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2033년 11월 27일 일요일.
허유민의 기록을 각색.
지옥 같은 그곳을 벗어나 당장 서울로 가고 싶었지만 이미 도시 외곽은 봉쇄되어 있었다. 우리는 앞으로 전진할 수 없었다. 김지한의 노트북은 암호가 걸려 있어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조사해달라고 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절망에 빠졌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수영 선배가 회사에 자료를 넘겼을 것이고 우리가 촬영한 영상은 세상에 바로 공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료마저 빼앗겼다. 내가 가진 유일한 자료는 암호가 걸려있었다. 실질적으로 내 손에는 아무런 자료가 없었다.
아니지. 그때 가은이 자료를 백업했었다. 이걸 왜 까먹고 있었지. 나는 서둘러 가은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가은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그래, 그럴 테지. 가은의 핸드폰이 충전이 안 되어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자동차에서 편하게 있는 내 처지하고는 달랐을 것이다.
잠깐 고민하다가 나는 회사에 전화를 했다. 부장님에게 연락했다. 그에게 구호를 요청할 생각이었다.
“여보세요? 허기자?”
부장님은 내 전화를 바로 받았다.
“부장님. 잘 지내셨죠?”
부장님은 살가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말을 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들어주려고 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며칠 동안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다시 사라지고. 회사가 장난이야?”
“부장님 너무 역정 내지 마시고. 저 그 IB 취재하러 갔었어요.”
“뭐? 너… 너 진짜 괜찮은 거야? 지금 난리야 거기.”
“그렇지 않아도 난리인 거 제가 부장님보다 더 잘 알 거예요. 부장님. 저… 아니다. 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혹시 제가 있는 곳 말씀드리면 저 좀 구하러 오실 수 있을까요?”
“내가 무슨 허기자의 보디가드야? 그리고 거기를 어떻게 내가 가냐. 거기 봉쇄되었어. 지금.”
“제가 좋은 거 드릴게요. 제가 여기 취재하면서 본 게 있는데 지금 사태의 진짜 원인과 정말 나쁜 놈에 대한 자료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좀 알아듣게 말해.”
“김지한이요. 제가 얼마 전에 취재한 게 김지한이잖아요. 그런데 이 새끼가… 아니다. 여기까지만 말할게요. 궁금하면 저 좀 여기서 빼내 주세요. 제가 자료 다 드릴게요.”
“무슨 자료를 가지고 있는데?”
“모르죠. 그냥 보물단지 같은 거 가지고 왔어요. 열쇠가 필요한 게 흠이지만.”
“….”
부장님은 잠시 말을 멈췄다. 수화기 너머로 볼펜을 딸깍거리는 소리가 계속 났다. 부장님이 고민에 빠졌을 때 나오는 버릇 중 하나였다.
“그래. 그럼 내가 아는 사람 통해서 너 데리러 올게. 너는 근처에서 취재만 하러 갔다가 너무 무서워서 도시를 빠져나오려고 한 거야. 알겠어? 절대 그 안에 들어갔다니 뭐니 말하지 마.”
“역시 부장님! 그러면 부탁드려요!”
“잠깐! 너 있는 데는 말하고 끊어야지.”
“여기요? 잠시만요.”
나는 지도로 내 위치를 잡아 부장님에게 보냈다.
“보셨죠?”
“그래…. 그런데 지금 네가 자료를 가지고 있는 거 또 아는 사람이 있니?”
부장님이 이상한 질문을 했다.
“아뇨. 아…네… 모르겠어요.”
“참내. 괜히 다른 사람 끌어드리지 말고. 너 혼자만 알고 있어. 알았어? 내가 어떻게든 너 데려올게. 우리 특종 한번 만들어보자.”
“네. 감사합니다. 저 근데 먹을 것도 거의 못 먹어서 죽을 것 같아요. 빨리 와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알았어. 너 지금 위치에 계속 있어라. 곧 갈 테니까.”
부장님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이제 됐다.
“저…. 믿을만한 사람인가요? 그 부장님?”
아영이 물었다.
“네? 아 뭐 약간 비호감인 양반인데, 그래도 착한 편이에요. 특종에 눈이 먼 사람이라 제가 뿌린 떡밥을 물긴 할 거예요.”
“그렇군요. 일단 지금은 여기 계속 있어야 하는 거죠?”
“네. 언제 오실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단 기다리죠.”
이렇게 말하고 나는 자동차 시동을 껐다. 우리는 부장님이 어서 구하러 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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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3년 11월 27일 일요일.
정진우의 기록을 각색.
“이제 준비되었죠? 저희는 먼저 갑니다.”
떠날 채비를 마치고 나는 가은과 한수, 윤서, 그리고 다연과 함께 격리소를 빠져나왔다. 살아남은 회사 사람들과 함께 떠나고 싶었지만 몇몇은 격리소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또 몇몇은 나눠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몇 명은 우리를 믿지 않았다. 결국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먼저 격리소를 떠나게 되었다.
걸어서 가려고 하니 막막했다. 은호의 차라도 빼앗아서 빠르게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차장에 있는 차를 이용하는 방법도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 자동차 키를 안 가져와서 차는 무용지물이었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의 차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을 꺼려하는 부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격리소를 떠나 건 지 5분 정도 지났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차를 태워달라고 할까 고민하던 중, 갑자기 격리소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격리소에 있겠다고 하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격리소에서 뛰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놈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아직 격리소 근처에 남아있던 놈이 있었던 것 같다.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놈은 단숨에 쓰러졌다. 다행히 놈은 단 하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고 격리소에 남은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하고 있었다.
“결국, 저 사람들도 우리를 따라오겠네요.”
가은이 말했다.
“그러게요. 차라도 태워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칫. 안 태워줄걸요? 사람들은 말이에요. 위기 상황이 닥치면 생각보다 더 이기적이게 돼요. 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지금 우리는 벌써 5명이잖아요? 인원도 안 맞고. 굳이 그럴 필요는 없죠.”
다연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건우 님도 우리랑 같이 안 가잖아요. 사람들은 다 그 모양인 거지.”
윤서가 덧붙였다. 나는 건우를 쳐다봤다. 회사에서 아주 짧게 일했지만 건우하고는 일을 계속 같이 했기 때문에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다. 친절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라 말도 잘 통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만난 건우는 꽤나 냉정했다. 그가 차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와 같이 가자고 제안했지만 건우는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뭐라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 섭섭했다.
격리소에서 누군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바로 선준이었다.
“선준 님! 괜찮으세요?”
선준하고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불과 며칠만 지났을 뿐이지만 몇 년은 지난 기분이었다. 그는 꽤나 슬퍼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진 님을 만났어요.”
선준이 힘없이 말했다.
“유… 유진 님이요? 어디? 어디예요? 괜찮으시데요? 왜 같이 안… 아니 지금 뒤에서 오고 있어요?”
가은이 선준의 뒤를 살피며 물었다.
“죽었어요. 제가…. 쐈어요.”
선준이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유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침울해졌고 가은은 얼굴을 감싸며 슬픔을 표현했다. 한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윤서와 다연은 지금 이게 무슨 일인가라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선준 님도 저희랑 같이 가실 거죠?”
선준에게 물었다.
“글쎄요. 모르겠네요. 저기 뒤에 남은 분들을 지켜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저기 남아서 좋을 건 없어요. 저희랑 같이….”
선준을 설득하려고 하는데 다시 격리소에서 비명 소리가 나왔다. 또다시 놈이 등장한 것 같았다. 젠장. 대체 어디서 계속 나오는 거야?
그러나 이번엔 뭔가 달랐다. 무언가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 나는 그것을 보고 기겁했다. 사람의 신체 조각이었다. 물론 나만 놀란 것은 아니었다.
“뭐.. 뭐야…”
곧이어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무슨 일이지? 이윽고 총소리가 계속 들렸다. 주위는 연기로 자욱해졌고 기침이 나왔다.
“콜록… 콜록… 뭐야 이거?”
연기 뒤로 거대한 무언가 나타났다. 여태까지 봤던 놈들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의 존재였다. 그야말로 괴물이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았다. 괴물은 우리 앞에서 괴성을 냈다. 다시 뒤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총에 맞은 괴물은 잠시 주춤했지만 바로 회복했는지 다시 괴성을 내며 우리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젠장. 이거 뭐야 대체.
“어서 피하세요!!”
누군가의 목소리에 우리는 흩어지며 괴물의 공격을 피했다. 어떻게 피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본능이었다. 찰나의 판단이 생명을 좌우하는 순간이었다. 정신없이 피하다가 나 역시 무언가에 크게 베였고 팔에는 큰 상처가 났다. 팔 안에 있는 조직이 다 보일 정도였다. 상처를 입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더 멀리서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한수의 목소리 같았다. 나는 소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다리가 잘린 체 고통스러워하는 한수가 있었다. 나는 한수를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어서 피해요.”
누군가 나를 밀쳤다. 뒤를 돌아보니 괴물이 있었다. 그리고 괴물은 쓰러져있는 한수를 집었다. 그리고.. 그 괴물은… 한수의 몸을 뜯었다. 한수의 비명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사람의 몸이 반이 뜯기는 광경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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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3년 11월 27일 일요일.
최가은의 기록을 각색.
그 지옥 같은 순간을 어떻게 기억해할지 모르겠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거대한 놈이 나타나 우리를 죽이기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계속 거대한 놈에게 총을 쏘고 있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총을 쏘면 쏠수록 거대한 놈은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도망가다 보니 발에 무언가 걸렸다. 아래를 확인하니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것이 있었다. 누군가의 몸이었다. 내장이 그대로 나와있어서 너무 끔찍했지만 그 어떤 감상도 할 수가 없었다. 도망칠 곳을 찾다니 그대로 몸이 굳어있는 진우를 발견했다. 나 살기도 바쁘지만 그렇다고 진우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나는 진우를 챙겨 그를 끌고 갔다.
“저기요.”
갑자기 누군가 내 앞에 불쑥 나타났다.
“이 상황에 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여기 근처에 물 좀 있을까요?”
그가 나에게 물었다.
“물이라고요? 미쳤어요? 지금 목마르다는 거예요?”
나는 계속 도망 다니며 그에게 성질을 냈다. 잠깐, 근데 이 사람 어디서 본 것 같기도?
“저 실험체의 약점은 물이에요. 물을 뿌리면 힘이 약해져요. 이런 총으로 막을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 이 사람. 이곳 연구원이었다.
“그래서. 물을 찾으면 이 괴물을 죽일 수 있다는 겁니까?”
어느새 선준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네. 맞아요. 아까 연구실에서 스프링클러로 잠시 행동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연구원이 말했다.
“여기는 바깥이라 그런 게 있을 리가…아!!”
갑자기 근처에 하천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여기 하천 있잖아요. 조금 더 가야 하지만 그곳으로 유인하면 되지 않을까요?”
내 말에 연구원과 선준은 솔깃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래요. 그럼 지금은 싸우지 않고 도망치는 게 중요하겠네요.”
선준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런데 여기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요. 진우 님과 나, 선준 님. 그리고 지금 이름이 생각 안 나는 연구원님….. 윤서 님이랑 다연 님도 안 보여요.”
주위를 둘러보며 선준에게 말했다.
“일단, 가은 님은 여기서 최대한 도망가세요. 제가 최대한 저 놈을 도발하고 막을 테니. “
선준은 다시 총을 장전하며 말했다.
“그래도…”
“지금 저희가 저 실험체를 데려가면 지금 안 보이시는 분들도 안전할 거예요. 일단 도망가시죠.”
연구원이 나에게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진우를 계속 데리고 다닐 수는 없었다.
“진우 님. 정신 좀 차려요. 우리 지금 도망갈 거예요. 하나 둘,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뛰는 거예요. 회사 근처에 하천 있는 거 알아요? 일단 제가 거기로 안내할 테니 저만 따라오세요.”
진우의 뺨을 치면서 그에게 말했다. 진우는 어느 정도 정신이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하나, 둘!!”
말을 마치고 미친 듯이 뛰었다. 목적지는 단 하나였다. 하천이 있는 곳. 그곳으로 놈을 유인하는 것만이 유일한 작전이었다.
한참을 뛰어 하천 위에 있는 다리에 도착했다. 이곳으로 놈을 유인해서 마지막에 피해서 놈을 빠뜨리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선준이 오기를 기다렸다. 선준을 기다리며 나는 진우와 연구원에게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했다.
잠시 후, 마침내 선준의 모습이 보였다. 선준의 뒤로는 굉장히 흥분한 상태의 놈이 쫓아오고 있었다. 선준이 잘만 유도하면 되는 것인데…. 그런데 어이없게도 선준이 넘어졌다. 발을 잘못 디딘 것 같았다. 하천에 빠뜨리기 전에 선준이 놈에게 죽을 것 같았다. 결국 하는 수 없이 나는 앞으로 나갔다.
“어이, 거기 못 생긴 아저씨!!”
선준을 노리던 놈은 나를 쳐다봤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진우와 연구원은 내 옆에 서서 놈의 공격에 대비했다.
“어서 이리로 와 못생긴 놈아!!!!”
나는 한번 더 놈을 도발했다. 그러자 놈은 괴성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왔다. 놈이 달려오자 나는 바로 옆으로 피했고 진우와 연구원은 미리 내가 이야기한 데로 줄을 탱탱하게 댕겼다. 아주 고전적인 방법으로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 멍청한 놈은 나의 생각대로 아주 정확하게 움직였다. 달려오다가 줄에 다리가 걸렸고 덩치 탓에 아주 큰 동작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하천에 그대로 풍덩하고 빠졌다. 놈은 빠지자마자 다시 비명을 질렀다.
“너무 뜨거워어어어어. 살려줘어어어어”
아래를 내려봤다. 놈의 몸은 녹고 있었다. 신체의 대부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기괴하고 역겨운 광경이었다. 계속해서 녹아내리다가 놈의 심장이 보였다. 어느새 다가온 선준이 방아쇠를 당겼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심장이 터졌고 놈은 물에 잠겼다. 빨간색이 아닌 보랏빛의 액체가 나왔다. 하천은 난생처음 보는 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승준 원장이었어요.”
연구원이 말했다. 이승준 원장은 회사 근처 복지원의 원장이자, 곧 회사로 들어온다는 소문이 있던 사람이었다. 원장도 실험 대상이었던 것일까? 그런데 저 모습은 대체….
“IB는….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용서받지 못할 겁니다. 연구원님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조사를 받게 될 거예요.”
선준이 연구원에게 말했다. 연구원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망할 회사. 먼저 나갔어야 했는데….”
나는 하늘을 봤다. 지나치게 맑은 오늘이었다.
몸을 추스르고 우리는 다시 격리소 쪽으로 갔다. 수많은 시체가 있었다. 살아는 있지만 고통 속에서 차라리 죽여달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아까 우리와 함께 가던 다연과 윤서도 크게 다쳤다. 그리고 한수는….
신이 나타나 나에게 ‘단 하루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언제로 하겠느냐?’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오늘을 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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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3년 11월 27일 일요일.
민아영의 기록을 각색.
밤이 되었지만 우리를 구하러 오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차 안에 있었지만 시동을 껐기 때문에 너무 추웠다. 나는 유민에게 여기서 계속 대기할 수는 없으니 보도는 나중에 하고 군인들에게 가자고 했다. 그곳에 가면 최소한 추위를 피하고 먹을 것은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곳에서 한참 동안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컸지만 지금은 차라리 그게 더 나았다. 언론사에서 온다고 해서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유민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녀는 김지한 대표를 고발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조금 답답했다. 나라고 이 사태를 만든 김지한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살고 봐야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저 멀리서 빛이 보였다. 무슨 빛인가 했는데 자동차 상향등이었다. 주위가 어두웠기 때문에 지나치게 눈부신 빛이었다. 그리고 그 차는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오고 있었다. 유민이 말한 사람인 것 같았다. 유민은 차가 있는 방향으로 나갔다. 나는 유민이 조금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만약 언론사에서 온 것이 아니면 어쩌려고 저러는 거지? 나는 차 안에서 기다렸다.
우리를 향해 다가온 차에서 누군가 내렸다. 아주 천천히 누군가 내렸다. 그는 후레시를 켜고 등장했다. 그리고 그는 유민 앞으로 다가갔다. 유민은 그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나도 차에서 내려 유민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 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전조등과 미세한 후레시 및 으로 보이는 얼굴. 아주 익숙한 얼굴이자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 우리 앞에 있었다. 그는 바로 김지한 대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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