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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Oct 29. 2019

<서평> 개벽파의 개벽담론

세계적 담론의 핵심 키워드를 포착하다

―<<한국 근대의 탄생>>, <<개벽파선언: 다른 백년 다른 개벽>>을 읽고 

* 이 글은 <개벽신문> 제88호(2019년 9.10월 합병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이 호 재 | 종교학 박사, 자하원 원장



필자는 수십 년 전에 학문의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동학증산교 등의 한국 신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개벽’이라는 개념어는 사유체계를 구성하던 중요한 핵심어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다가 어느 공부모임에서 한 지인으로부터 '조성환'이라는 분이 개최한 개벽포럼에 참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잠자고 있던 개벽심이 발동하였는지 동지를 만난 기분으로 그날로 필자가 쓴 <<한밝* 변찬린(한국종교사상가)>>과 변찬린의 <<성경의 원리>>(한국신학연구소, 2019)를 연구에 참고하라는 심정으로 보내주었다. 그런데 저자는 필자도 모르게 <개벽신문>에 기고한 "한국인의 하늘철학"이란 글에서 ‘탁사 최병헌의 같은 하늘론’과 대비에 ‘한밝 변찬린의 다른 하늘론’을 소개하였다. 저자와는 이렇게 맺은 인연이다. (*한밝은 '아래아')


격의학문과 학문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자생이론의 탄생 


2019년 9월, 저자로부터 <<한국 근대의 탄생: 개화에서 개벽으로>>와 <<개벽파선언: 다른 백년 다른 개벽』 두 권의 책을 선물로 받았다. 

밀려 있는 책과 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목차만 보고 나중에 읽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목차를 읽어 보니 상당히 흥미롭고 흡인력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평소 세계학문의 주변부인 한국에서도 지금쯤 세계적 담론이 나올 시점임을 강조한 터였기에, 이 책에서 무언가 나올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드디어 나올 것이 나왔다!” 낡은 문명과 새 문명을 가르며 새로운 지평을 선언한 핵심 키워드가 우리 손으로 만들어졌다. ‘개벽’이다. 개벽파가 주창하는 ‘개벽담론’이다.


<<한국 근대의 탄생>>은 저자의 학문적 고뇌로부터 숙성된 학문의 독립선언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사상가’라고 인정할 만한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철학자를 자처하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사상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사상가가 부재하다는 것은 한 사회를 이끌어갈 나침반이 부재하다는 것과 같다”(<<한국 근대의 탄생>>, 181쪽). 


저자의 이 말은 한국에 펼쳐진 학문 제국주의의 실정과 수입학문이 만연한 풍토를 정면으로 직시한 말이다. 더구나 철학자로서 실증사학에 옥죄인 식민사학이 주류사학으로 군림하는 가운데 역사연구의 창발성이 결여된 폐쇄성과 수구성, ‘끼리끼리’의 닫힌 담론을 지적한 말이기도 하다.


이런 악습은 역사 담론이 우리 삶의 정황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학문 사조에 따라 남의 눈으로 나를 재단하는 ‘고약한 버릇’ 때문이다. 조선 시대의 성리학 담론은 중국의 주자학 담론을 기준으로 평가되었다. 심지어 실학 담론마저도 서세동점의 시기에 서구의 근대 이성이라는 관점에서 동아시아 근대, 즉 중국의 중체서용, 일본의 화혼양재, 조선의 동도서기라는 대응적인 담론으로만 조명되었을 뿐이다. 


저자는 우리 눈이 아닌 남의 눈으로 재단한 역사적 관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한국 근대의 탄생>>은 서구 관점으로 조명한 개화라는 편향된 시각과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바라본 연속선상의 담론에 새로운 시점을 내세운다. 즉 한국의 근대는 개화가 아니라 하나의 문명사를 가로지르는 새로움의 탄생이라는 자생적인 개념어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바로 ‘개벽’이다.


개벽은 일찍부터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대표적으로 윤승용은 <<한국신종교와 개벽사상>>에서 한민족의 역사적 영성의 재분출이라는 관점에서 개벽사상을 중요하게 취급한다. 이에 반해 저자의 개벽은 한국사의 문명전환으로서의 개벽임을 강조하고 있다. “마치 그리스도교에서 역사를 예수 이전과 예수 이후로 나누듯이, 개벽파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를 조선 문명의 대 전환기로 인식한 것이다.”(한국 근대의 탄생, 18쪽)


이런 담대한 학문적 선언은 학문 제국주의의 희생양으로 전락하여 ‘격의학문과 격의종교’시대가 전개되어 ‘한국학의 부재’에 내몰린 부끄러운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큰 사건이다. 특히 한국학의 위상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실정에서 자생적 근대 담론을 내세운 저자의 학문적 열정과 창조적 발상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천학과 천도의 새로운 종교체험으로 탄생한 동학은 태양이 떠오르는 생명의 방위를 나타내는 상징어[東]를 징검다리로 삼아, 모든 낡음을 새로움으로 만드는 동쪽의 학문이다. 이는 한민족이 주축이 되어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인간을 만들어 내어 인류 역사와 문명을 개벽한다는 예언자적 목소리이다. 강조한다면 다른 나라의 종교 환경에서 잉태된 축적된 종교 담론, 수입 학문의 학습적 전통과 냉전의 산물 등이 온전히 축적되어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은 오히려 개벽시대를 맞이하여 세계적인 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적지임을 저자는 이 책에서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


저자의 장기적인 학문적 프로젝트인 ‘개벽사’ 술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는 '개론서'라고 할수 있는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세 부분으로 구별할 수있다.

첫째 부분은 동학의 출현을 한국학의 남상(濫觴)으로 다룬다. 동학은 중국적 세계관을 기준으로 한 ‘술(述)의 전통’을 탈피하여 ‘(창)작(作)의 근대’로 전환하는 분기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동학의 천도와 천학이 가진 세계관의 독창성과 보편성을 차분히 서술한다. 이런 동학 정신은 죽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 시민 사회에서 계승되고 있음을 장일순의 사례를 통해 실증한다.

한국근대의 태두 - 동학 천도교의 천도교시대 중심지 : 경운동의 천도교중앙대교당 초창기 모습


둘째 부분은 한국의 근대는 ‘자생적’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한국 근대를 설명하는 틀인 ‘실학 담론’과 ‘개화 담론’은 중국과 일본의 근대화론의 범주와 서구 근대의 이성의 관점으로 진단한 닫힌 담론에서 형성된 잘못된 진단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기존의 실학 담론과 개화 담론에 대해 코페르니쿠스적인 관점의 대전환을 제안한다. 바로 동학의 개벽사상이다, 개벽사상은 서학에 대한 동학, 개화에 대한 개벽, 실학에 대한 실심(實心)으로서의 자생적 담론이다. 저자는 한민족의 내재화된 역사적 역량을 강조하기 위해 ‘토착적 근대’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다.


셋째 부분은 제2부의 토착적 근대에 대해 역사적으로 전개된 영성적 근대, 불교적 근대, 일본의 근대 등으로 한국의 신종교만이 아니고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의 자생적 근대의 사례를 들면서 마무리하고 있다.


저자는 이십여 년 간의 동아시아사상사 연구를 통해 한국 근대에 대한 처녀작을 세간에 선보였다. 더 나아가 ‘개벽사’를 바탕으로 ‘개벽학’을 만들어 한국인의 사유체계를 세계화하겠다는 담대한 학문적 설계는 지금보다 앞으로의 학문적 행보에 거는 기대를 더욱 크게 만든다. 이는 <<한국 근대의 탄생>>에 이어 6개월에 걸친 이병한과 조성환의 서신 교환의 산물인 <<개벽파 선언: 다른 백년 다른개벽>>에서 그 일단을 선보인다.


편지 형식이어서 개벽파들이 가진 솔직한 내심과 계획을 흥미롭게 서술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풍부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더불어 지구촌 차원에서 발생하는 개벽 시대의 개벽 징후에 대한 풍부한 최신 정보를 제공된다. <<유라시아 견문>> 삼부작의 저자답게 문명사가로서 열정의 이병한과 개벽학의 창시자로서 패기의 조성환이 교환한 각각 12편, 총 24편의 편지는 개벽파들이 가지는 양심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근대의 탄생>>이 ‘개벽담론’의 주춧돌이라면 <<개벽파 선언>>은 개벽사와 개벽학으로 올려야 할 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실천담론이다. 


특히 이 책들의 부제인 ‘개화에서 개벽으로’, ‘다른 백년 다시 개벽’은 지음(知音)관계인 그들이 드러내는 속내이다. 개벽담론으로 인류문명을 새롭게 써 보자는 야심찬 선언이다.


이는 개벽과 관련된 용어가 앞의 책에서는 개벽, 개벽사상, 개벽적 근대화, 개벽종교, 개벽파라고 학문적 영역에서 옹골차게 언급되지만, 뒤의 책에서 대화라는 형식을 통해 64개의 언어로 확장하고 있다. 개벽세, 개벽문명, 개벽천하라는 대전제 아래, 개벽국가, 개벽종교, 개벽정치, 개벽경제, 개벽교육, 개벽도시, 개벽문화 등 한국을 개벽의 허브국가로 변혁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구현할 중추세력은 ‘개벽꾼, 개벽인, 개벽청년단, 개벽학자 등의 개벽파’ 들이 ‘개벽당, 개벽대학, 개벽학당, 개벽학센터, 개벽학연구회’ 등의 개벽단체에서 ‘개벽신학, 개벽유학, 개벽소학, 개벽실학’ 등으로 재구성하여 일상이 개벽화 운동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개벽파 선언>>은 말하고 있다.


모름지기 ‘담론과 선언’의 구호는 간명하고 독창적이고 담대하고 시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충분히 유효한 시도이다. 더 나아가 조성환은 “혁명이 일회적 사건이라면 개벽은 일상의 연속이다”라는 개벽의 일상화와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가 지닌 담론의 착오가 가진 역사적 과오를 탈아출구(脫亞出歐)였어야 한다고 성찰하며 역사적 지평을 확장하여 사색한다.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개벽담론을 역사적 지평에 성공담론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동과 서의 하늘은 다른 하늘인가? 같은 하늘인가?


그렇다면 왜 동학이 한국만이 아니고 세계사적 지평에서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최제우가 ‘다시 개벽’을 외치며 꿈꾼 이상세계와 모세가 개명한 야훼가 제시하는 유대적 세계관, 그리고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았을 때 열렸던 하늘과는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일까? 동학의 하늘과 서학의 하늘은 같은 차원의 동일한 하늘인가? 그 하늘에서 제시된 이스라엘의 야훼와 한국 고래의 하느님과 동학의 한울님은 동일한 궁극적 실재의 다른 이름인가? 이런 질문은 실재하는 하늘과 하늘에 거주하는 신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귀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주축이 된 집단지성 모임인 ‘하늘학회’의 창립은 탁견이라고 할 수 있다. 평자가 제기한 위의 질문들을 토론의 광장에서 담론화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학에서 제시한 하늘 개념은 중국의 도학, 서구의 서학, 조선의 실학보다 존재론적으로 한층 더 높은 실재의 하늘로, 인식론적으로 폭넓은 사유체계를 제공하고 있으며, 실천론적으로 명확한 개벽의 이상세계를 지향하고 있다고 평자는 진단한다. 최제우는 1860년 4월 5일에 한울님(상제)과 종교체험을 하였는데 이 신비체험의 사건은 한민족의 종교적 세계의 원형인 한밝문명과 풍류적 세계관을 한국 근대에 재현시킨 세계사적 사건이다. 이를 단지 한국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은 개벽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개벽파는 하늘마저 개벽한 동학을 바탕사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족의 지도자인 모세가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야훼라는 신과의 종교체험으로 유대교의 신관을 정립하고, 성서적 맥락에서 예수의 성육신 사건과 바울신학으로 그리스도교라는 세계 종교로 형성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유대교는 아직도 그리스도교와 공통으로 사용하는 타나크에서 말하는 다윗자손의 혈통에서 그리스도교가 신앙하는 예수가 아닌 다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즉 야훼는 이스라엘의 민족을 떠나서는 신앙되지 않는 지역적인 한계를 가진 민족신에 불과하다. 성서에서도 야훼는 최고신이 아닌 천사라는 기사는 꽤 많이 발견된다(출 3:2-6과 행 7:30, 행 7:35, 출 19:3, 출 20:21, 출 20:1-2와 행 7:38, 행 7:53, 갈 3:19, 히 2:2, 갈 4:8).


반면에 최제우가 체험한 한울님은 대화하는 하나님이며, 이로 인해 주창한 ‘다시 개벽’은 서학에 대응하는 하나님 체험이 아니고 새 하늘에 대한 체험이다. 최제우의 신비체험은 한국인의 잃어버린 '한밝문명'의 재현, 한국인의 정체성인 풍류적 세계관이 새로운 차원에서 열린 인류사의 개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에서 말하는 하늘은 ‘마음의 열림’과 ‘자각의 차원’을 의미한다. 인간의 마음이 개명(開明)되는 정도에 따라 그 개천(開天)하는 하늘도 각각 다르다. (중략) 불교와유교와 도교와 기독교가 개천한 하늘이 같은 하늘인 듯하면서 그 차원이 차이가 있음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다신(多神)이 존재하는 하늘과 유일신이 존재하는 하늘이 같은 차원일 수 없다. 우리는 이날까지 하늘이라면 다 같은 하늘로 동일시하는 하늘관에서 탈피하여 하늘의 실상을 깨달아야 한다.”고 변찬린은 지적한다(변찬린, <성경의 원리(상)>, 한국신학연구소, 448-470쪽). 


또한 류영모는 “성령은 반드시 기독교인에게만 내리는 것이 아니며, 성령에는 여러 층이 있다”고 지적한다(다석학회, <다석강의>, 672~673쪽).


근대 이성과 과학 이성에 의해 대개 ‘하늘’이라고 하면 막연히 자기가 믿는 신앙대상이 최고 하늘에 군림하며 지고신(Supreme God), 혹은 유일한 원리, 혹은 부동의 동자, 혹은 도, 혹은 법, 혹 태극 등으로 동일한 실재지만 붙인 명칭만 다르다고 인식한다. 지면 관계상 상론하기는 어렵지만, 만일 같은 하늘에 있는 동일한 궁극적 실재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면 다층적인 하늘에 있는 신들의 위격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점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동학의 하늘은 야훼의 하늘과는 다른 차원의 높은 하늘, 즉 동서의 낡은 하늘마저 개벽한 ‘하늘개벽’을 천명하고 있다. ‘신들의 싸움’에서 야훼와 같은 민족신이 아닌 우주적인 하나님의 체험이 한 민족에게 체험되었다는 열린 차원의 접근에서 진정한 개벽사와 개벽학을 서술하겠다는 저자의 구상이 구체화되지 않을까?

개벽파의 개벽담론이 세계적 담론으로 정초되기를 기대하며


평자는 저자의 개벽학이 성공적인 담론으로 정초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마디 군더더기를 덧붙이는 것으로 평자의 임무를 마무리하려 한다. 


개벽유학, 개벽불교, 개벽신학에 대한 개념적 정의는 책의 성격상 구체적으로 언명하고 있지 않다. 각 종교 텍스트의 해석학적 전통을 존중해야 하고, 개벽사에서는 ‘개벽’이라는 관점에서 기존 연구를 수집하고 범주화하고 서술하는 충실한 ‘술의 작업’이 되어야 하지만, 개벽학에서는 ‘개벽’이라는 관점에서, 개벽(유학/불학/신학)해석이라는 관점에서 ‘창작의 학’을 만들어내어야 한다. 한마디로 축의 시대의 종교적 사유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개벽 해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창조적 집단지성이 다종교적, 다학제적, 간텍스트적인 관점에서 기존의 텍스트를 새롭게 해석해 내야 한다. 만일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최소한 이런 작업을 선행한 개벽 인물의 해석을 참고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에 한정해서 예를 들어보면, 변찬린, 류영모, 함석헌과 같은 개벽인물은 서구의 철옹성과 같은 교의학과 바벨탑과 같은 서구신학의 해석전통에 대해서 개벽해석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변찬린은 “성경은 기독교의 전용문서가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문화)가 아니다.” 그리고 “성경은 인간이다.”라고 언명한다. 성경과 그리스도교를 같이 보지 않고 경전의 텍스트와 그 종교문화를 탈종교화해 버린 후에 새로운 경전 해석을 한다. 이런 개벽신학을 뛰어넘은 개벽해석은 ‘한밝성경해석학’(한밝은 변찬린의 호)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기존에 형성된 학문적 전통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학문 제국주의와 수입학문에 의해 망각되거나 배제된 개벽인물을 발굴하는 것도 개벽파의 큰 역사적 임무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한민족의 축적된 역사적 역량이 동학의 출현을 기점으로 ‘개벽’이라는 자생적 근대가 시작되었다는 점을 충분히 입증해 냈다. 앞으로 개벽담론은 한국의 특수한 경험이 세계 학문과 교류할 수 있는 교두보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역작이다. 개벽파의 주창자로서 저자의 신념체계가 개벽사와 개벽학에서 더욱 구체화하여 자생적 개벽담론이 세계 학계를 선도할 거대담론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이호재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중국종교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현재 자하원 원장이다. 관심영역은 동서양의 종교사상 연구를 바탕으로 ‘새 축 시대의 영성생활인’이라는 생활프로젝트를 세계화하는데 있다. 주요 저서로는 <<포스트종교운동>>(2018), <<한국종교사상가 한밝 변찬린>>(2017), <<인생지도>>(2017)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 재래종교의 ‘구원’관>, <함석헌의 ‘새 종교’론의 의미와 남겨진 과제>, <변찬린의 새 교회론 연구> 등 수십 편의 국내외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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