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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보라 "휴학... 어쨌든 해야해요"

휴학 고민 유형 7번째.

by 도그냥
키워드) 가난, 집안사정, 친구, 틀어짐, 체력고갈, 이별

레인보우 휴학유형은 휴학 신청을 고민하는 유형을 자기계발에 대한 적극성과 완벽주의적 태도의 정도에 따라 꿈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중심이 레드그룹, 취업준비와 취업 스펙 준비에 대한 고민이 많은 그린그룹, 현재의 문제에 집중하는 블루그룹으로 나누어보았다. 이 3개의 그룹에 포함되지 않는 마지막으로 남은 유형은 ‘보라 유형’이다. 보라유형에 속하는 친구들은 자기계발이나 취업, 학교 적응의 문제를 넘어서 ‘나’ 자체를 둘러싼 배경에 관한 이유들로 휴학을 고민한다. 너무나 많은 케이스가 있어서 보라유형의 이야기만해도 책 한권이 넘을 내용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문제 2가지만 자세히 다뤄보려고 한다.

바로 ‘집안 문제(특히 가난)’과 ‘인간관계’다.


보라유형을 위한 첫 번째 조언
집안문제로 인한 너의 선택은 언제나 옳다.


팟캐스트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간 적이 있다. 미리 신청받은 사연을 읽어주고 게스트들이 상담을 해주는 전형적인 상담 포맷이었다. 그 주에는 휴학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저는 국문과 2학년 학생입니다. 집안이 갑자기 너무 어려워져서 학교를 계속 다니기가 죄송스러워요. 휴학을 하고 돈을 벌어서 집안에 보태면 더 좋지 않을까해서 휴학을 하려고 합니다. 휴학을 해도 괜찮을까요?"

가족의 일원으로서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싶은 굉장히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가족들이 모두 아등바등하는 사이에 나만 혼자 너무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미안함과 흔들리는 가정경제의 불안감이 뒤섞인 메시지에 마음이 짠했다.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몇몇분이 던진 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흠.. 집안이 가난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면 학과를 잘못선택한거 아니에요? 공대를 갔어야죠~ 하하하하하하"

"그러게요~ 휴학을 하고 돈 번다고 얼마나 벌겠어요~"

순간 대학생들이 이렇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랐다. 이 친구의 고민은 큰 돈을 벌고 싶다는게 아니었다. 가난한 집안에 힘이 되고 싶고, 가급적 빨리 도움이 되고 싶은 짠한 마음이었다. 돈벌이와 학과를 동일시 하는 발언을 듣는다면 이 친구는 더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끼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았다.

가난한 집안때문에 차마 대학생활이란 욕심을 못하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의 큰 특징은 ‘대입의 과정’조차 효도의 일환이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 우리가 겪은 사회에서는 고등학생 수준에서 최고의 효도는 열심히 성적에 맞춰서 최대한 좋은 대학을 가는 거였다. 그 학과가 맘에 들지 않거나 혹은 미래에 대한 뾰족한 수가 없더라도 성적에 맞춰서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대학을 쓰는 건 이 나라의 관습이다. 가난한 집에서 인문학부를 선택한 건 잘못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가난한 집의 효자일수록 학비가 싼 국립대가 아닌 이상 인문학부라도 더 좋은 대학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그게 바로 효도였다.

이 친구의 가장 큰 고민은 사실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죄책감이다. 정말 집에 도움이 될 거라기보다는 몇 푼이라도 벌어서 우리 가족이 똘똘 뭉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보여주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지만. 이 휴학이 장기적으로 정말 자신의 미래에 도움이 될지 혼동되는 마음이었다.


보라유형의 고민은 그 입장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 단순히 휴학을 통해 취업이나 자기개발, 진로를 고민하는 유형이 아니다. 나를 벗어나는 범위에서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속에서 고민하는 경우들이다. 타인에게는 너무나 명확하게 보이는 해답도 내 고민이 되면 답을 찾기 어려운 것이 바로 보라유형의 고민의 특징이다. 가족문제, 사람문제, 재정적 환경은 쉽게 이래라 저래라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자신이 보라유형이라고 생각된다면 오히려 자신의 고민에 대해 자신을 가져야 한다. 남들이 생각하는 작은 일로 낑낑댄다고 생각하지 말고 정말 인갑답게 어려운 일로 힘들다는 것을 나부터 인정해줘야 한다.

고민을 하다보면 위의 팟캐스트처럼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보라유형은 당당하게 자신의 고민을 바라봐야한다. 이게 정말 어려운 고민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그 어떤 방식을 선택하게 되더라도 이 선택에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 설명으로만 듣는 그 누구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걸 나 자신은 인정해줘야한다.

때문에 어떤 방식의 선택을 하든, 보라유형의 선택은 언제나 옳다. 보라유형에 처해있는 그들의 입장을 다른 사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 자체를 존중한다. 나도 보라유형과 이야기를 할 때는 가급적이면 어설픈 상담은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대신에 친구들의 상황을 들어주고 친구들의 아픈 마음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최근에도 가난때문에 고민하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이번에는 반대의 상황이었다. 23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입시에 도전해서 4년제 대학에 오게된 이 친구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다고 했다. 그래서 학회, 공모전, 동아리 등 대학생때만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쓰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고민이 있었다. 바로 해결되지 않은 가난이었다.

"우리집 사정이 좋지 않아, 군면제가 되서 23살까지 일하면서 집에 50만원씩 드렸어요, 대학도 정부장학금으로 다니고 있는데요, 집안 사정 생각하면 빠르게 졸업하고 돈을 벌어다 드리는게 좋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지금 이 시간이 아니면 정말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것 같아요. 나중에 29살에는 꼭 취직하고 돈 벌어서 야간대학원도 다니고 싶어요. 그렇지만 지금 시간을 내서 남미여행도 가고 대외활동도 더 해보고 싶어요. 아마 제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 것 같아요. 제 욕심일까요? 제 사정을 아시는 친척분들이 보시면 분명 어이없어 하실 것 같기도 해서 잘 모르겠어요"

가난 때문에 이미 많은 희생을 했었고 또 앞으로도 당연히 내가 책임져야 할 시간에 대해서 인정하고 잠시 자신이 성장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었다. 위의 케이스와 방향성은 다르지만 여전히 집안에서의 나의 역할과 완전히 한명의 대학생으로서의 역할이 충돌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위의 두 상황을 비교해서 볼 때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서 어느 쪽의 의견도 비난할 수도 있고, 어느 쪽의 의견도 응원할 수도 있다. 집안과 돈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두번째 사연의 친구를 비난할수도 있고, 대학생의 성장을 위해 더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첫번째 친구가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는 것이 효도하는 길이라고 타이르고 싶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친구의 마음은 둘 다 옳다. 휴학에 대해서만 바라본다면 가정환경에 대한 자신의 태도는 성향차이다. 다만 자신이 조금이라도 희생하길 자처했다면 나중에 가족을 원망해서는 안된다. 이 문제 상황이 가족 중에 그 누구도 일부러 만들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내 경험에서 나온 고백과도 같은 결론이다. 나도 하나를 택했고, 사실 어느 쪽을 택했어도 그건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몇년 전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알츠하이머 환자셨다. 내가 스무살 무렵에 아버지의 무서운 병은 건망증처럼 찾아왔다. 동사무소에서 집주소를 제대로 쓰지 못해 몇십장의 종이에 주소쓰기만 연습하셨다. 스무살이 끝나갈 무렵부터는 아빠는 잘 다니던 곳에서도 길을 잃으셨다. 스물한살의 시기에는 밥을 먹고 돌아서면 밥을 먹지 않았으니 밥을 달라고 했고, 스물두살이 되었을 때는 옷매무새를 제대로 정돈하지 못하셨고, 알던 단어도 잊어가셨다. 내가 스물세살이 되었을 때는 실수로라도 밖에 나가시면 길을 잃어서 온 동네를 아빠를 찾아서 뛰어다녀야 했고, 스물 세살이 다 지나가기 전에 아빠는 혼자서 씻거나 옷을 갈아입지 못하게 되었고, 내가 아빠손을 잡고 치매환자들을 위한 주간보호소에 데려다주었다가 다시 모셔오고는 했다. 그리고 스물 네살이 되었을 때 혼자서 화장실을 잘 찾아가지 못했고 할 수 있는 일은 엄마를 큰소리로 찾거나 내 이름을 찾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더이상 가족의 힘으로 보호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아빠를 부탁드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우리집의 재산은 점점 줄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병을 인정하지 못해서 여기저기 한방이나 우울증 치료등을 받아보느라 돈이 많이 나갔고 엄마 혼자 가정을 꾸려야 했기 때문에 집은 아파트에서 빌라로, 전세에서 반전세로 점차 내려왔다. 그나마 엄마가 적극적으로 아빠를 케어하기 위해 전문요양보호사로 직업을 바꾸고 아는 분과 의기투합해서 요양원에서 일을 하시게 되면서 집안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요양원에서 직접 모시고 싶었지만, 아빠를 보면 눈물만 났기때문에 엄마는 아빠를 대하는 마음으로 노인분들을 위해 지금까지도 힘쓰고 계신다.

내 대학생활의 한켠에는 항상 아픈 아버지가 있었다. 밤이면 매일매일 울었다. 그 눈물은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어쩔 수 없는 나의 상황에 대한 억울함이 뒤섞인 것이었다. 마치 지킬 앤 하이드처럼 ‘나는 집에 보탬이 되어야해’라는 생각과 ‘왜 도대체 이런 일이 나한테만 일어나는 건가’라는 생각만 반복했다.

나의 선택은 멀리 보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아프시고 가난하더라도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자식의 희생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기억을 잃어가고 계셨지만 항상 조금이라도 아빠의 마음을 잡고 있을 때면 나에게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이 아빠를 돌봐야하는 상황이 아빠도 너무나 힘들었다는 게 느껴졌다. 나의 두번째 휴학은 철저하게 집안사정에 의한 휴학이었는데 낮에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매달 50만원씩 드리고 저녁에는 엄마와 바톤터치해서 아빠를 돌봐야했다.

가난한 집에서 필요한 것은 돈이 맞지만 안정적인 돈이라고 생각했다. 휴학을 하고 집에 보탰던 50만원은 어쩌면 너무 소박했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휴학기간이라도 내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효자라고 취업 시켜주지는 않아. 효심 스토리를 늘어놓는다고 인정받는 건 케이블TV의 오디션 프로그램 밖에 없어”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항상 중얼거렸다. 세상에서 당당한 자식으로서 일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에서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해야된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요양원으로 가시면서 내가 다짐한건 효도의 시기를 잠시 뒤로 미루더라도 정말 집안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대기업 계열사로 취업에 성공했고, 큰 연봉은 아니라도 꾸준히 벌었다. 입사하고 약 3년정도 우리집이 어느정도 빚을 해결하는 동안 매달 100만원 이상을 집에 보태드렸고, 힘든 기간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드릴 수 있었다. 엄마의 치료받지 못해서 상한 이도 모두 치료해드릴 수 있었고, 집에 에어컨도 설치해드렸다. 2013년에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의 회사에서 찾아온 많은 사람들로 외롭지 않은 장례식장을 만들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을 믿었기에 얻은 결과였다.


어떤 사람들은 당시에도 나에게 흉을 봤다. 내가 휴학하고 집에 돈을 보탤 때는 어서 졸업하지 않느냐고 비난했고, 내가 휴학을 하고 취업준비를 할 때는 빨리 취업하지 못한다고 뭐라고 했다. 내가 내 몫을 하기위에 꼭 필요했던 시간이고, 나만이 판단할 수 있는 선택이었기에 주변인들에게 모두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양단의 결단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면, 가족문제는 생각의 차이가 항상 있기 때문에 어느쪽이든 욕을 피할 수 없다는 것만 기억하자. 그래서 조금은 초연해져야 한다.


지나고 보니 집안문제는 어떤 면에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남들이 죽어라 찾아다니는 동기부여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집안이 힘들다는 건 집에 돌아오기만해도 성실히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못할 일이란 없다. 밤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고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하고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지더라도 이겨내야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아마도 그런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고민하고 있는 거고, 이럴 때일수록 본인 자신을 믿어야 한다. 억울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잠깐 내려놓고 조금만 초연해지자. 나 자신과 가족들을 안타깝고 불쌍하게 생각하지 말고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집중해보자.

그리고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선택했다면, 그 선택은 언제나 옳다. 남들이 하는 모든 말은 무시해도 된다. 이 고민은 분명 중요한 고민이고 나의 선택은 분명 가장 후회 없는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으면 한다.


생각해보기Q1. 대부분의 보라유형의 고민은 근본적인 원인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떤 방법으로 헤쳐나가고 싶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초연할 수 있다면 그 선택은 언제나 옳다.


보라유형을 위한 두 번째 조건
인간관계가 달라졌다면 좋았던 기억부터 버려라


"입학하자마자 CC가 되서 대부분의 시간을 남자친구에게 의지하며 지냈어요. 남자친구가 군대를 가는데 혼자 다니기도 싫고 남친이 복학할 때 같이 다니고 싶어요. 휴학을 하려니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같은과, 같은 동아리였고 같은 수업을 맞춰서 듣던 남자친구와 안좋게 헤어졌어요. 학교에 갈 때마다 계속 마주쳐야 하니까 너무 불편해요, 동아리 활동도 하나도 안나가고 있는데, 수업에서는 어쩔 수 없이 봐야되니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콩알만해져요. 휴학하고 얼굴을 보지 않으면 좀 나을까요...?"

사랑은 지독하다. 그 중에서도 첫사랑은 정말 지독하다. 헤어진 연인과 대학생활 사이에서 고민하는 쪽은 이상하게도 대부분 여학생이었다. 사랑하고 있는 때에는 조금도 떨어져있고 싶지 않아하지만, 헤어지고나면 같은 공간에서 숨쉬는 것조차도 불편해 하는 것이 여자다. 실제로 내가 대학시절 동아리에도 남자 비중이 높아 여자 동아리원들은 대체로 동아리내에서 연애를 경험했었는데, 어느날 그 여자애가 안보이기 시작해서 물어보면 아니나다를까 헤어졌다는 말을 전해듣고는 했다.

첫번째 케이스의 친구같은 경우는 요즘에 의외로 많다. 휴학이 보편화되어가면서 남자친구가 군대에 가있는 기간만큼 휴학을 하거나 어학연수를 선택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휴학을 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너무 남자친구만을 쳐다보다가 나 자신은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남자친구가 군대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휴학을 한다면 친구, 선배, 후배, 교수가 북적대는 대학을 떠나서 나를 골방에 밀어넣는 것과 같다. 같이 다닌 시간이 좋았다고 군 제대 후에도 좋다는 보장은 없다. 혼자서는 너무 외로워서 다닐 자신이 없다면 나는 외로움에 굉장히 취약한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나를 골방에 가둔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휴학하고도 그리워하는 마음에 마음이 아파서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고, 이런 휴학이라면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닌 ‘그를 위한 인고의 시간’이 되어버린다.

아예 이별했을 경우도 이성친구와의 즐거웠던 기억이 문제다. 그는 이미 변했는데 몸과 마음이 다 예전에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하니까 피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결국 외로움의 문제이고 의존의 문제다. 잠깐 피해서 이 마음이 해결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이 없는 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당연히 더 외로워질 뿐이다.


지금 필요한 건 이성친구와 나를 분리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좋았던 기억이 현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이다. 기억은 기억일 뿐이고 지금에 집중해야한다.


좋았던 기억에 매달리는 인간관계의 문제는 친구관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고등학교때는 친구들이랑 마음도 다 터놓고 잘 지냈었어요. 그런데 어쩌다보니 대학교 학과 동기들하고 틀어진 것 같아요. 계속 같은 수업을 듣고 학년을 올라갈 자신이 없어요. 제 뒤에서 제 흉을 보는 것도 알게 됐어요. 점점 걔들 앞에서 자신이 없어지고,, 자연스럽게 저만 따돌리는 것 같아요. 휴학하고 나면 밑의 학년들하고 다녀야 할 텐데 그게 더 나을지 고민이 되요"

대상은 다르지만 연애고민과 문제는 동일하다. 누군가가 편하고 좋았지만 어느 순간 불편해졌고 학교를 떠나고 싶어졌다. 헤어진 연인이 과거의 연인과의 추억을 떠올린다면 이번에는 고등학교 때의 절친들과 즐거웠던 기억이 대학에 와서도 당연히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문제다.


대부분 고등학교에서는 내 모든 걸 말해줄 수 있는 절친들이 있다. 대학 친구들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다르다는 말은 들었지만 자연스럽게 그 정도로 의존하려고 하는데 내 맘같지 않고 틀어지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처럼 모든 것을 공유하고 나누려고 하면 그게 맘처럼 되지 않는다. 인간관계의 발생과정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는 한 곳에서 억지로 모여서 취향과 관계없이 동일한 옷을 입고, 무조건 하루에 8시간 많게는 12시간도 넘게 같이 보낸다.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급식을 먹고 같은 선생님을 욕하고 같은 시험을 본다. 친구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그 기간동안은 아마도 집안의 형제자매보다도 가까운 사이일거다. 흔히 또래집단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학의 친구들은 상황이 다르다. 의상부터 화장법이나 음식까지도 취향이 다를 수 있고, 억지로 하루에 12시간씩 같이 보낼 이유가 없다. 처음에 근처에 앉거나 조로 묶여서 조금 친해진다 싶어도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대학교 친구가 같은 반이나 학과라고 해서 고등학교 친구들처럼 친근해질 이유는 없는 것이다. 아마도 상대방 친구에게도 나는 BEST 프랜드가 아니고 실망스러운 존재일 것이다.

누군가와 안맞으면 무시하면 된다. 적당히 예의바르고 적당히 거리를 둬라.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면 실망하지도 우울해지지도 않는다. 물론 마음의 문제는 컨트롤하기 어렵기 때문에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로 아무 목적도 보람도 없이 휴학을 선택한다면 이미 져버린게 아닐까? 극복한 뒤에 이불킥하지 않도록 도도하게 이겨내 버리자. 학교 친구가 정말 맞지 않는다면 다른 친구를 사귀어도 된다. 나와 비슷한 성향과 나를 이해해줄 수 있고 서로 시너지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분명히 있다. 단 한명만 있어도 굉장히 성공한 삶이다.


생각해보기Q2. 잠깐의 좋았던 기억때문에 현재의 나를 지치게 하고 있지 않나요? 이미 달라진 상황, 달라진 관계라면 현재에 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요?


*본 기고글의 저작권은 작성자 이미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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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 고민보다는 액션하자!


들어가기 - 제대로 해보자, 휴학

#01. 스펙세대에게 휴학의 의미

#02. 휴학 레인보우 고민유형

#03. 빨강 "하루라도 빨리 내 꿈에 도전하겠어!"

#04. 주황 "꿈을 찾는다면! 정말 불태울거야!"

#05. 노랑 "취업 전에, 그냥 잠시 놀고 싶어"

#06. 초록 "뒤쳐지지 않게 나도 스펙을 쌓을거야"

#07. 파랑“나와 맞는게 하나도 없어!! 떠나갈래"

#08. 남색 "난 제대로 하는게 없어!"

#09. 보라 "휴학... 어쨌든 해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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