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도
2033년 11월 25일 금요일.
정진우의 기록을 각색.
임시 격리소에서의 밤은 무척 길었다. 어제 갑자기 남자 기숙사에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살았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우리를 집으로 보낼 생각이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 영화에서 그렇듯이 이상한 바이러스가 회사에 퍼져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게 전염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합리적일 수 있었다.
격리소에는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직 회사에 아는 사람이 적어 다들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아는 얼굴이 격리소에 도착했다. 바로 한수였다.
“한수 님!”
나는 조용히 한수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한수를 찾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회사 사람들은 대부분 한수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한수에게 다가가서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에 대해 물었다. 그걸 인사팀에게 묻는다고 해서 알 턱이 있나….
“진우 님. 여기 계셨군요.”
이번엔 한수가 나를 알아봤다. 한수는 도망치다가 넘어졌는지 얼굴 곳곳에 상처가 많이 있었다.
“괜찮아요?”
“아직은 괜찮아요. 진우 님은요?”
“저도 뭐….”
“다른 사람들은 잘 있을까요? 어제 여자 기숙사 쪽으로 놈들이 가던데….”
“여기 오는 길에 봤는데 여자분들이 많이 모여계시더라고요. 아마 구출은 다 된 것 같아요.”
이렇게 말은 했지만 나도 가은이나 아영이 걱정되었다. 가은에게 전화를 몇 번 시도했지만 그녀에게서 답변은 없었다. 핸드폰 배터리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계속 통화를 시도할 수는 없었다.
“아까 오면서 봤는데 기사는 아직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냥 당국에서 조사에 나섰다라고만 보도가 되고 있어요.”
“그렇군요.”
전화벨이 울렸다. 부모님의 전화였다. 나는 전화를 받아 부모님께 걱정하기 말라고 했다. 전화가 온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통곡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수는 계속 어두운 표정으로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한수에게 물었다.
“글쎄요. 영화에서 보면 며칠 동안 격리를 하다가 이상이 없으면 또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거나 풀어주거나 하지 않던가요?”
“영화라… 진짜 놈들은 무엇일까요? 좀비? 그런 것일까요?”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가 살짝 봤을 때 그들은 이성이 없어진 괴물들 같지는 않았어요.”
“괴물이 아니라고요? 저렇게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데?”
“아니 뭐랄까…. 아직 이성이 남아있는 것 같았어요. 놈들은 울고 있었어요.”
“울어요?”
“네. 그냥 잠깐 봐서 착각을 하는 것일 수는 있는데 놈들이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이야기라…. 그럼 아직 의식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는 거죠?”
“그냥 제 착각일 수도 있고요.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겠죠. 무장한 사람들이 들어온 이상, 놈들은 죽은 목숨이죠.”
“그렇군요.”
나는 바닥을 쳐다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소은이의 메시지였다. 나는 서둘러 소은이에게 전화했다.
“오빠, 대체 무슨 일이야?”
“소은아. 오빤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아니… 대체 무슨…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응. 진짜 걱정하지 마. 지금 군인들도 출동해서 우리 돌봐주고 있어. 곧 서울로 다시 갈 수 있을 거야.”
“오빠…. 진짜 미안해….”
수화기 너머로 소은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소은이는 말없이 계속 울기만 했다. 그러다가 전화가 끊겼다.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에이, 젠장.”
나는 애꿎은 핸드폰 탓만 했다. 나는 한수에게 핸드폰을 빌려 소은이에게 못다 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의 것을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도 소중한 사람과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했다. 나는 우리 방을 지키는 군인에게 가서 핸드폰 충전을 할 수 있냐고 물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군인은 오히려 핸드폰을 압수하지 않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젠장. 우리를 뭘로 취급하고 있는 거야?
한수는 피곤한지 벽에 기대 잠에 들었다. 나 역시 벽에 기댔다. 부모님, 그리고 여자 친구. 또 우리 퇴사 클럽의 멤버들. 모두가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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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3년 11월 25일 금요일.
최가은의 기록을 각색.
임시 격리소에서 나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되짚어보았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선준, 아니 현준. 그거 국정원 요원이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격리소 안은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아는 사람도 많았고 얼굴만 아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각자의 혼란과 슬픔에 빠져있기에 내가 뭘 말한다고 해서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가 조금 더 일찍 진실을 알았더라면 이런 혼란이 오지 않았을까? 약간의 무력감도 느껴졌다.
밤새 뜬 눈으로 지새웠다. 분명 졸음은 왔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금 내 상태가 안전한지도 의심되었다. 총을 들고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저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 종일 격리소에 갇혀 있었다.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우리의 피를 뽑은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일도 없었다. 나는 지쳐갔다. 핸드폰 배터리는 이미 방전된 다음이었다. 주위를 둘 어보니 다들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음식이 나오긴 했지만 부실했다. 최소한의 생명만 유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가 이렇게 제대로 된 처우까지 못 받고 지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따지고 싶었지만 총을 들고 있는 저들에게 저항할 수는 없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지금은 저게 우리를 지켜주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하루가 다시 지나고 금요일 아침이 되었다. 고요한 아침. 이제 우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지금 상황에 수긍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고픔과 피곤함은 점점 커졌다. 이제 버티기 어려웠다. 밖에 있는 저들이 무서워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용기를 내서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처음에는 바삐 이동하는 소리만 들리더니 곧이어 비명 소리가 들렸고 여기저기서 총을 쏘는 소리가 들렸다. 심상치가 않았다. 나는 문에서 떨어져 벽 쪽으로 이동했다. 격리소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벽에 붙었다. 비명소리와 총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그에에엑”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우리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남자는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충분히 죽었을 양의 총알이 날아갔다. 하지만 소리의 정체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놈이었다. 놈은 재빠른 속도로 총을 쏜 남자에게 달려들어 그를 물어뜯었다. 너무 끔찍한 광경이었다. 놈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우리를 발견했다. 이대로 놈이 이곳으로 돌입하면 우리는 죽을 게 뻔했다. 가벽이나 다름없는 문 하나가 우리를 지켜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놈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놈은 씨익 웃었다. 그리고 놈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놈이 사라지자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놈이 우리를 살려준 것이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이성을 잃은 괴물이나 좀비가 아니었다. 놈은 우리를 정확히 인지하고 우리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놓아주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문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 우리는 더 완벽하게 놈들에게 갇혔다.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무장한 군인들도 놈에게 저항할 수 없다면, 이제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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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3년 11월 25일 금요일.
허유민의 기록을 각색.
국정원 요원이라고 하는 선준, 아니 현준의 말을 듣고 나는 수영 선배의 시신을 확인했다. 놈들이 아닌 사람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선배. 나는 눈물보다 분노가 더 치밀었다. 김지한의 짓이 분명했다. 김지한이 어떻게든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고 이런 식으로 선배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 분명했다. 나는 회사에 돌아가 김지한의 악행을 모두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모자랐다. 김지한에게 복수를 해야 했다. 나는 주위를 살피며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소 주변에서 큰 불이 났기 때문에 나는 일반 행정 구역이 있는 곳으로 진입했다. 놈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 목표는 김지한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김지한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출입 키가 있어야 하는 곳들이 나왔다. 문을 부수어보려고 했지만 내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소화기를 가져와 문을 부수려고 할 때, 갑자기 복도 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놈이 근처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근처에 들어갈 수 있는 방으로 몸을 숨겼다. 청소 도구가 있는 곳이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문 안쪽에 기댔다. 놈이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제발 바로 가라, 바로 가라. 그러나 놈은 내가 있는 곳 문 앞에 계속 서있었다. 문이 닫혀있기에 놈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놈은 분명 내가 있는 곳 문 앞에 있었다. 놈은 내가 지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놈은 밤새 문 앞을 지켰다. 나도 꽤나 독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지만 놈은 그 정도를 넘었다. 저 상태가 되어서도 저렇게 집착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나는 버티기 어려웠다. 배도 고팠지만 무엇보다 목이 말랐다. 방 안을 살펴봤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먹을 것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저 구석에 생수병 하나가 보였다. 누군가 먹다가 버린 것 같았다. 생수에는 물이 절반 정도 남아있었다. 언제 먹었는지도 모르는 생수. 오염되어 있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에 감사해야 하는 처지였다. 나는 물을 조금 마셨다. 바로 다 마시고 싶었지만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2일이 지났다. 수요일에 여기에 들어왔는데 어느새 금요일이 되었다. 밖에 있는 미친놈은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죽을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놈을 처치하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이대로 안에 계속 갇혀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대걸레를 벽에 내리쳤다. 나만의 무기를 만들었다. 놈이 미친 듯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놈은 문을 열려고 했다. 생각해보니 놈은 문을 부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상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넘어가기로 했다.
이제 문만 열면 됐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려고 하던 놈은 내가 문을 열자 그대로 넘어졌다. 나는 놈의 몸에 무기로 만든 대걸레를 쑤셔 넣었다. 놈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빨리 문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달렸다. 김지한을 잡겠다는 목표보다 지금은 사는 것이 중요했다. 비상계단이 있는 곳을 찾았다. 나는 비상구 문을 닫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위층의 비상구 문은 출입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일단 계속해서 올라갔다. 그리고 어떤 곳의 비상구 문이 열려있는 것을 확인했다. 저게 왜 열려있는 것이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곧장 문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역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시체 냄새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곳곳에 시체가 있었다. 이곳은 위험한 곳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놈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어떤 방이 있는 곳을 확인하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유리가 깨진 방이라 위험했지만 복도에 있는 것보다는 이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어째 방 안의 모습은 익숙했다. 어디서 본 곳 같았다. 그래. 내가 와본 곳이었다. 이곳은 김지한의 방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김지한과 인터뷰를 했던 바로 그 방이었다. 나는 혹시 몰라 조용히 방 안을 뒤졌다. 혹시나 김지한의 흔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노트북 하나가 보였다. 암호가 걸려 있어 내용을 확인할 수 없지만 김지한의 물건일 가능성이 컸다. 나는 노트북을 챙겼다. 가져갈 수 있는 가방 같은 것도 없어서 몸에 밀착시킬 수밖에 없었다. 김지한을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적어도 김지한이 하던 짓에 대한 증거를 확보한 것 같다. 어쩌면 김지한도 지금 돌아다니는 놈들에게 죽었을 수도 있다. 김지한을 더 찾아볼까 했지만 밖의 상황을 보니 도망치는 게 우선인 것 같았다. 나는 주위를 살피며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도망치던 중 한 놈과 마주쳤다. 이제 죽은 목숨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놈은 나를 그냥 지나쳤다. 놈이 지나가는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슬쩍 본 놈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나는 나를 살려준 놈에게 감사하며 다시 비상구 쪽으로 갔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 것은 나중 일이었다. 나는 계단을 조심히 내려갔다.
그때, 갑자기 위에서 무언가 달려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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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3년 11월 25일 금요일.
민아영의 기록을 각색.
얼마 전 사이렌이 울렸을 때, 나는 회사에 있었다. 그날은 진우가 나에게 계속 말을 걸려고 해서 일찍 퇴근한 날이었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두고 온 물건이 생각났다. 다음 날 출근할 때 챙겨가도 무방한 물건이었지만 나는 굳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건을 챙겨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평소보다 긴 사이렌이었다. 나는 서둘러 밖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시간에 야근하는 사람이 있나? 그런데 그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두운 복도에서 다가오니 조금 무서워졌다. 나는 엘리베이터가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지하에 있던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이상하게 평소보다 느리게 오는 것 같았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가 나는 쪽을 봤다. 그는 여전히 걸어오고 있었다. 이상했다. 사람의 속도라 하기엔 조금 느렸다.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나는 서둘러 탔다. 저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열림 버튼을 눌렀다. 그래, 회사 사람인데 도와야지. 그런데 너무 안 왔다. 나는 용기를 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안 오실 거예요?”
그러나 상대방의 반응은 없었다. 나는 너무 답답해서 목을 내밀어 상대방이 어디쯤 왔는지 확인했다. 엘리베이터 빛에 그 사람의 얼굴이 비췄다. 아니다.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그래, 내가 그때 목격했던 그 괴물과 같은 형태였다. 나는 서둘러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와 닫힘 버튼을 계속 눌렀다. 문이 천천히 닫혔다. 답답한 정도가 아니라 미칠 정도로 안 닫혔다. 문이 닫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내가 1층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나는 놀라서 1층을 눌렀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그 괴물이 엘리베이터를 연 것이었다. 힘으로 연 것이 아니었다. 괴물은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벗겨진 피부, 기분 나쁜 웃음, 심각한 악취까지. 너무 무서웠다.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다. 괴물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대로 나는 끝이구나.
‘쿵’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나한테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눈을 떠보니 괴물이 쓰러져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팀장님이 있었다. 팀장님은 소화기로 괴물을 머리를 내리찍었다. 괴물의 피가 나에게 튀었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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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니 사무실이었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팀장님이 내 옆에 있었다. 그의 셔츠에는 괴물의 피로 추정되는 것이 묻어 있었다. 내 옷에도 마찬가지였다.
“팀장님….”
나는 그를 부르며 일어섰다.
“아영 님. 조금 더 누워 있으세요.”
팀장님은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9시였다. 화들짝 놀라 사무실을 훑어봤다. 팀장님과 나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사이렌 소리가 울려서 오늘 출근하지 말라고 했어요. 다들 기숙사에서 대기 중이에요. 아영 님도 기숙사로 보내려고 했는데 내가 옮기기는 조금 무거.. 아니, 좀 어려워서 여기 모셨어요.”
“아…. 아닙니다. 팀장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팀장님은 여기 대체?”
밤 중에 사무실에 찾아왔을 때, 나 외에 다른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팀장님은 대체 어디 있던 것일까?
“가끔 사무실에 자곤 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상황이 심각했지만 그의 어이없는 대답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하… 그게 무슨…. 진짜 엉뚱하시네요.”
“어서 내려가죠.”
팀장님은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건물이 흔들리며 큰 소리가 났다. 나는 무게중심을 잃고 다시 쓰러졌다. 건물 안에서는 평소와 다른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영 님. 어서 나가죠!”
팀장님은 내 손을 잡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손을 잡고 나가려고 하는데 복도에 아까 본 괴물이 있었다. 소화기를 맞아 얼굴이 더 무너졌지만 괴물은 우리를 잡으려고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어서 도망가려고 하는데 팀장님이 갑자기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그는 괴물을 향해 총을 쐈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머리가 터졌다. 괴물은 다시 쓰러졌다. 이번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괴물과 팀장님을 번갈아봤다. 어느 쪽 상황도 이해되지 않았다.
일단 건물 내에 불이 났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야 했다. 혹시 모를 괴물의 습격을 대비해 주위를 살폈다. 건물 곳곳에서 총격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군가 괴물을 사살하고 있었다. 나는 팀장님의 얼굴을 봤다. 대체 이 사람의 정체는 무엇이지? 깊은 의문에 빠졌다.
그때 다시 폭발음이 들렸다. 수많은 괴물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는 서둘러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회사의 회의실이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문을 잠글 수도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잠시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팀장님은 말이 없었다. 나는 그를 쳐다봤다. 팀장님도 나를 봤다.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나에게 다가왔다.
“아영 님. 괜찮으시죠?”
“네. 괜찮아요.”
나는 그를 쳐다봤다.
“저는 사실 국정원 요원입니다.”
“네?”
전혀 의외의 말이었다. 갑자기 총을 쓰길래 회사에서 다른 일을 하는 사람 정도로만 짐작했지 국정원이라는 단어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니 여태까지 팀장님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속여서… 아니지. 속이는 게 우리 일이죠. 여하튼 IB의 지금 상황은 심상치 않습니다. 밖에 돌아다니는 것들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고요.”
“그때 저에게 아무 말고 하지 말고 도망치라 한 것도. 다 알고 계셔서 하신 말인 거죠?”
“그래요.”
“혹시 그럼 지혜에 대한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네?”
“저희도 그렇고. 이 회사에 대해서 조사를 하셨다면 여기는 어떻게 되는 거죠?”
“곧 요원들과 군인들이 들이닥칠 것입니다. 이곳의 상황은 모두 보고 되었습니다.”
“그럼 혹시 진우 님이 무언가를 조사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셨었나요?”
“네. 그리고 IB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일이 일어날지도 알고 계셨나요?”
“사실 몰랐습니다. 김지한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습니다.”
“김지한? 대표님이요?”
“아영 님. 아영 님도 아시겠지만 여기는 위험한 연구를 하고 있었어요. 그 결과 저 밖에 돌아다니는 저 녀석들이 만들어졌고요. 그리고 오늘 저들이 저렇게 수많은 수가 몰려나와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저는 김지한이 일부러 풀어준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지혜에 대한 것. 팀장님. 그리고 진우 님이 만든 그 이상한 클럽. 밖에 돌아다니는 괴물. 모든 것이 그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팀장님. 어떻게 하실 거예요?”
“지금은 군인들이 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제가 가진 건 이 조그만 권총뿐입니다. 저 녀석들을 모두 상대하기엔 벅차요. 아영 님은 제가 무사히 탈출할 수 있게 할 겁니다.”
나는 팀장님을 계속 쳐다봤다. 그의 기분 좋던 향은 이제 나지 않고 피 냄새만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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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벌어진 지 3일 정도가 지났다. 온다던 군인들은 아직 건물에 진입하지 못한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들렸지만 당장 우리 앞에 있는 괴물들까지 처리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회의실 안에 몇 개 놓였있던 과자와 음료로 버티고 있었다. 그나마도 팀장님은 거의 드시질 않았다.
“아무래도 말입니다.”
팀장님이 말을 했다.
“이 위에 환기구가 있어요. 여기를 통해서 도망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밖에 보시면 격리소가 만들어져 있어요. 이곳에 지금 회사 사람들이 거의 대피를 했을 겁니다. 일단 여기로 가는 게 우리 최우선 목표예요.”
팀장님은 환기구와 창문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나에게 탈출 계획을 설명했다. 비좁은 환기구를 탈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내가 현재 믿을 사람은 팀장님 뿐이었다.
나는 팀장님의 도움을 받아 환기구가 있는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겉으로 보기보다 더 비좁았다. 밥을 며칠 굶어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나보다 체격이 훨씬 좋은 팀장님은 꽤나 능수능란하게 통로를 비집고 다녔다. 요원이라는 말이 사실이긴 한가 보다.
통로를 통해 나온 곳은 같은 층 휴게실이었다. 팀장님은 휴게실 문을 슬쩍 열어 밖을 살폈다.
“이쪽으로는 괴물들이 없네요. 일단 여기로 나가시죠. 조금만 더 전진하면 계단이 있습니다. 이곳을 통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네요. 괜히 며칠 동안 버텼네요. 이렇게 쉽게 풀릴 거. 미안해요.”
“아… 아니에요. 팀장님. 어서 가죠.”
우리는 문을 열고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은 채로 이동했다. 무사히 계단에 도착한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여유롭게 있을 시간은 없었다. 우리는 부지런히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그런데 계단 위가 어째 시끄러워졌다. 나는 위를 쳐다봤다. 어떤 여성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녀가 괴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사람이었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 품에 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노트북이었다.
“으아아 아.. 어? 어? 사람이죠?”
“어…. 네….”
우리는 서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순간적으로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아니에요. 놈들이 몰려와요.”
“아영 님. 도망쳐요. 녀석들이에요!!”
팀장님은 여자 뒤로 달려오고 있는 무언가를 보고 내 손을 잡고 도망쳤다. 나는 여자의 손을 붙잡았다. 우리는 미친 듯이 달렸다. 우리 뒤로는 괴물들이 떼로 몰려오고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정도가 아니라 수십 마리는 되어 보였다.
오늘따라 계단이 너무 많아 보였다. 우리는 계단 2~3개를 한꺼번에 넘으면서 아래로 갔다. 그리고 마침내 1층에 도착했다. 1층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비상계단 문을 닫았다. 우리는 출구 쪽으로 달려갔다. 매일 퇴근을 할 때 기다리던 그 출구 방향이었다.
무사히 나가나 싶었는데 비상계단문이 열렸다. 괴물들은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쫓아왔다. 그런데 괴물들은 비상계단 쪽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1층은 괴물들 소굴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출구를 막고 있었다. 곳곳에 군인들의 시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시체 중 몇몇은 일어나 괴물과 같은 행동을 했다. 지옥이 있다면 아마 이곳을 위한 말인 것 같았다.
팀장님은 군인들이 들고 있던 총을 들고 괴물들에게 쏘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입구 쪽에 있는 괴물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괴물들을 자극했는지 그들은 팀장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팀장님을 구해야 했다. 나는 주위에 있는 총을 들고 괴물을 쏴보려고 했지만 처음 다루는 총이라 잘 되지 않았다. 우리와 같이 내려온 여자는 막대기 하나로 괴물들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만해요! 둘 다!!”
팀장님이 소리쳤다. 팀장님은 자신의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수류탄이었다. 아까 군인들에게서 총을 빼낼 때 같이 가져온 것이었다. 나는 불안한 생각에 휩싸였다.
“팀장님. 안돼요!!”
팀장님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 쪽으로 총을 쐈다. 우리 뒤에 있던 괴물들이 쓰러지고 출구로 가는 길이 열렸다.
“아영 님. 어서 도망가요! 빨리요!”
“안돼요. 팀장님. 제발.”
나는 그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여자는 나를 말렸다. 그리고 여자는 나를 데리고 출구로 갔다. 팀장님이 멀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 폭발이 있었다. 유리 파편이 튀어 내 팔에 박혔다. 피가 났다. 하지만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다. 나는 여자의 손에 이끌려 계속 달렸다. 계속 달려갔다.
저 멀리서 팀장님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피비린내가 아니라 아주 좋은 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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