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브런치 중독인가?
나름 한국에서 여고딩 시절엔, 나도 친구들이랑 같이 당시 유행하던 다이어리 꾸미기 같은 거 열심히 하고 그랬었다.
어디 영화관이나 박물관 같은 데 한번 갔다 오면 입장권은 꼭 다이어리에 붙이고, 예쁜 스티커 같은 거 틈틈이 사 두었다가 온갖 색색의 볼펜들로 예쁘게 끄적인 일기 하나하나를 꾸미는 데에 쓰기도 하고.
고등학생 1학년 때, 친구들하고 처음 서울 구경 갔다 온 날의 일기에는 우르르 한 커피숍에 가서 처음으로 단체 커피(!)를 마신 그날의 기억 등이 "안 버리고 굳이 붙여둔 영수증들"을 통해 생생히 담겨있다.
(고등학생 때 얘기가 벌써 십 년 전이라는 게 슬프다. 나 늙었구나!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여고생"때부터 다시 시작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뭔가 한국에서의 생활은 일시정지되어있다가 내가 딱 돌아가면 다시 재생될 것 같은 느낌.)
그런데 문제는 이 일기장이 어딘가에 봉인되어있다는 건 아는데, 도무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오면서, 미국에서도 두어 번 이사 다니면서, 또 결혼하고 나와 살면서 여기저기 사는 곳을 옮기고, 짐을 싸고 또 풀고 하면서 분명 버리지는 않았을 것 같고 어딘가에 있긴 있을 터인데. 그 어딘가가 어디인가.
그래도 예전엔 그렇게 뭐라도 쓰고 꾸미고 기록을 남기긴 했는데, 미국 와서 바쁘다는 핑계로 또 영어 배워야 한다는 핑계로 그나마 써오던 일기도 잘 안 썼다 (한국어로도 안 쓰고 영어로도 안 쓰고).
안 쓸 땐 편하고 좋았을 테지만 돌아보니 남아있는 게 없었다.
새해 들어서 올해엔 뭔가 손 일기를 쓰든 블로그를 하든 내가 살아가는 자취를 다시 남겨보고 싶었었다. 손일기가 그립긴 하지만, 괜히 써놓고 또 없어지면 속상할 걸 알기 때문에 "블로그 시작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왕 공들여서 쓸 글, 다른 사람들이 조금 읽어주면 뭔가 더 힘이 날 것 같기도 했고.)
그러던 중 구정 때 새해인사 카톡을 보내온 대학교 후배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이어가게 되었고, 이 친구가 나름 파워블로거로 잘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지금이 나의 기회다! 눈앞에 고수가 있으니 어디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어보자 하는 심정으로 블로그 활동에 대한 질문을 했다. 며칠 뒤, 순전히 이 친구의 추천으로 처음 알게 된 브런치라는 공간에 그렇게 발을 들이게 되었다.
매일매일의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세 가지 주제(미국 생활, 약대에서의 로테이션, 육아 일기)로 글을 쓰고 싶었다. 아낌없는 조언을 해 주던 그 대학교 후배는 브런치 작가가 되어서 처음 발행한 나의 글들을 보고 언니는 흔하지 않은 캐릭터라며 잘 될 거라고 행운을 빌어주었었다.
(이 친구 말대로 흔하지 않은 조합이라 그런지, 브런치 작가 승인도 단번에 나긴 했었다.
써놓았던 대여섯 개의 글들 중 이 세 가지 글들을 작가 신청서에 포함시켰었다: 미국 약대 3학년생의 이야기, 남자친구가 피앙세를 거쳐 남편이 되기까지, 27살에 엄마가 되었다는 것. 다른 플랫폼에서 글을 쓰거나 출간을 한 적이 없으므로 이 세 글들이 내가 브런치 팀에 보여줄 수 있는 전부였었다.)
3월 9일에 브런치 작가로 승인받고서 딱 2일 뒤, "27살에 엄마가 되었다는 것" (이하 "27살 엄마") 글이 어디 카톡 채널에 올라갔던 모양이다. 하룻밤 사이에 조회수가 마구마구 올라가고, 누가 내 브런치를 구독하기 시작했다고, 또 누가 이 글에 댓글을 남겼다고 알림이 막 오는데 실시간으로 내 글을 누군가 봐준다는 걸 알림 기능으로 친절히 알려주는 브런치가 참 좋았다.
브런치가 제공하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기능은 각 글들의 통계이다.
조회수의 변화를 꺾은선 그래프로 알려주고 (일간, 주간, 월간 선택 가능), 또 어느 경로로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는지 (카카오 채널, 다음 웹사이트, 검색 등) 분석해준다.
근데 브런치 하면 글들이 원래 여기저기 잘 올라가는 건가?
처음에 "27살 엄마" 글이 감사하게도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난 뒤, 아 이제 브런치 작가 하면서 쓸 관심 운(?)은 다 썼구나 생각하고 뭔가 아쉬운 감정이 자꾸 들었었는데. 하지만 그 이후에도 (고작 한 달 사이이지만!) 몇몇 개의 글들이 은근한 관심을 받으며 조회수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 내가 브런치 하는 걸 아는 친한 친구들은 가끔씩 다음 웹사이트나 카카오 채널에 떠있는 내 글의 스크린샷을 보내주며 나의 "브런치 중독"에 땔감을 더해주고 있다.
나의 브런치 중독 & 조회수 뽕의 시작, "27살 엄마" 글을 시작으로,
남편에게 속고 사는 이야기, "또 속았지"도 다음 웹사이트 메인 > "홈&쿠킹" > "별별 가족 이야기"에 실리며 조회수가 마구 올라갔었다.
"알고 들으면 좀 많이 야한 Despacito"처럼 아마도 제목으로 독자들을 유혹한 글도 있는 것 같고 ... (하지만 노래 가사를 두 시간 동안 열심히 번역한 것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조회수가 올라가고 있는 "남자친구가 피앙세를 거쳐 남편이 되기까지" 글도 있으며
대놓고 뻘글로 썼던 글이 또 한 번 카톡 채널에 올라가 본의 아니게 독자들을 낚은 "실패할 수가 없는 샌드위치 레시피"같은 글도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평생 받은 관심 다 합친 것보다도 훨씬 큰 관심을 나의 창작물들이 몰아서 받은 것이 참 뿌듯하다. 내가 글을 막 잘 쓰는 것도 아닌데, 그냥 편하게 시간 날 때마다 쓰는 나의 일상 얘기를 누군가 봐준다는 생각 만으로도 괜히 조금 더 오버해서 열심히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블로그 시작하면서 일상의 순간순간에 더욱 집중하면서 지내는 나를 새삼 발견했다 (어떤 상황이라도 잘 풀어쓰기만 하면 좋은 이야기의 소재가 될 수 있으므로). 또 가까운 미래나 먼 훗날 다시 예전 글들을 읽으며 "아 이때 이런 일이 있었지!"하고 기억의 지표가 되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에 괜히 마음이 편해진다.
블로그에 일기 쓴다고 평소보다 한두 시간 정도 늦게 자러 가기는 하지만, 하루에 한두 시간씩 투자해서 무언가 나만의 기록을 만들어 낸다는 게 나 혼자에게나마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일상이 바빠질수록, 그 바쁨을 기록함으로써 나중에 돌아볼 수 있게, 더 꾸준히 블로그 글을 써야겠다!
+ 제목 부분의 배경 사진의 출처는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