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 2화를 통해 우리는 마음의 폭주 기관차에 급제동을 거는 법, 곧 멈춤[止]을 연습했습니다. 덕분에 이제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멈춤’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영원히 멈춰 있을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사람을 만나야 하고,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일시 정지’ 버튼을 해제하는 순간, 잠잠했던 생각과 감정들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들이닥칩니다. 이때 무방비 상태로 당하면, 오히려 예전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이제는 전략을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들이닥치는 생각들과 싸우거나 도망치는 대신, 그것들을 아주 안전한 곳에서 구경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미국의 발달심리학자 존 플라벨(John Flavell)은 1970년대에 초인지(Metacognition)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수학 문제를 풀 때 “이 문제는 어렵네, 다른 공식이 필요하겠어”라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이나 상태를 한 발짝 떨어져서 살피고 점검하는 상위 능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생각에 대한 생각’입니다.
플라벨은 이 능력이 학습과 문제 해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지금 내 감정 상태가 어떤지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태의 육묘법문에서 멈춤[止] 다음에 이어지는 문이 바로 관(觀)입니다. 내 감정이 폭발하려 할 때,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CCTV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내면의 감시자를 깨우는 훈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안실의 경비원은 CCTV 화면 속에 도둑이 들었다고 해서 같이 뛰어들어가 싸우지 않습니다. 그저 모니터를 보며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기록할 뿐입니다.
“3시 15분,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창문을 넘고 있다.” (사실)
“저런 나쁜 놈! 당장 잡아야 해!” (감정적 반응)
경비원의 역할은 전자(사실 기록)이지, 후자(감정 반응)가 아닙니다. 우리도 마음속에 이런 냉철한 CCTV를 한 대 설치해야 합니다.
우리가 감정에 휘둘리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내가 그 감정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슬픈 영화를 볼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주인공이 오열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영화 속 주인공과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동일시(Identification)라고 부릅니다.
“나는 화가 난다.”
“나는 우울하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라는 존재와 ‘화’라는 감정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화가 날뛰는 대로 나도 함께 날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천태의 관(觀)은 영화관의 불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감정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던 나를, 안전한 관객석으로 빼내는 기술입니다. 불이 켜지면 우리는 알게 됩니다. 스크린 속의 비극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누군가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1, 2화의 ‘멈춤’ 기술로 최악의 폭발은 막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은 답답합니다. 이때 CCTV를 켭니다.
1단계: 거리두기 (관객석으로 이동)
화가 난 상태를 “내가 화났다”라고 느끼는 대신,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지금 내 안에 ‘화’라는 감정이 들어왔구나”라고 문장을 바꿔 보십시오. 이 작은 언어 습관의 변화가 당신을 무대 위 주인공에서 객석의 관객으로 순간 이동시킵니다.
2단계: 이름표 붙이기 (라벨링)
CCTV가 상황을 기록하듯, 지금 느껴지는 감정과 생각에 건조한 이름표를 붙이십시오.
(상사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 때) → “아, ‘과격한 생각’이 지나가네.”
(미래가 불안해 심장이 뛸 때) → “지금 ‘불안’이라는 감정이 찾아왔구나.”
감정에 이름을 붙여 주는 순간, 신기하게도 그 감정의 위력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3단계: 구름처럼 흘려보내기
이제 이름표를 붙인 그 감정을 가만히 지켜보십시오. 억지로 없애려 하지 말고, 그냥 두십시오. 하늘의 먹구름이 영원히 머물지 않듯, 아무리 강렬한 분노나 슬픔도 가만히 지켜보면 모양이 바뀌고, 흐려지고, 결국 지나갑니다.
기억하십시오. 스크린 속에서 불이 난다고 해서 스크린 자체가 타버리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마음 위로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지나가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관찰하는 자리는 그 감정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관(觀)은 그 자리를 회복하는 훈련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의 마음속 CCTV는 잘 작동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증상
감정이 한 번 휘몰아치면 ‘나’는 사라지고 감정만 남는다.
특정 상황이나 사람에게 자꾸 자동반사적으로 반응한다.
천태의 진단 키워드
관(觀): 마음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는 힘.
반조(返照):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돌려 내 마음을 비추어 봄
천태의 처방
“나는 화가 났다” 대신 “지금 화라는 감정이 올라왔다”고 문장을 바꿔 본다.
감정과 생각에 짧은 이름표를 붙이고, 그것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본다.
생활 적용 1분
짜증이 확 올라오는 순간, 마음속으로 실행합니다.
① “반조(返照)!” 하고 속으로 외치며 마음의 CCTV를 켠다.
② “지금 무엇이 올라왔지?” 하고 묻는다.
③ “짜증 / 서운함 / 불안”처럼 이름을 붙이고 10초간 지켜본다.
마음이 고요해진 뒤 지혜로 관찰하면, 어두운 방에 등불을 켠 듯 분명해진다.
— 『육묘법문(六妙法門)』의 관법(觀法) 취지에 따른 정리
① 리사 손 저, 『메타인지 학습법』, 21세기북스, 2020.02.12; 존 플라벨이 제안한 초인지(Metacognition) 개념을 바탕으로, 자신을 객관적 거리에서 관찰하는 능력이 학습과 심리적 조절에 미치는 결정적 영향을 분석함.
② 엘렌 랑거 저, 김진아 역, 『마음챙김: 비판적 사고를 넘어서』(Mindfulness), 이너북, 2021.09.25; 대상을 고정관념 없이 있는 그대로 비추는 '마음챙김'이 단순한 집중을 넘어 삶의 주도권을 어떻게 회복시키는지를 실험과 이론을 통해 증명함.
<내 몸과 마음의 사용설명서> 제2부 <호흡이 지혜가 되는 문>는 매주 화요일 10시에 발행됩니다.
내 身·心의 사용설명서 2부 호흡이 지혜가 되는 문
제2화: 뇌를 속여서라도 멈춰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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