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명한 새벽빛 May 03. 2017

눈물이 나는 까닭

너 때문이 아닌 나 때문에


고장 난 수도꼭지인 줄 알았던 내 눈은 이제 보니 '비구름' 자체다. 맑은 날씨를 하루도 가만히 두고보는 법 없이 눈물 방울 하나 떨어뜨려주는 심술쟁이 구름. 수도꼭지는 멀쩡하다. 오히려 억지로 잠그려다 고장이 났던 것이지만 요즘은 나오는 대로 자연스레 흘려보낸다. 통제 불능이었던 폭풍우에서 보슬비가 되었다랄까? 눈물이 왜 이렇게 많담.


눈물 한 방울에 사연 하나씩은 들어 있었다. 무슨 사연을 그렇게 많이도 품고 살았는지, 참. 나를 변호하려고 애쓰던 지난 날의 나는 그 날도 애먼 상대를 앞에 두고 자기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었다. 그 때, 상대의 당황스런 표정이 눈에 들어오자 순간 정신이 차려지고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아, 내가 또 뭐하는 짓이지.


나를 울게 해서 미안하단다. 하지만 나는 도리어 상대를 불편하게 한 것이 미안했다. 내가 우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의 사연, 내가 살아온 삶에 기억된 생각 때문에. 상대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그 사연 속의 어떤 감정을 연상시켜 눈물을 쏟게 하지만 그것은 오롯이 '나'로 인한 것이지 '너'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미안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극에 대한 역치가 낮아서 쉽게 아프고 괴롭다면, 애써 이겨낸 척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더 잘 알고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받을 줄만 알고 감사할 줄은 몰랐다. 그들을 만나겠다고 욕심내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배려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나 자신이든 상대든 어떤 대상을 탓하더라도 내가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지금은 어떤 상황조차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 모든 것이 나아지고 있는 와중에 눈물이 나는 까닭도 나에게 남은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감사함 때문이다. 나조차 나를 안아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있고.


나를 믿고 지켜봐주는 사람들과, 그 시간들에 감사하다. 비록 보잘 것 없는 나지만, 잘 살고 있음으로 보답하려 한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을 용서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을 뿐이다. 나는 왜 그토록 잔인하게 나 자신에게 참으라고, 견디라고, 바뀌라고 강요했을까? 환경을 바꾸든, 인식을 바꾸면 되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정말로 모든 것이 내 탓이었다. 아주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청단풍이 너무 예뻤다. 가을에는 우리, 어떤 모습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변화를 위한 씨뿌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