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여행, 14편
오늘은 가장 기대했던 고조 섬에 가는 날이다.
고조 섬은 몰타를 관광하는 이들이라면 필수로 들려봐야 할 곳으로 꼽힌다.
얼마 전 무너진 아주르 윈도우(azure window)도 고조 섬에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심상치 않다. 먹구름에 비바람에.
고조에 가려면 일단 Cirkewwa 페리 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슬리에마에서는 222번 버스를 타면 된다.
부슬비를 맞으며 버스를 거의 한 시간은 기다린 것 같다.
고조 섬을 가는 건 나 혼자일까? 버스 타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3~4월의 몰타는 따뜻하고 화사한 날씨가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봄을 맞는 몰타의 비는 생각보다 고약했다.
그칠 듯 말 듯 계속 이어지는 빗줄기와 야자수가 휘청거릴 정도로 센 바닷바람이 사방에서 불어닥쳤다.
오후쯤에는 그치겠지. 이때만 해도 이런 희망을 안고 고조 섬으로 향했다.
몰타섬의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이 항구까지는 약 1시간 정도 걸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투어 버스 호객행위가 시작된다.
고조 섬을 여행하는 유형은 세 가지 정도로 나뉘는 것 같다.
투어 버스를 이용하는 것, 택시기사와 일정 금액을 흥정해 함께 다니는 것,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고조 섬에 며칠 머무른다면 여유롭게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될 법하지만
당일치기 여행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저께 참여한 버스 투어도 만족스러웠기에 의심 없이 티켓을 구입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으니 5유로를 할인해 준단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이런 날에도 고조 섬으로 가는 배는 가득 찼다.
반 이상이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고, 나머지는 젊은 커플들이 대부분이다.
홀로 여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날씨 때문인지, 원래 몰타에는 홀로 여행하는 사람이 없는 건지 잘 모르겠다.
배 안에선 투어버스 루트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고조 섬에 도착해서도 비바람은 계속됐다.
투어 버스로 뛰어 들어가 간신히 비는 피할 수 있었지만, 비는 정말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창 밖으로만 구경해야 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겠다.
고조 섬의 명소 중 내가 찍어놓은 곳은 빅토리아와 타피누 성당이었다.
고조의 수도인 빅토리아는 위치상으로도 중심에 있으며 교통 거점으로 잡기도 좋은 도시다.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시타델과 고조 대성당이 볼거리고,
골목마다 풍경이 괜찮아서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사진 찍기에도 좋다고 들었다.
기적의 교회라고 불리는 타피누 성당은 한 농부가 성모의 목소리를 들은 후 사람들의 병을 치료한 것으로 알려진 신비로운 장소다.
비 때문에 이 두 곳은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버스에서 내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별 계획에 없었던 두 곳에서 잠깐 내릴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아주르 윈도우가 있는 장소.
아주르 윈도우가 사라진 걸 다들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절반 이상 사람들이 여기서 우르르 내렸다.
이때쯤 비가 좀 그쳐서 나도 따라 내렸다.
아주르 윈도우에 가기 전, 아름다운 블루홀이 있다고 해서 들러봤다.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곳.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주르 윈도우.
더 가까이 가보고 싶었는데, 이때부터 다시 비바람이 미친 듯이 분다.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찍고 다시 버스에 탑승.
이쯤 되니 고조를 오늘 제대로 볼 수나 있을까.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시 버스 안에서의 여행이 시작됐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낯설다.
몰타 대부분의 건물이 그렇지만 고조 섬은 더 흙빛이 짙었다.
비와 안개로 부옇게 된 날씨에도 색은 뚜렷했다.
맑은 날 본다면 더없이 아름다울 풍경일 텐데. 아쉽기만 하다.
버스가 정차한 곳은 타피누 성당(Ta Pinu)
1575년 세워진 성당으로, 소원을 들어준다는 신비한 이야기가 남아있는 곳이다.
한 여인의 아픈 몸이 기도로 나았다는 이야기는 성당을 한결 더 신비로운 장소로 보이게 한다.
호기심 있는 관광객을 비롯해 몸과 마음의 치유를 원하는 많은 신자가 이곳을 찾는다.
원래는 계획에 없었지만, 투어 다음 코스인 슬렌디(Xlendi)에서 내렸다.
가장 많은 사람이 내리는 곳이기도 했고, 그 무렵 비가 그쳤기 때문이다.
작은 휴양 마을답게 리조트나 레스토랑이 대부분인 평화로운 곳이다.
슬렌디 베이를 병풍처럼 둘러싼 절벽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그 절벽 아래 짙은 빛의 바다가 일렁이는 곳도 좋았고,
레스토랑이나 리조트가 듬성듬성 자리한 것도 풍경을 외려 돋보이게 한다.
절벽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마을 전경을 볼 수도 있다.
스킨스쿠버를 하기에도 좋은 곳인 것 같다.
마을 여기저기 돌아다녀 봤으나,
비가 많이 와서 그런 건지 조용하기만 하다.
비옷을 입은 관광객들만 분주하게 비를 피하기 바쁘다.
세차게 비가 내리는 바람에 문을 닫은 레스토랑 파라솔 아래에서
다음 투어 버스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 덕분에 심심하지 않다.
버스 마지막 루트가 빅토리아 마을이었다.
거기에서 내릴까 하다가, 항구로 돌아왔다
비를 꽤 맞은 상태여서 무리했다가는 다음 여행을 망칠지도 몰라서.
장기 여행 초반에는 약간 몸을 사려야 한다.
커피 한잔으로 간신히 몸을 녹였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무래도 고조에 다시 한번 올 것 같은 예감.
버스를 타고 다시 슬리에마로 돌아오는 길.
내일은 몰타에서의 마지막이다. 쓰리 시티즈에 가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부디 날이 좋았으면. 꾸벅 졸면서도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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