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와 개인사업자
12월이 끝날 때, 2019년을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결국 이렇게 밀렸다.
어수선하고 모자란 삶이다 보니, (연말연초를 핑계삼아) 정리를 해 둬야 소소하게라도 밥벌이를 할 거 같다. 이젠 혼자 버티는 삶이고, 누군가와 적극 연대해야 하는 삶이니 나의 것들이 정리가 되어야 마땅하다.
올해 주요 키워드(혹은 이슈)를 뽑아보니 15개 정도가 되더라. 1월까지 (차근히)정리를 하려고 한다. 오늘은 그 첫번째. 카카오 퇴사한 이야기와 개인 사업자 낸 이야기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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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이런 날도 오는구나
2019년의 가장 큰 일은 든든한 우산 내려놓고, 내리는 비 잔뜩 맞은 일이다. 그 우산은 해가 떠도 접을 수 없을 만큼 이뻤다. 그러니 우산은 늘 펼쳐져 있었다. 어쩌면 지붕이었을 그 우산을 9년을 썼다. 그걸 접은 거다. 쏟아지는 비를 맞았고, 차가우면서도 시원했다. 그렇게 카카오 퇴사는 후회하면서도, 후련한 일이었다. (시간을 조금 자유롭게 쓰는 걸 제외하곤, 아직도 판교 라이프가 그립다 ㅠ)
1. 카카오 퇴사, 카카오임팩트 이동, 카카오임팩트 퇴사
1) 3월 3일 카카오를 퇴사했다.(다음-카카오 9년 후루룩)
2010년 1월 말, 경력직으로 daum에 입사했다. 한화호텔&리조트 문화사업부에서 옮겨왔다. 회사는 너무 다르지만(전형적인 대기업 -> it 기업)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화마케팅 담당이었다. 축제-> 공연기획사 -> 한화호텔&리조트(문화사업부)에 이어 문화 4부작의 시작이었다. 일이 너무 재미있었고 진짜 날마다 축제였다.
2013년 5월, 조직문화 쪽으로 팀을 옮겼다. 2014년 1월 근무지를 제주로 옮겼다. 해외 지사 발령은 아니지만, 제주 근무는 많은 이들이 바랐던 일. 4월에 오픈하는 스페이스 닷투 오픈식 준비 등등이 이동 이유였다. 바람불고 파도치는 평화로운 시절은 이내 끝났다.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이 발표되었다.
2014년 9월30일이 다음의 마지막 날이었고
10월 1일 합병식이 진행되었다(난 합병식 tft 소속). 그날 저녁 이벤트 사회를 봤다.
https://brunch.co.kr/@rory/100
2015년 1월 서울로 복귀한다(서울 가면 정글이라고 다들 말렸지만, 가족과 1년 떨어져 있으니 정말 미안하고 힘들었다. 당시 피플앤컬쳐팀은 판교가 아닌 한남에 있었다). 성장문화 파트에 소속이 되어 조직문화/교육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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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직후 모든 팀들은 2명의 리더(카카오 출신, 다음 출신)가 있었다. 피플앤컬쳐팀 역시 리더가 2분이었는데. 그중 한 분이 지금 카카오뱅크 윤호영 대표님이다.
2015년 5월 다시 근무지를 제주로 옮긴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오픈 멤버로 결합했다. 이때는 주소지까지 옮겼다. 제주도민이 된거다(제주지역과 지역민과 협업이 많아, 제주도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7개월 일했고, 크래비티 사람도서관 사업과 제주 더 크래비터가 그때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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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비티는 크리에이터 + 그래비티의 합성어다. 창의적 중력이란 뜻이다. 제주가 그런 창의적 중력이 가득하단 의미로 내가 만든 신조어다. 매력있는 예술가들이 창의적 중력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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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환상적인 제주 라이프를 끝내고 판교로 컴백한다. 카카오 메이커스 오픈을 돕고 한편으론 카카오 티켓 서비스 론칭을 준비했다. 사이먼(현 카카오커머스 대표)의 배려였다. 야심찼던 카카오 티켓 프로젝트는 카카오의 멜론 인수(멜론은 2015년부터 티켓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로 한방에 순삭 되었다(브라이언 스텝 대상 2번의 미니 pt가 있었지만).
(어쩌면 좋지?)당황과 (어디로 가야지?)방황이 이어졌다.
2016년 3월, 운 좋게(퇴근길 셔틀버스 안에서 성사된 한남북엇국에서 맥주 한잔) 미디어팀으로 옮겼고(연예제휴담당) 12월 스토리펀딩 파트로 옮기게 된다. 2017년 나는, 다시 날았다. 일과 조직과 잘 맞았다. 2018년 스토리펀딩과 브런치와 합쳤다. 스토리펀딩의 기세가 살짝 빠지던 때였고, 브런치가 존재감을 올리던 때였다.
2017년 펀딩 일 할 때 시작한 100일 프로젝트. 카카오 소셜임팩트팀(시에나, 탄과 두어번 만났다)에서 공식 서비스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란 제안을 받고 ok를 했다. 2018년 가을, 소셜임팩트 겸임 발령이 나고 2019년에 완전히 옮기게(브런치를 떠났다. 스토리펀딩은 뜨겁게 타올랐다가 결국 먼지가 되었다) 된다.
그리고 얼마 후 카카오를 퇴사해 (멋진 조건으로) 카카오임팩트로 옮긴다. 조건의 핵심은 주3일 근무, 겸업가능이다(물론 정규직을 포기한 댓가고, 다양한 복지를 포기한 결과다). 이게 가능해?라고 많은 분들이 물었는데, 카카오임팩트는 그걸 실험할 수 있었다.(물론 리더인 사이먼과 시에나, 그리고 팀분들의 배려가 컸다)
2) 3월 4일. 카카오임팩트로 출근했다. 주 3일 근무 계약직을 시작했다.
월화수 출근하고, 목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일을 하기도 하고, 자유시간을 누렸다.
https://brunch.co.kr/@rory/132
https://brunch.co.kr/@rory/136
3) 9월 15일, 안식휴가를 마치며 퇴사했다.
주3일 근무하고 주2일을 다양한 것들에 쓰다보니, 주5일을 내 마음대로 써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 없던 용기가 생긴거다. 카카오임팩트에 더 있고 싶었고 더 있으면 좋아겠지만, 고민과 고민과 고민과 고민과 고민끝에 6월에 퇴사 의사를 전달했고, 7월에 마지막 출근을 했다. 마지막 출근 후 카카오에서 받은 9년 안식휴가 2개월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동안 도움 준 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9월 15일 퇴사를 했다. 장장 9년 8개월의 여정이 끝났다.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그렇다...라고 얘기하고 싶다.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밖이지만, 그래도 비바람 막아주는 튼튼한 우산이 없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다. 때마침 겨울이다. 춥기도 하다)
2. 플라잉웨일, 개인사업자의 길
10월 2일, 개인사업자 내기 딱! 좋은 날씨인 거 같아 아침밥 먹고 남동세무서로 갔다. 5분 걸렸나? 개인사업자는 사업자명만 미리 챙겨 가면 될 뿐. 다른 건 직원분이 알아서 해 줬다.( 인터넷으로 도전했는데, 업태와 종목을 어찌 설정할지 헤맸다.)
돈 벌긴 어려워도, 대표되기 이리 쉽다. 뭐 할까? 고민 말고 일단 사업자를 내라. 어딜 갈까 고민하다 시간만 축내지 말고, 배를 만들면 간다. 내 힘으로, 혹은 운 좋게 바람의 힘으로!
*플라잉웨일?
나는고래, 나는고래. 불가능한 꿈을 꾸지만, 결국 성공한 고래다. 땅에서 바다로 가 결국 바다의 왕이 되었다. 지금은 바다에서 하늘을 꿈꾼다. 그래서 고래는 수면위를 비상한다. 난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본 DNA가 있다. 무엇이 두렵나. 스스로 날거나, 많은 이들이 날게 해 주면 될 일 아닌가.
삶의 평균을 높이는 연결의 작업(커뮤니티, 교육, 컨설팅 등)이 플라잉웨일의 일이다.
1) 플라잉웨일, 명함 선물을 받았다.
낯컨3에서 만난 (카카오페이지의 뚝배기 스페셜) 나세훈이 '명함'선물을 하겠다고 했다. 덥석 물었다. 그는 명함에 힘을 많이 줬다. 치장은 별로 없는데, 한 장 한 장 묵직했다. 그래서 그런가? 1장에 900원짜리 명함이 나왔다. 명함은 자고로 뿌리는 거라 배웠는데,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한 분에 한 장씩. 고이고이 전해드렸다.
2) 연말 특수 반짝 행운, 여러 곳과 협업했다.
10월부터 12월까지 콘텐츠진흥원, 서울문화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문화예술위, 서울시(무중력지대), 어반플레이 등과 일했다.
* 콘텐츠진흥원 협업 https://brunch.co.kr/@rory/169
* 서울시 무중력지대 협업 https://brunch.co.kr/@rory/171
3) 연초는 쭈쭈바를 빨아야 한다.
위 일은 연말 특수 덕분이다(연말엔 행사가 많으니까). 연초엔 특수가 없다. 그러니 쭈쭈바 빨듯 손가락 빨아야 한다. 목도릴 해도 바람이 들어온다. 춥다. 어쩔 수 없다(이래서 직딩님이 부럽다. 천장에서 따뜻한 바람이 쉴 새 없이 쏟아지지 않나). 그래도 할 건 해야 한다. 바로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해 왔는지) 정리하는 것이다.(그래서 이렇게 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건너갈 수 있도록,
혹은 누군가 건너올 수 있게 다리를 만들어야겠다
* 2019 정리 2가 곧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