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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디지털 교과서는 맞춤형 교육의 만능열쇠일까?

특집 / 이충일 선생님_새로운학교 네트워크 마산초등학교 교장

1.

1996년 교단 선진화 사업을 시작으로 미디어와 결합한 각종 콘텐츠가 개발·공유되면서 우리 교육 환경은 커다란 변화를 거쳐 왔다. 이 과정에서 경쟁적 우위를 선점한 교육 플랫폼이 등장하였는데, 2000년대 ‘티나라’와 2010년 이후의 ‘i-scream’이 바로 그것이다. 거대 플랫폼의 등장은 정보 대중화와 공유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교육 생태계가 외려 획일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i-scream’의 경우에는 교과서와 교육몰(mall) 사업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초등 교육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점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AI 디지털 교과서가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촉발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2022년 11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취임 인사에서 “학생 500만 명을 위한, 500만 명의 조교”라는 표어를 내세워 학생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는 데 AI 디지털 교과서가 열쇳말이 될 수 있음을 피력했다. AI가 ‘학생 분석, 학습목표 점검, 학생의 강점과 약점 및 이해도를 데이터화’함으로써 진정한 학생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게 핵심 요지였다. 장밋빛 청사진에 불과하다며 무조건 폄하할 일도, 그렇다고 양팔 벌려 무조건 환영할 일도 아니다. 확증 편향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은 객관적인 연구 성과를 촘촘하게 톺아보는 일이 아닐까.


2.

다음은 2021년 《나라경제》에 실린 글이다.

AI 교육은 아직 많은 한계도 있다. 무엇보다 AI 교육의 효과에 대해 보다 많은 엄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물론 최근 AI 교육의 놀랄 만한 긍정적 효과에 대한 연구들이 나오고 있지만 결코 충분한 실증적 근거가 확보됐다고 보기에는 이르다. (2021년,《나라경제》,4월호)


이 글의 필자는 이주호 교육부장관이다.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효과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까지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하지 않는다. 교육부 장관에 취임하기 불과 1년 7개월 전에 쓴 글이니, 그 사이에 ‘충분한 실증적 근거가 확보’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AI 디지털 교과서가 시기상조라는 근거는 이 밖에도 적지 않다. 2020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주관으로 시작된 ‘에듀테크 멘토링 사업’을 예로 보자. 이것은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 4만여 명을 대상으로 멘토 2000여 명을 매칭하여 학습 지원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이 사업의 결과를 서울교대 연구팀이 분석하였는데, 그 결과가 매우 흥미롭다.


학습 성공과 실패 사례의 관건은 사람의 개입 양상이었다. 성공 사례로 꼽힌 멘토링 강사들은 공통적으로 ‘학생과의 상호 신뢰 관계 형성’을 비결로 꼽았다. 기기에 진도를 의존하지 않고 전문성 있는 멘토가 능동적으로 가르쳤다. (서울교대, 권정민 교수)

권정민 교수와 연구팀에 따르면 멘토가 신뢰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했을 때 성공 확률이 높고, 멘토가 기기 관리자가 되면 학습은 대게 실패하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멘토 역할의 중요성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연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후에 언급된 권정민 교수의 언술을 보면, 이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I 디지털 교과서의 작동은 정확한 학습자 분석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학습자를 분석하려면 외부 간섭이 없어야 한다.”라며 인간 교사의 개입으로 인해 AI 분석 알고리즘이 혼탁해질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까 학습자의 성공적 경험을 위해 멘토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정확한 학습자 분석을 위해 외부 간섭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AI 교육 담론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신뢰할 수 있는 학문적 개념에 도달하였다고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미래교육 의제에서 AI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더 많은 논의와 실행 과정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그것이 교과서라면 말이다. 치열한 논쟁과 시행착오를 통해 AI 디지털 교과서가 맞춤형 교육의 열쇳말이 될 수 있는 그날이 올 수 있길,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기상조’가 될 수 있길 희망한다.



2024 겨울호 목차

1. 시론
2. 포럼&이슈
3. 특집
4. 수업 나누기 정보 더하기
5. 티처뷰
6. 전국NET소식
7. 이 책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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