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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Aug 15. 2022

176. 자살이라는 행위는 왜 비난받을까?

꾸준히 글쓰기 위한 작고도 큰 300가지 물음표_1 (feat. 뉴닉)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너무나도 유명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소설 첫 문장이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하고, 읽고 또 읽었으며 나는 '죽음'에 엄청난 관심이 생겼고, '자살'을 고민했다. 아, 오해는 없길 바란다. '자살' 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불명예스럽지 않은 자살이 있을까?


가정해보자. (가정하고 싶지 않다면 무시하길!) X는 무언가의 이유로 세상에서 영영 없어지고 싶어 지게 되었다. 그래서 X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런데 자살이 이렇게 어렵다고?


1. 남겨진 사람을 향한 부채의식

X는 평범하디 평범한 대한민국 중산층 집안 출신이다. 세상에 평범한 집안이란 게 어디 있겠냐마는, 어쨌든 X의 부모님은 X를 사랑했고 X도 그랬다. 하지만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자살코자 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X는 자살을 감행코자 한다. 그런데 자살 후가 문제다. 주변 사람들은 X의 자살로 하여금 X가 생전에 행복하지 않았으며 다양한 스캔들에 휘말렸거나 정신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제멋대로 추측하며 수군거릴 것이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수군거림을 X의 부모는 장례식 내내 이겨내야 할 뿐이라, 끝내는 본인들이 X를 잘 살피지 않아 X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단정 지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럼 X의 부모는 평생 불행해진다. X는 이런 상상만으로도 엄청난 부채의식에 시달리게 된다. 


2. 세련된 자살 방법의 부재

X는 본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피치 못한 죽음'처럼 보이면 남겨진 사람을 향한 부채의식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피치 못할 죽음'을 당하기란 쉽지 않다.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한강에서 투신, 목 메달기, 손목 긋기 같은 방법은 당연히 쓸 수 없다. X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스카이다이빙 중 안전장치가 고장 나서 추락한 걸로 꾸민다면...? 아프리카에 봉사를 갔다가 마피아 총에 우연히 맞은 것으로 꾸미는 건? 히말라야 등반 중 산사태에 조난당한 척하는 건...? 이쯤 되니 X는 머리가 너무 아프다. '피치 못한 죽음'처럼 보이는 세련된 자살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며, 설령 있다 해도 시간과 돈과 노력을 많이 요한다. 실패할 확률도 크고, 사후 조사 때 X의 죽음이 전략적 자살이었음이 밝혀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쯤 되니 X는 자살하느니 그냥 사는 게 낫겠다고 결론을 내린다. (일본 사무라이가 아니고선) 불명예스럽지 않은 자살은 없다. 



자살은 왜 비난받는가?


우리는 본인의 탄생을 선택할 수 없다. 삶을 멈추기를 선택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어려울 뿐 아니라 대부분 엄청난 비난을 동반한다. 자살이 비난받는 이유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다.


삶을 견뎌낼 용기와 의지가 없는 나약한 사람으로 간주됨

(종교적 이유라면) 신이 주신 생명을 마음대로 중단할 권리가 없음

삶을 던지는 무책임한 행동임 

어찌 되었든 죽음이란 슬픈 거니까 

'자살'로 죽는 사람이 희박하기 때문



자살을 도움받다, 조력 자살


스위스에는 '조력 자살' 제도가 있다. '안락사'는 고통받는 환자에게 의사가 약물을 주입하여 생명을 거두는 반면, '조력 자살'은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물을 환자 본인이 직접 복용하거나 주사하여 생을 마감한다. 또한 안락사는 환자가 치료될 가능성이 희박할 때에 한해서 이루어진다면, 스위스의 '조력 자살'은 아프지 않더라도 개인이 자유 의지로 죽음을 택하는 권리를 인정한다는 차이가 있다. 2019년을 기준으로 스위스의 조력 자살자 수는 일반 자살자 수를 상회했다. 


출처 : 스위스 연방 통계청, 디그니타스 


하지만, 스위스는 조력 자살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보다 자살률이 낮다. 뿐만 아니라 금년 5월부터 스위스 의학아카데미는 '불치병으로 고통받지 않는 건강한 개인이 조력 자살하는 것은 의학적, 윤리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다시 말해, 건강한 개인이 윤리적으로 자살할 수 있는 권리는 스위스를 포함하여 전 세계 어디에도 없어졌다는 뜻이다. 



선진국의 자살 통계를 보면 남성 자살이 여성의 3배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사회에서 남성에게 기대하는 바가 많아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스위스의 일반 자살자는 남성(742명)이 여성(276명)의 2.7배로 일반 선진국의 성별 자살 비중과 유사하다. 하지만 조력 자살은 반대다. 여성(713명)이 남성(483명)의 1.5배였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사실 정말 모르겠다. 삶을 멈추길 선택할 권리가 건강한 개인에게 있어야 하는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죽고자 함은 개인의 인권에 귀속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통계와 윤리적인 반대 의견에는 받아치기 어렵다. 답이 없는 문제에 답을 얼부무리며...


47. 현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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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누리

운동과 술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석유화학회사를 때려치우고 와인 공부하다 스타트업에 정착했다. 창의성과 영감이 샘솟는 삶을 위해,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과 문장들을 수집 중이다.


(현) '일곱잔' 와인바 사장 @신사

       아웃도어 커뮤니티 컨텐츠 플랫폼 와이아웃 커뮤니티 팀장


(전) 

와디즈 경영추진팀 

와인 21 객원 기자, 레뱅드매일, 파이니스트 와인 수입사 홍보 대사

패스트파이브 커뮤니티 크리에이터팀

독일 UN 사막화방지기구, FCMI팀

석유화학회사 환경안전경영팀

서울대학교 과학교육, 글로벌환경경영 전공

산림청 주관, 유네스코 - DMZ 지역 산림 생태 연구 인턴

한국장학재단 홍보 대사

4-H 동시통역사, 캐나다 파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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