집에 둥지를 틀었다. 방 세 개와 부엌, 거실이 있는 30평짜리 집이었다. 50년도 더 된 낡은 곳이지만 가정집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아늑함을 느낄 것 같아 그 집을 골랐다고 한다. 학생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직접 문을 두드려 공부방에 올 아이들을 모집했다. 한 아이의 친구를 부르고, 친구의 친구를 불러 30여명을 공부방에 등록시켰다. “지금은 동초등학교, 일도초등학교, 인화초등학교 등에서 매년 3월 아동 수급 신청을 받는데, 처음에는 선배들이 한집 한집 찾아다니면서 부모님을 만나고 아이들을 모았다고 들었어요.” 



문을 연 뒤로 한 해도 쉽게 보낸 적이 없었다. 학생들이 과외와 아르바이트를 해서 운영비를 충당했다. 학교 축제 때 주점을 열어서 난방비를 버는 식이었다. 이듬해에는 못 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안고 10년을 부대꼈다. 그동안 공부방 공간 문제는 줄곧 풀리지 않는 숙제 같았다. “수리 안 된 집에서 방충망도 없이 지냈으니까요. 곰팡이 안 낀 곳이 없고. 결국 아이들이 다치는 안전사고 문제도 발생했어요. 제가 활동할 때 확실히 이곳은 더 이상 애들이 안전하게 뛰놀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죠.”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는 앞집, 옆집에 사과를 하러 다니는 것도 고된 일이었다.




 둥지 틀기만큼 어려운 

 둥지 옮기기 


공부방 멤버들은 작더라도 아이들이 더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마침 공부방 근처에 제주대학교 소유의 공터가 있었다. 지역 어른들을 찾아다니면서 여론을 모으고 제주대 총장을 직접 만나 설득한 끝에 구체적인 계획을 들고 오면 땅을 내주겠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 다음부터가 시작이었다. 역시 돈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동안 공부방을 지원해주던 어른들조차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까지 한 것도 대단하니까 이제 그만해, 너희 분수에 맞는 일이 아니야.’ 이런 말을 듣는 게 학생들의 일상이었다. “그동안 공부방 시설 수리를 무료로 도와주시던 낭이왁 대표 김철 소장님께서 예산을 짜주셨는데, 가건물로 짓는다 해도 한 평에 50만원, 최소한 총 3000만원이 넘게 든다고 하셨어요. 포기해야 하나 싶기도 했죠.”



그러나 학생들은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전열을 다듬었다. 2015년 ‘공부방 이사추진위원회’가 마련되면서 일의 체계가 잡혔고, 이미 발령을 받고 선생님이 된 OB 멤버들이 위원회를 이끌며 힘을 보탰다. 제주교대 학생회 자치기구 형태로 유지되던 조직이 ‘꿈들’이라는 비영리 민간단체로 정식 발족한 것도 이때였다. 


젊고 무모했기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절이다. “얼마가 됐든 그냥 우리가 어떻게든 모을 수 있겠지, 발로 뛰면 되겠지 싶었어요. 학교 끝나면 무작정 도의원님, 동장님, 동네 어른들을 찾아가서 ‘공부방을 짓고 싶은데 돈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어봤어요. 어이없어서 웃으시다가도 여러모로 방법을 같이 고민해주셨어요. 감사한 일이죠.” 


그리고 ‘아름다운가게’의 조언을 바탕으로 바자회를 열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뛰어다니며 물건을 모았다. 바자회는 2015년 10월 24일 1000만원의 수익을 남기며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2016년 2월 14일 열린 ‘푸른 꿈 작은 공부방 새 보금자리 기금 마련 음악회’에서도 힘이 될 만큼 후원금을 모을 수 있었다.  




 이야기가 불러온 

 기적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썼는데도 여전히 비용이 조금 부족했다. 그때 꿈들 멤버로 활동 중인 박경호 제주청년협동조합 이사장이 스토리펀딩 얘기를 꺼냈다. 허은지 선생님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 일이구나’ 싶었다고 한다. “전에 몇 번 스토리펀딩 연재 글을 읽어본 적이 있거든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펀딩을 받는 구조라니, 딱 내가 할 일이구나 싶어서 적극적으로 나섰어요.” 



운영진은 지난 10여 년간 쌓아온 이야깃거리를 어떻게 하면 더 호소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백영선 스토리펀딩 PD가 전해준 구체적인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백 PD님이 공부방이나 제주도와 관련된 리워드를 마련하는 게 좋겠다고 코치해주셨어요. 그래서 동시를 쓰시는 안진영 선생님께 재능기부를 받아 동시 엽서, 동시 CD 리워드를 마련했는데 반응이 참 좋았죠. 스토리펀딩은 누가 누굴 도와주는 게 아니라 멋진 일 하는 사람들을 밀어주는 플랫폼이라고 하셨던 백 PD님 얘기가 기억에 남아요.” 처음에는 힘들고 부담스러웠던 글쓰기도 허은지 선생님의 일상이 되어갔다.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을 받고, 그 애정에 대한 보답을 ‘리워드’로 하는 게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어느덧 스토리펀딩이 제 삶을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이 돼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펀딩이 잘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펀딩이 시작될 때부터 방장을 맡고 있는 김상은 씨도 그랬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어요. 제주 건입동에서 저희 같은 학생들이 하는 작은 공부방인데 이걸 사람들이 알아줄까 싶었거든요.” 허 선생님은 한술 더 떴다. “확신이 전혀 없었죠. 저는 아르바이트해서 번 제 돈을 다 넣으려고 했어요.”


결과는 예상과 크게 달랐다. 지난해 5월 23일까지 50일간 200만원을 목표로 진행한 펀딩에 총 423만2500원이 모였다. 목표 금액을 212%나 달성한 것이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김상은 씨는 ‘이야기의 힘’이라는 본질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야기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으니까요. 스토리펀딩을 하게 된 계기부터 과정, 후기까지 연재되니까 보시는 분들도 단순히 내가 펀딩을 한다는 것을 넘어 ‘이 사람들과 내가 함께 살아가고 있고, 연결되어 있구나’ 하는 걸 느끼셨을 것 같아요.”


허은지 선생님은 의인이 따로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 “작은 것도 나눌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또 우리 사회의 관심사 1순위가 교육이다 보니 저희가 좋은 선생님이 됐으면 하는 마음, 교육에 대한 믿음, 발전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참여해주신 것 같아요.” 펀딩을 마치고 리워드를 전달하기 위해 참여자들에게 연락했더니 진심이 듬뿍 담긴 문자들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것밖에 못 해서 너무 미안해요’, ‘오히려 제가 힘을 받았어요’ 이런 문자를 받는 순간 전율을 느꼈어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우리 얘기를 들어주시고 또 선뜻 돈을 보내주시는 그 마음 자체가 전하는 울림이 워낙 컸거든요.”



현역으로 공부방을 이끌어가는 김상은 씨에게 주는 의미도 컸다. “저 좋다고 하는 일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구나 싶어서 기분이 참 좋았고, 무엇보다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공부방 멤버들이 스토리펀딩을 계기로 다 같이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게 기뻤어요.” 스토리펀딩 덕분에 공부방은 제주 지역사회에 더 널리 알려졌고, 아이들 수급도 더욱 원활해졌다. 공부방 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된 건 덤이다. “공부방 한다고 매일 밤늦게 들어오는 걸 이해 못 하시던 부모님들이 스토리펀딩을 쭉 읽어보시고는 정말 장하게 생각해주시고 또 공감해주셨어요.”




 꿈이 자라는 곳 


새 공부방은 2017년 10월 문을 열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꿈과 상상을 펼칠 수 있도록 세심한 부분 하나하나에 아이들 뜻을 담아 공간을 꾸몄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사진을 잘라와서 직접 의견을 냈다고 한다. “아이들은 축구장처럼 넓어서 뻥 차면 공이 저 멀리 날아가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개미소굴처럼 비밀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했어요. 선생님들끼리도 회의를 많이 하면서 하나씩 그림을 짜맞춰갔습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 것은 ‘공간’의 힘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허은지 선생님은 스토리펀딩 소개글에 순천 기적의 도서관 관장을 지낸 허순영 제주도서관친구들 회장의 이야기를 썼다. 초등학교 때 기적의 도서관에서 뛰어놀던 한 아이가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경험한 덕분에 커서 건축을 전공하게 됐다는 얘기다. “좋은 공간에서 놀았던 기억을 간직한 아이가 ‘건축가’라는 꿈을 꾸게 된 거예요. 저희 공부방도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뛰어놀면서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했습니다.” 



김상은 씨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주는 특유의 안정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부방이 아이들이 온전히 뛰어놀 수 있으며, 보호받고, 사랑받고,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이었으면 해요.” 새 건물로 온 뒤로는 아이들이 정말 창의적으로 지내고 있다는 걸 선생님들이 누구보다 분명히 느끼고 있다. “여기선 선생님과 함께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걸 아이들이 알고 있거든요.”


아이들의 꿈을 자라게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발성’이라고 김상은 씨를 비롯한 공부방 선생님들은 믿고 있다. “선생님이든 아이들이든 스스로 배우고 싶은 걸 최대한 배울 수 있도록, 원하는 만큼,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합니다.” 수업도 아이들과 선생님의 의지로 다양하게 꾸려나가는 중이다. 간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음악 활동도 하고, 지역 역사 탐방을 나가거나 과학 실험 활동을 하기도 한다.




 선생님이 된다는 것 


96명의 아이들이 공부방을 거쳐갔고, 101명의 대학생들이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공부방에서 생겨난 ‘꿈들’은 신입 교사 공부 모임 ‘꿈꾸는 교실’을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제주 지역사회에서 교육에 대한 영감을 주고받는 공동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공부방이 열세 살이 되고, 꿈들이 번듯한 단체가 되고, 초등학생이 어른이 되는 동안 예비 교사들은 어엿한 선생님이 됐다. 허은지 선생님은 교단에 서기 전에 공부방에서 배운 것들이 자신을 진짜 선생님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어요. 아이들이 저를 키우고, 함께한 선생님들이 저를 성장시켰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그렇더라고요. 너무 고마워요.” 



허은지 선생님은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던 일을 특별하게 기억한다. 단순히 아이랑 친해질 수 있겠다 싶어서 저녁때 집에 데려다주기 시작했는데, 뜻밖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던 아이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집에 가보니 아이가 그동안 동생까지 챙기며 빈집에서 일 나간 엄마를 기다려왔더라고요. 아이 내면의 아픔이 느껴지면서, 내가 이 아이 삶에 생각보다 더 중요한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어 책임감이 커졌죠.” 


아직은 예비 교사인 김상은 씨도 공부방에서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과 자극을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했다. “처음 교대에 왔을 때는 그냥 착하게 공부만 열심히 하면 좋은 교사가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공부방에 오고부터 정신을 차렸죠. 어떻게 하면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김상은 씨는 아이들과 주고받는 사랑으로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이 저에게 준 사랑 덕분에 저는 구원을 받은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더 큰 사랑을 줄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하죠. 아이들은 저를 통해, 저는 아이들을 통해 배우면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 그게 교육 아닐까요?”



◼︎ 푸른 꿈 작은 공부방의 뒷이야기


매거진 <Partners with Kakao>의 6호는 이렇게 구성됩니다. 

<Partners with Kakao> 6호 목차

카카오 파트너들의 특별한 5월 / Mason's talk

◼︎ Partners

50년 역사의 어린이집, 디지털을 입다 / 세네동 어린이집
바른 소통을 위한 알림장의 진화 / 키즈노트
부부가 함께 그리는 귀촌 라이프 / 글피
모두가 자라는 '푸른 꿈 작은 공부방' / 꿈들 (본 글)

프로젝트 성공 노하우 카카오가 코치합니다 / Kakao 클래스

◼︎ with Kakao

너의 목소리가 보여 / 모두를 위한 연결
아이들이 더 행복한 세상을 향해 / 같이가치 with Kakao
지금 학교는 만들기 공부 중 / 학교 메이커 교육 프로그램
카카오미니, 일상 속으로 성큼 / 카카오미니

오프라인으로도 발간되는 <Partners with Kakao> 매거진은 카카오헤어샵 우수매장 200곳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6호의 전문은 아래에 첨부된 pdf로 받아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부부가 함께 그리는 귀촌 라이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