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1. 스펙세대에게 휴학의 의미

1장. 휴학이 미치도록 하고 싶다.

by 도그냥
N포세대라고 한다.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건 너무 많아서 취업 하나, 결혼 하나 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세대. 그래서 포기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N포 세대라고 한다. 굉장히 많은 냉소주의와 비아냥거림이 들어간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이 단어가 너무나 싫다.

나는 지금의 세대를 ‘스펙세대’라고 하고 싶다. 상황적으로 이해가 다른 것은 아니다. 무엇 하나를 해도 너무나 많은 것이 요구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포기하기보다는 그 수많은 ‘스펙’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노력하는 세대이기에 그렇게 부른다. 그리고 나는 그런 스펙에 집착하는 스펙 1세대였다.


“나는 고작 그런 이유로 대학생이 휴학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냥 일찍 졸업해서 돈 버는 게 더 집안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

대학시절 내가 휴학을 하고 계약직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을 때 칙칙한 면접관들은 나에게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나보다 5살만 많은 사람들만 해도, 휴학이란 집에 더 이상 우골탑 세울 소가 없든가 아니면 예술을 하겠다고 설치는 부자집 아들의 객기이든가, 고시공부하러 신림동에 들어가기 위한 결단이었다고 한다. 부모님 몰래 휴학이라도 했다고 하면 다리 몽둥이가 남아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걸려도 닫힌 자식의 방문을 두드리며 부모님 가슴을 찢어놨다 욕하는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소재였다.


하지만 시대는 달라져있었다.

나의 휴학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더 그렇다.

‘이대로 있으면 안될 것 같은 죽을 듯한 답답함‘ 때문에 우리는 휴학을 떠올린다._



‘휴학’의 본질

통계청에서 최근 발표한 ‘2016년 5월 청년층 및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보면 2016년 5월을 기준으로 대졸자 중 휴학경험자의 비중은 44.6%. 조사가 시작된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고. 대학 졸업까지 걸리는 시간은 4년제 대학 졸업자 평균 5년 1.4개월로 2012년 이후 매년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평균 휴학 기간은 2년 2.9개월로 군대를 다녀온다고해도 3개월 이상의 ‘시간’을 채워야 한다.

사실 ‘휴학’이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도가 없는 하나의 제도에 지나지 않는다. 쭈욱 다닐 수 있는 대학교를 잠시 멈춰놓는 것. 대학을 식당의 관점에서 본다면 회전율이 낮아지는 거고 등록금이라는 수입도 줄어들기 때문에 ‘졸업유예’처럼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메뉴도 아니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말한다.

“휴학을 안하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요즘 ‘휴학’을 서구권의 ‘갭이어Gap year’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언뜻 봐서는 ‘대학을 쉰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비교에는 선을 긋고싶다. ‘휴학’에 대해 고민하는 현상은 국내에서만 일어나는 특수한 현상이다.

'갭이어'란 대체로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1년간 시간을 두고 경험과 여행을 통해 대학생이 되는 것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대체로 대학교와 갭이어단체에서 제공하는 해외 봉사활동이나 여행 프로그램을 이야기한다. 국내에는 출시되지 않은 아마존베스트셀러인 조세프 오세라의 <Gap year>라는 책을 참고해보면 갭이어는 기존에 살아왔던 지역과 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전제로 하며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아마존에 보면 아예 갭이어를 대비하는 부모님들을 위한 책까지 있을 정도다.

한국의 ‘휴학’이란 기성세대에게 여전히 혀가 끌끌 차이는 대상이다. ‘휴학’한다고 했을 때 걱정과 불신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갭이어가 얼마나 휴학과 다른지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게다가 휴학에 대한 프로그램도 거의 없다. 모두 자기가 알아서 계획하고 정해야한다.


그래서 기성세대들은 더 목소리 높여 말한다. 휴학이 ‘도피’는 아니냐고, 일부러 직업전선에 뛰어드는 것을 ‘유예’하는 것은 아니냐고 한다. ‘노력’이 부족하고 ‘눈높이’가 문제가 있다고 요즘 애들은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스펙세대의 치열한 강의실을 겪어본 적이 없다. 난 겨우 텍스트창을 만들 수준인데 여느 회사의 경쟁 프레젠테이션에 내어놓아도 손색없는 엄청난 퀄리티로 기죽이는 경쟁적인 발표수업에 기가 눌려 본 적도 없고, 토익점수 900점을 받고도 영어수준 ‘상’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없는 대학생의 상황을 겪은 적이 없다. 취업 면접 기술도 과외받는 아카데미를 다녀서라도 극복해야하는 절실함을 겪은 적도 없다.

기성세대의 강의실은 민주운동의 막걸리 내음이어도 A+를 받았고, 개인의 생존이 아닌 전체의 생존만 지켜낼 수 있다면 캠퍼스는 낭만의 도시였다. 젊음의 불안은 동일했어도 적어도 캠퍼스의 잔디밭과 취업은 낭만적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부모님은 걱정한다. 괜히 쓸데없이 휴학같은걸 하려고 하니 내 자식이 약해서 걱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말을 들어도 휴학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어른들의 말처럼 겁이 나서도 맞고, 유예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우리집은 금수저도 아니고 경험도 없어서 자소서 한줄도 못쓴다고, 면접가서 할 거짓말도 없다고 말해야하는 것도 무서운 '사실'이다.

나보다 훨씬 잘나고 스펙 좋던 그 오빠도 휴학을 했었고, 나보다 훨씬 잘난 내 친구도 휴학으로 스펙을 쌓겠다고 하는데 감히 나 따위가 뭘 믿고 버틸 수 있을까란 생각에 휴학은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그래서 휴학은 역설적으로 마지막 동아줄 같은 하나밖에 없는 ‘기회’가 되어 버렸다.



휴학 선택의 당위성

이 선택이 합리적인 선택이냐고 묻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2014년 한국직업방송의 ‘취업토크 맞짱’에서 ‘휴학의 이유’를 주제로 격론을 벌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휴학을 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에 선 취업전문가 한 분은 대학생들의 휴학이 비이성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여러 가지 상황상 휴학을 하지 않기를 아무리 조언해줘도 무조건 휴학을 선택해버린다는 것이다.


휴학의 선택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는 건 사실 인정해야한다. 대부분의 휴학의 결정은 충동적이고 그리고 스스로도 이게 맞는지 의문스럽다. 하지만 그 선택은 쉽게 뒤로 무를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오히려 이 선택은 자연스럽고 억지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군단에 합격해서 훈련을 기다리고 있던 한 남학생 친구가 나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학군단을 노력해서 준비했었지만 이렇게 대학다니고 군대 다녀오고 취직해서 결혼하고 아이낳고 이렇게 뻔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휴학을 하려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학군단에게 휴학이란 그냥 휴학이 아니다. 지금껏 노력해서 힘들게 뽑힌 학군단을 포기하겠다는 뜻이었다. 난 타인의 선택을 대신 해주거나 무조건 휴학을 하라고 이야기하진 않는다. 휴학멘토의 역할은 휴학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 고려해봐야 할 사항들을 넌지시 알려주고 자신에게 당당한 휴학을 선택하고 계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 친구에게도 내 역할에 충실하려고 애썼다.

학군단을 하게되면 고된 훈련으로 힘들게 눈에 보이고 하지 못할 것들도 눈에 보여서 힘들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만 나중을 위해서 학군단을 했을 때 장단점을 리스트로 만들어서 그 장점을 포기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고 타일렀다.

그런데 답변은 짧막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이렇게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사실 고등학교 때 마술사가 되는 꿈이 있었어요. 아무리 말리셔도 소용없습니다.”

마술사가 되는 것은 정말 좋은 꿈이다. 하지만 혹시 지금 누군가의 질문에 깊은 고민보다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아 내가 하고 싶다는데 왜!!”라고 소리지르고 싶으면서도, 나에게 고민을 메일을 보냈을 때에는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은 묘한 불안감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되는 사실이다.

위의 친구는 더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마술사에 대한 준비 방법을 물어봐도 되고 싶은 롤모델을 물어봐도 휴학을 하지 말라는 말로만 받아들였던 것 같았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봤을 때 그 친구는 휴학을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아마도 본인 스스로도 휴학을 선택한 이유를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그 답답함에 화를 낸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학은 선택이다!
아직 대학생에게는 낯선 단어다.

휴학에 대해 강연을 하러 가면, 수많은 ‘답정너(답이 정해져 있는 너)’들이 찾아온다. 이미 나는 누가 때려죽여도 휴학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묻는다 “휴학을 해도 될까요?”라고 묻는다. 내 생각이 맞다고 한 마디만 해달라는 눈빛을 가득 담고서.


휴학의 본질은 ‘선택’에 있다. 그리고 선택은 아직 대학생에게는 낯선 단어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생학생들이 태어나서부터 ‘된다’ ‘안된다’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강요받아왔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잘 짜여진 수업과 학원들을 전문가들의 스케줄대로 움직였고, 학교의 커리큘럼에 맞춰서 인생의 커리큘럼까지 모두 정해진대로 살아온 사람들이 더 많다. ‘결정장애’라는 단어는 마치 전염병처럼 대부분의 대학생들에게 퍼져있는 단어다.

20대에 대학에 와서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스스로 선택을 연습할 수 있게 된다. 아니 원했던 일이지만 떠밀리듯 만나게 되는 연습이다. 엄마 말대로 ‘대학만 가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이제는 내가 직접 할 수 있게 된다. 수강신청도 마음대로 하고 공강시간도 마음대로 보낸다. 동아리를 선택하는 거라든가 누구에게 간섭받지 않고 아이쉐도우의 컬러도 고를 수 있다.

이제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해보는 자유로운 선택의 연습에서 어설픈 건 자연스럽고 억지스럽지 않은 모습이다. 휴학을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선택을 하는 과정이 어설플수록 ‘선택의 이유’를 잘 설명하지를 못한다. 휴학의 이유도 그래서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휴학을 하겠다는 굳은 의지는, 어쩌면 지금까지 참아왔던 자발적인 행동의 첫 번째 모습이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이, 내가 살기 위해 내가 휴학을 하겠다는 것. 이게 꼭 합리적일 수만은 없다. 그리고 꼭 합리적이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내가 결정한 일이니까.


하지만 어차피 휴학을 선택했다면 제대로 해야한다. 제대로 해보려면 역설적으로 내가 휴학을 선택한 이유를 잘 알아야한다. 문제를 알아야 답도 찾는다. 연애와 마찬가지다. 처음 ‘그냥 좋아서’만 만나면 좋은 사람을 찾기 어렵다. 언니들이 많이 이야기 하듯 남자도 많이 만나봐야 무엇을 기준으로 좋은 남자를 사귈 수 있듯이 내가 좋아하는 이유를 알아야하고 저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인지 오롯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휴학도 그렇다. 나도 모르던 진짜 휴학을 꿈꾸는 이유를 찾아내면 온전히 휴학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은 9년째 휴학을 많이 보고 들은 내가 지름길로 가는 가이드가 되려고 한다.





*본 글의 저작권은 작성자 이미준에게 있습니다.(http://windydog.blog.me)

*대학교 학보지, 타블로그 등에서 무단 사용 시 법적조치될 수 있습니다.


----------------------------------------------------------------------

휴학, 고민보다는 액션하자!


들어가기 - 제대로 해보자, 휴학

#01. 스펙세대에게 휴학의 의미

#02. 휴학 레인보우 고민유형

#03. 빨강 "하루라도 빨리 내 꿈에 도전하겠어!"

#04. 주황 "꿈을 찾는다면! 정말 불태울거야!"

#05. 노랑 "취업 전에, 그냥 잠시 놀고 싶어"

#06. 초록 "뒤쳐지지 않게 나도 스펙을 쌓을거야"

#07. 파랑“나와 맞는게 하나도 없어!! 떠나갈래"

#08. 남색 "난 제대로 하는게 없어!"

#09. 보라 "휴학... 어쨌든 해야해요"



휴학멘토 소개>>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