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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 새벽빛 Mar 27. 2017

내 잘못이 아니야

혼자가 아닌 나

사진 - 2017시간기록장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니까 어린 나이에 뭐 그렇게 서럽고 힘든 게 많으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 질문마저 서러워 또 눈물을 더 쏟았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객관적으로 힘든 상황이어서가 아니라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우울장애가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자책이 심한 것이 병이었지만 그런 모습을 가졌다는 사실마저 자책거리였다.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표현하지 못한 채 그대로 담아두고, 담아두고, 담아두고 속에서 썩어들어가 병이 될 동안에도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해준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세상은 이런 나에게 언제나 손을 내밀어주었다. 꼭 필요한 때에 꼭 필요한 조건이나 인연을 선물해주는 느낌이랄까. 어떤 형태로든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책 속의 문장을 만나는 일만 해도 그 책이 내 손에 올 수 있게 한 수많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아프면 우주속에 버려진 것 같아."


하루 아침에 병이 낫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는 데까지 나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들이 나에겐 선물이었던 셈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았던 나의 고통마저도, 나에게 절실함을 알려준 고마운 선물임을 이제는 안다. 절실함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먼동이 트기 직전의 짙은 어둠처럼, 절망의 끝을 보고서야 비로소 세상에는 희망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글 <잘돼, 무조건 잘돼> 참고)


세상에 원래 있는 희망을 보지 못했던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마음수련 명상을 통해서 나의 모든 고통이 '나'라는 사진기가 살아온 삶을 사진 찍어 가지는 허상의 마음이라는 것을 배웠다. '나'가 있어서 수만 가지 생각과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이 정말 '가짜'여서 버려지는 것을 경험하고 점차 내 안에 있던 희망을, 세상을 발견해 가면서 나는 '잘못'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내가 탓했던 나의 우울함은 결코 잘못이 아니었다. 오직 '가짜 나'로 진짜 세상을 가리고 있는 것만이 잘못이었다. (글 <자기비하의 오류> 참고)


"하지만 우수속에 홀로 떠 있다 보면 진짜 내 삶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절망밖에 찾을 수 없는 내 마음의 밑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이 두렵지 않다. 가짜이기 때문에 버릴 수 있는 마음을 들고 계속해서 그 속에 빠져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며, 나는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쓴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쩌면 하찮고, 쓸데없고, 이해 안 되는 이야기일지언정 나는 나의 마음에 대해 솔직하게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브런치 덕분에 나는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없이 하고 있다.


희망의 이유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단 하나이다. 마음을 버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 내가 어떤 모습이건 상관 없이, 나를 돌아보고 그 모든 마음이 나에게 있음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그것을 버릴 수 있고 벗어날 수가 있. 하지만 방법이 있어도 마음을 버릴 생각이 없고, 마음이 올라와도 그 마음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버릴 수도 없을 것이다. 세상은 모든 것을 품은 채, 어떤 마음이든지 내가 털어놓기를 기다리고 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힘들고 답답한 마음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하는 일을 망설이지 말자. 담아두면 썩을 뿐이다.


담아두지 말고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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