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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초 Aug 03. 2016

이젠, 어디로 가지?  

허니문을 가장한 하드코어 배낭여행(12)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미리 정해둔 지역은 치앙마이, 빠이, 루앙프라방 딱 세 곳이다. 이제 루앙프라방까지 왔으니 앞으로는 모든 것이 미정인 셈이다.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될까?


어느 국경지대를 이용해 베트남으로 넘어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메콩 지역 국경을 육로로 넘으려면 어디나 고생길이지만, 그중에서도 라오스가 끼어있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도로 상황이나 교통편이 말도 못 하게 열악하기 때문이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다.


론니가 말해주는 '라오스 버스 여행'

라오스와 베트남 사이에는 여섯 군데의 국경지대가 있다. 그중에 우리가 고려한 것은 중북부 국경 세 곳이었다. 그 어디나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올 만한 곳뿐이었다. 론니는 이렇게 경고했다. '캄보디아와 태국 국경을 지나는 일도 성가시긴 하지만, 외딴 오지의 라오스-베트남 국경 검문소에 비할 바는 아니다.' '라오스-베트남 국경지대를 통과했던 외국인 여행자들이 겪은 바가지 요금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아마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각 국경지대에 대한 설명을 일부 옮겨보자면 이렇다.


국경 1) 나메우에서 남쏘이로 : 멀고 험난하기까지 한 이 국경은 모험가들의 기쁨이기도 하다(라고 쓰고, '골로 간다'라고 읽는다). 산악지대에 위치한 가장 외딴 국경지역이다. 운전자들이 원래 요금의 여섯 배를 요구한다는 제보가 있었다. 어쨌든 이 경로로 이동하는데 15시간의 고된 여정을 각오해야 한다.

국경 2) 농햇에서 남칸으로 : 라오스에서 베트남 중부와 북부로 국경을 넘기는 상당히 어렵다. 여행객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국경이다.

국경 3) 남파오에서 까우트레오로 : 라오스의 락사오에서 동쪽으로 30km, 베트남 빈에서 서쪽으로 96km 떨어진 국경지역이다. 이 경로에 관해 여행자들로부터 여전히 온갖 괴담이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만성적인 바가지 요금과 황량한 길 중간에 내려놓고 가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메콩 유역의 국경 지대들

한 마디로, 그 어디나 하드코어, 도찐개찐, 골로 가는 길이라는 얘기다. 라오스-베트남 중북부 경로를 통과한 여행자들로부터 인생 최악의 국경이었다는 이야기도 수차례 들어왔다. 우리가 그럼에도 이 국경을 고려한 이유는 라오스의 농키아우, 므앙응오이 느아 그리고 베트남 사파 지역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라오스의 진짜 시골 풍경을 보고 싶었고, 베트남 산악 지대의 소수 민족을 만나고 싶었다. 가장 유력한 후보지였으나, 결국 너무 추워서 포기했다. 루앙프라방에서도 추워서 벌벌 떨었는데, 해발 3000미터가 넘는 사파에 가면 나는 동면에 빠진 곰 한 마리로 변할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소원은 "좀 더 따뜻한 곳으로!"였고, 그러려면 최소 중부 이남으로 내려가야 했다. 어서 남쪽으로! 더 따뜻한 곳으로! 제발 햇볕을 우리에게. 그러니까, 어디로..?


우리가 갖고 있는 가이드북은 메콩 강 유역 나라들이 한 권에 담겨있어 정보가 빈약했다. 라오스는 특히 더 분량이 적어서 비엔티엔, 방비엥, 루앙프라방, 씨판돈을 제외하고는 몇 줄 설명으로 끝나곤 했다. 아예 따뜻한 씨판돈 쪽으로 내려가 볼까 싶던 와중에, 빈약한 정보의 틈새를 매의 눈으로 훑어내다 한 곳에 시선이 꽂혔다. 그 이름, 탐콩로.


탐콩로 Tham Kong Lo

극적인 자연과 원시 상태의 숲, 메콩 강변의 조용한 마을들, 시간이 멈춘 듯한 강가의 섬들과 느긋한 마을 주민들이 이루는 매력적인 조화. 광활한 라오스 남부는 아직 관광지화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에 썽테우나 오토바이를 잡아타고 쉽게 길을 벗어나 볼 수 있다. 또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둔 관광 프로젝트가 생겨나면서 외딴 마을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원시림으로도 여행이 가능해졌다.

루트 8은 흔히 비디오 게임에서 막 튀어나온 길처럼 묘사되곤 한다. 장관을 연출하는 숲과 산, 석회암 카르스트 풍경들 사이로 구불구불한 도로가 매끄럽게 지나가기 때문이다. 첫 번째 주요 기착지는 반쿤캄('반나힌'이라고도 부름) 마을이다. 주로 탐콩로 동굴을 방문하려는 사람들이 출발점으로 삼는 마을이다.

거대한 석회암 산의 끝에서 강이 갑자기 사라져 칠흑같이 어두운 구불구불한 동굴을 따라 7km를 흘러간다. 이제 라오스의 진정한 자연의 경이 탐콩로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것이다.


콩로에 가야겠다.


론니는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루트 8이 뭔 말인지도 모르겠고, 가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일체 없다. 이곳저곳 검색을 해봐도 정보가 충분치 않았다. 콩로가 어떤 곳인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곳이 궁금했고, 고 싶어 졌다. 우리는 일단 수도인 비엔티엔까지 가서 정보를 수집해보기로 했다.   



루앙프라방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비엔티엔에 도착했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해 잠시 쉬려고 들른 곳에서, 콩로행 운명을 만나버렸다. 라오스에서 오래 사신 교민 분이었는데, 우리가 관광지 아닌 라오스의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니까 처음에 씨판돈을 추천하던 말을 거둬들이고는, 단박에 "콩로에 가세요, 콩로에." 하시는 게 아닌가. 대박! 피곤한 몸을 기대고 앉아있던 의자에서 튀어 오를 뻔했다.

"콩로 가는 길을 아세요? 버스가 있어요?"

"아, 나는 차로 다녀서 그건 잘 모르겠네."

그러더니, 일단 나힌이라는 곳에 가면 콩로행 버스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비엔티엔에서 나힌은 300km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일단 나힌까지 가보자. 어떻게?


1. 썽태우를 타고 터미널에 간다. 지도를 반드시 보여준다.

2. 터미널에 도착하면, 몹시 티 나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 뜻은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다.

3. 개표소에 내가 읽어낼 만한 글자가 없다는 판단이 들면, 그때쯤 우리에게 몰려들기 시작한 이들에게 한 단어만 반복해서 외친다. 나힌! 나힌!

4. 누군가 손짓으로 정차해있는 (버스도 아니고!) 봉고 하나를 가리킨다.  

5. 가서 보니 엄청 낡아 보이는 봉고 한 대가 있는데,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서 금세 떠날 모양새다. 그 앞에 서 있는 무리에게 가서 다시 외친다. 나힌? 나힌?

6. 그들이 외친다. 나힌! 나힌!

7. 모든 소통이 이루어졌다는 믿음으로, 가방을 봉고 위로 올린다.


내 배낭 올라가는 중


긍지돋는 세라고속관광

나는 더 고급 질문을 시도해본다.

시계를 가리키며, "언제? 언제?"

차장은 바로 떠나니까 걱정 말라는 듯, 어서 타라고 손짓한다.  

지금 바로? 젠장, 아직 밥도 못 먹었는데! 화장실 다녀올 시간은 있어야는데! 손가락을 시계의 5분 뒤, 10분 뒤, 20분 뒤, 차례로 옮겨가며 가리켰더니, 10분 뒤를 가리켰을 때 그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10분 남았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10분이 다 지날 때쯤 비닐 봉다리를 휘날리며 태봉이 뛰어온다. 바게트 샌드위치를 팔길래,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두 개 골라잡아 왔단다.


봉고는 승객을 가득 태우고 출발했다. 우리는 마지막 탑승자라 맨 뒤에 구겨졌다. 나힌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종점일까? 손을 들어야 세워주는 간이 정류소일까? 나힌에 도착했다는 걸 어떻게 알아보지? 차장이 알려주려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미지의 탑승. 낡아빠진 봉고 맨 뒷좌석 뱃속이 울렁거. 막연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주는 불편한 감정. 이런 불확실성이야말로 여행의 본질이자 묘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불안하게 쿵쿵 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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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네 번째 사직서 

1. 설레기는 개뿔 

2. 세계 제일의 배낭여행자 거리는 어디로 갔나 

3. 두려움의 벽이 허물어진 자리, 오늘의 시간이 스며들다.

4. 치앙마이, 네가 좋아 

5. 치앙마이, 트레킹의 도시 

6. 치앙마이에서 이룬 요리수업의 꿈

7. 누구나의 마음속에, 로망

8. A piece of diamond in Pai

9. 빠이에서의 여러 날들

10. 라오스를 향해

11. 비와 루앙프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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