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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이 늘어나도 괜찮은 이유

서재와 반(反) 서재와 내 서재

by 프로디

오늘 글은 그동안 고민한 내용을 정리합니다.


매주 연재할 원고를 쓸 때, 가장 어려운 일은 주제를 고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늘 어떤 책을 어떤 방식으로 소개할지 고민합니다. 오래 연재하면 이 일이 더 쉬워질지도 모르지만, 어떤 지식이 가장 유용할까?라는 고민은 원래 어려운 것 같네요.


책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할 때에는 책을 여러 번 읽어봅니다. 요즘 준비하는 책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비폭력대화"입니다. 밑줄 친 부분만 다시 읽기도 하지만, 전체 본문을 다시 읽기도 합니다. 이 책도 3번은 읽었네요. 평범한 자기 계발서 정도로 생각했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책을 추천해 주신 스누라이프의 모 동문님 감사합니다


분명 꼼꼼히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내용을 발견합니다. 신기하죠? 만화경 같습니다.


출처: https://giphy.com/gifs/justin-kaleidoscope-xT39D6ljE4N3kBJs7S


책은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는데 왜 새로운 내용을 발견할까요? 아마 읽는 제가 바뀌기 때문일 겁니다.


발견한 내용이 흥미로울 때도 있지만, 가끔은 좌절감도 느낍니다. 왜 한 번에 발견 못했나 생각이 듭니다. 여러 번 읽어야지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글을 얕게 읽는가 생각도 듭니다.


최소한 이 정도는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이 120권 정도 됩니다.

교보문고 장바구니와 밀리의 서재 책장에 쌓여있습니다.


책을 읽어치우는 속도보다 읽을 책을 발견하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아이러니하죠? 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글에서 설명했듯, 세상은 아주 복잡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제논의 역설에서 아킬레우스는 자기보다 느린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그런데 저는 저보다 빠른 거북이와 경주하고 있네요. 읽지 않은 책을 볼 때마다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 의식하게 됩니다. 썩 즐거운 기분은 아니지만 이제는 익숙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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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반서재

단순히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납니다. 제가 좋아하고 이전에도 소개한 작가 나심 탈렙은 읽지 않은 책 목록인 '반(反) 서재'가 커지고, 이에 겁먹는 일이 자연스럽다고 하네요.

서재에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과 관련된 책을 채워야 한다. 나이를 먹으면 지식이 쌓이고 읽은 책도 높이 쌓이지만, 서가의 아직 읽지 않은 책들도 점점 늘어나 겁을 먹게 한다. 진정 알면 알수록 읽지 않은 책이 줄줄이 늘어나는 법이다. (블랙스완)


나심 탈렙이 말하듯,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때문에, 반서재는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됩니다. 이는 이전에 쓴 글에서 다룬 Unknown Unknown 개념 때문이지요.


반서재를 줄일까요? 그런다고 읽지 않은 책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눈을 감아도 세상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입니다. 물론 쉬운 주제는 아니므로 다음에 따로 다룰게요.


대신, 독서와 서재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내가 읽은 책은 정말 '내 책'일까요? 저도 최근까지는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책 '비폭력대화'를 여러 번 읽으면서 정리하다 보니, 아직도 모르는 내용이 많더라고요. 제가 책 내용을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눈앞에 있다고 다 보이는 것이 아니며, 읽었다고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서재에 있는 책, 내가 읽은 책은 정복한 지식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같은 책도 읽을 때마다 다른 내용을 발견하는데, 한두 번 읽었다고 내가 그 내용을 다 안다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서재도 반서재도 내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알려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니다.


진정한 내 서재(지식)는 내가 읽은 책이 아닙니다. 내가 쓴 글, 내가 온전히 이해하고 소화해서 직접 재구성한 글만이 '내 서재'에 꽂힐 자격이 있습니다. 이는 결국 다른 주제인 공부하는 글쓰기로 이어집니다. 글쓰기는 가장 좋은 공부 수단입니다. 받아들인 지식을 내 말로 출력하는 과정에서 깊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내가 뭘 모르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다뤘습니다.


그래서 더 잘 배우려면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때문에 글쓰기를 잘하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브런치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닙니다. 지식은 머리에 담아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활용하기 위한 것이니까요. 지식을 쌓아서 세상을 이해하는 이유는 (그 자체로 가치 있기도 하겠지만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은 복잡하고 예측은 어렵다는 고민에서 글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예측보다 행동이 중요하며, 아는 것만 말해야 하며, 정확한 지식보다 실용적인 지식이 낫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지식을 많이 쌓아서 미래를 예측한다는 수동적인 태도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불완전한 지식으로라도 세상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특히, 기존의 현실에 없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려면 정제된 지식보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안다는 것은 문제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연재를 마쳐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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