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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ug 30. 2019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심종록의 시세상 

[이 시는 <개벽신문> 제86호 (2019.7.15) '詩세상'에 게재된 시입니다.]


심종록 시


적막의 도시가 깨어난다

희색이 돌기 시작하는 거리, 만을 건너오는 비릿한 바람과 더불어

아내는 그때서야 늦은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색 바랜 검정 슬립 사이 쭈그러진 젖가슴을 흔들며

가스 불 당겨놓은 가마솥

지글거리며 기름이 끓고 있다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나는

통나무 위에 놓인 닭의 등뼈를 내려친다 

닭은 우는 법을 잊은 지 하마 오래

무뎌진 용데바에 찢겨나간 살덩어리가 사방으로 튄다

색색으로 불을 밝히는 낙원동

어둠이 스미고 성문이 열린다

무인반주기의 색소폰이 흐느낀다 흩어진 뼈다귀들이 일어나서 몸을 맞추듯이

딸들이 수은 빛깔의 젖가슴을 드러낸 채 

거울 앞에서 선홍의 립스틱을 바르는 시간

젖은 러닝을 걸친 어부들이 하나 둘 바다로부터 돌아온다 메마른 갈증을 견디며

그들의 손에는 등이 굽은 몇 마리 놀래미 새끼들뿐이다 

나는 지붕 위 간판 스위치를 올린다

잠시 깜박거리던 불빛이 화려하다 치장을 끝낸 아내와 딸들은

어느새 차가운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있다

담배를 물고 냉동된 닭을 튀긴다

술병을 들고 다락의 계단을 오르내린다

으슥한 다락방 구석에서 늙은 전도자 하나가 

딸의 가랑이 속에 머리를 처박고 울고 있다 도취와

몰입의 시간 바닷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지는 않으리라 

쓰러진 병을 세운 후 물을 부어 온 병의 독주를 만드는

나의 하루는 간판 스위치를 내리면서 끝난다

시멘트 바닥에 뿌리를 박고 시들어가는 무화과나무 잎사귀를 흔들며 

만을 건너온 새벽이슬, 소리 없이 작은 숲을 적시며 내릴 때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 강 삼각주를 따라 사과나무를 심었다. 사과주를 만드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그곳에 심어진 사과나무는 국경 역할도 했다. 낯 선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통과의례를 치워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구분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서야 벌거벗었다는 것을 깨달았듯이.

찰스 부코프스키가 그랬다. ‘삶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조롱과 우수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거’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 술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당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를 먼지처럼 가벼운 것으로 둔갑시킨다. 깨고 나면 숙취와 감당할 수 없는 후회 때문에 치도곤을 당할지언정.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외쳤던 예수의 공생애의 첫 임무는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십자가에 못 박혀 신 포도주를 묻힌 헝겊으로 입술을 적시는 행위로 마무리를 지었다. 구세주라 일컫는 신의 아들도 그랬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심종록: 1 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는개 내리는 이른 새벽』『쾌락의 분신 자살자들』 등의 시집과 전자시집『 빛을 향해 간다』 등이 있다.


사진 : 심종록 

회흑색광대버섯 :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혼합림에서 무리지어 나타난다. 암회색 갓은 둥근 공 모양에서 성장할수록 평편해지다가 가장자리가 위로 솟구치는 오목형이 된다. 주름살은 흰색으로 촘촘하다. 자루는 갓보다 연한 암회색으로작은 인편이 붙어있다. 대 위에는 회색의 턱받이가 있다. 대 아래는 하얀 대주머니가 있다. 구토와 설사에 이어 황달과 위장출혈을 일으키며 내장을 파괴하는 맹독버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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