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침대에 눕습니다. 분명 몸은 파김치가 되었는데, 머릿속은 이제 막 야근을 시작한 사무실 같습니다.
오늘 직장 상사가 스치듯 내뱉은 한마디가 자꾸만 되감기 되고, 몇 년 전 이불킥했던 흑역사가 갑자기 팝업창처럼 뜹니다. 내일 아침 회의 준비는 잘 된 건지 불안감이 밀려오고, 그러다 문득 “나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하는 실존적인 고민까지 치고 들어옵니다.
“제발 그만 좀 해. 나 좀 자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속으로 외쳐 보지만, 생각의 공장은 멈출 줄 모릅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기분입니다.
도대체 왜 우리는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없는 걸까요?
우리 마음은 가만히 머무르기보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과 이야깃거리를 찾아 움직이기 쉽습니다. 윌리엄 제임스가 말한 ‘의식의 흐름’처럼, 생각은 멈춰 있는 덩어리가 아니라 계속 흘러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천오백 년 전의 수행자들도 똑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마음 상태를 심원이마(心猿意馬)라고 불렀습니다. 마음은 원숭이(猿)처럼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 나뭇가지 저 나뭇가지로 옮겨 다니고, 생각은 야생마(馬)처럼 날뛴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당신이 예민해서만은 아닙니다. 지금 머릿속의 원숭이가 너무 심심해서, ‘과거의 후회’라는 장난감과 ‘미래의 불안’이라는 장난감을 양손에 들고 놀아 달라고 보채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날뛰는 원숭이에게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윌리엄 제임스는 그 답을 주의력(Attention)에서 찾았습니다.
제임스는 인격과 지적 성숙의 핵심을, 산만해지는 마음을 다시 한곳으로 모으고 붙잡아 두는 능력에서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생각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마음대로 날뛰는 주의력을 내가 원하는 곳에 의도적으로 머물게 하는 힘을 기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원리를 반복 훈련의 단계로 촘촘하게 풀어낸 수행의 매뉴얼을, 우리는 천태의 육묘법문(六妙法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1부에서 배운 ‘세기[數]’와 ‘따라가기[隨]’ 다음에 만나는 육묘법문의 세 번째 단계가 바로 지(止)입니다.
천태대사가 말하는 ‘지(止)’는, 제임스가 중요하게 본 주의력 훈련을 아주 실전적으로 다루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지(止)’는 생각을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날뛰는 주의력을 낚아채서, 내가 정한 단단한 기둥(대상)에 묶어 두는 기술입니다.
오늘 밤, 또다시 잡념의 폭주 기관차가 출발하려 한다면 이 기술을 써보십시오.
1단계: 알아차림 (스위치 확인) 잡념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 또 원숭이가 날뛰고 있구나.” 하고 무심하게 알아차리십시오. 자책할 필요 없습니다.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입니다.
2단계: 과감한 차단 (스위치 내리기) 떠오른 생각에 꼬리를 물지 마십시오. “내일 회의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면, “그래서 대안이 뭔데?”라고 이어가지 말고, 그 순간 마음속으로 짧게 “멈춤” 하고 말해 보십시오.
여기서 말하는 차단은 생각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의 줄거리에 더 이상 연료를 넣지 않는 것입니다.
3단계: 닻 내리기 (기둥에 묶기) 끊어낸 주의력을 즉시 1부에서 배운 든든한 기둥, 아랫배(단전)로 가져옵니다. 숨이 들어오면서 배가 부풀고, 나가면서 꺼지는 그 물리적인 감각에 마음을 ‘툭’ 하고 올려놓으십시오.
원숭이는 또 도망갈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데려와서 묶어 두십시오. 백 번 도망가면 백 번 다시 데려오면 됩니다. 마치 말 안 듣는 강아지를 훈련하듯, 끈기 있고 단호하게 반복하는 것. 이것이 지(止)의 핵심이며, 제임스가 중요하게 본 ‘주의력’을 기르는 매우 실제적인 훈련이기도 합니다.
이 훈련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생각은 ‘나’ 자체가 아니라, 내 의지와 훈련에 따라 다루어 갈 수 있는 도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자꾸 ‘멈춤’을 소극적으로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 주저하는 상태, 도망치는 상태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삶에서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화난 순간 바로 말하지 않는 것
불안한 순간 성급히 결론 내리지 않는 것
서운한 순간 즉시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것
흔들리는 순간 중요한 결정을 미루는 것
이런 멈춤은 회피가 아니라 정확성입니다. 무기력이 아니라 훈련된 제동력입니다.
지(止)는 나를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흩어진 나를 다시 모으는 첫 번째 기술입니다. 그리고 이 첫 번째 기술이 있어야 다음 단계인 관(觀)—내 마음을 제대로 보는 눈—도 열립니다. 멈추지 못하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물에는 얼굴이 비치지 않는 것처럼.
오늘 우리가 배우는 것은 “평생 생각하지 않는 법”이 아닙니다. 그건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의 연습은 단 하나입니다.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마다, 그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몸과 숨 쪽으로 먼저 돌아오는 것.
그 짧은 멈춤이, 생각의 소음 속에서도 내가 나를 잃지 않게 해주는 첫 문이 됩니다. 오늘 밤은 부디, 당신이 그 스위치의 주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증상
몸은 지쳤는데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천태의 진단 키워드
지(止): 마음이 흩어질 때 먼저 멈추어 한곳에 두는 힘
계연일처(繫緣一處): 마음의 인연을 한곳에 매어 둠
오늘의 처방
생각의 내용과 싸우지 말고, 생각이 번져가는 속도부터 먼저 끊는다.
흩어진 주의를 다시 몸의 감각, 특히 아랫배의 움직임으로 돌려 닻을 내린다.
생활 적용 1분
잡념이 폭주할 때 10초만 멈춥니다.
① "아, 생각이 달린다" 하고 알아차리고
② 속으로 짧게 "멈춤" 하고 말한 뒤 ③ 아랫배가 부풀고 꺼지는 감각을 3번만 느껴봅니다.
"마음을 한곳에 매어 두면 산란함이 점차 가라앉는다." 계연일처(繫緣一處)『육묘법문(六妙法門)』의 수행 취지에 따른 정리
① 수전 놀렌-호크스마 저, 이경아 역, 『생각이 너무 많은 여자』(Women Who Think Too Much), 샘터, 2011.04.15;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추(Rumination)'의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인지적 제동을 통해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는 실천적 방안을 제시함.
② 잭 콘필드 저, 김열권 역, 『처음 시작하는 명상』(Meditation for Beginners), 불광출판사, 2013.11.25; 호흡을 닻(Anchor) 삼아 방황하는 마음을 현재에 묶어두는 수식관(數息觀)의 원리를 현대인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서술함.
<내 몸과 마음의 사용설명서> 제2부 <호흡이 지혜가 되는 문>는 매주 화요일 10시에 발행됩니다.
내 身·心의 사용설명서 2부 호흡이 지혜가 되는 문
[2부 PROLOGUE] 왜 숨을 쉬는데도 여전히 불안할까요?
https://brunch.co.kr/@29b9e2756369447/35
내 몸과 마음의 사용설명서 [1부 숨, 생명의 스위치를 켜다]
[1부 에필로그] 이제, 마음의 바다로 나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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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마음의 사용설명서 [1부 숨, 생명의 스위치를 켜다]
[6화] 心身 사용설명서의 3 조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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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마음의 사용설명서 [1부 숨, 생명의 스위치를 켜다]
[5화] 아픈 곳으로 숨 쏘아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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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마음의 사용설명서 [1부 숨, 생명의 스위치를 켜다]
[4화] 머리의 열을 발바닥으로 끄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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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마음의 사용설명서 [1부 숨, 생명의 스위치를 켜다]
[3화] 숨의 꼬리를 잡고 따라가기(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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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마음의 사용설명서 [1부 숨, 생명의 스위치를 켜다]
[2화] 머릿속 소음을 끄는 숫자 세기(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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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마음의 사용설명서 [1부 숨, 생명의 스위치를 켜다]
[1화] 입을 다물라, 그래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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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마음의 사용설명서 [1부 prologue]
숨, 생명의 스위치를 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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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마음의 사용설명서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