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나누기&정보더하기 / 김영진_수곡중학교
내가 추구하는 수업은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는 수업이다. 수업에 관심을 유지하며 그 속에서 친구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신만의 배움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하지만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게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고 동시에 매 차시 수업에서 꼼꼼하게 관찰하고 돌봐야 최대한 많은 아이가 수업에 참여하는 동시에 배움으로부터 소외되는 학생 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업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는 것은 수업에서 학생 스스로가 주도성을 갖고 참여하는 일과 같다. 학생 주도성이 살아나는 수업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수월하게 많은 아이가 수업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관찰’이다. ‘관찰’은 그저 ‘보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보는 것’: 자동적, 무의식적으로 기록하는 과정
‘관찰(觀察)’: 의식적으로 신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기록하는 과정
자세히 보며 살펴서 무언가를 알아가면서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무언가를 제대로 아는 데까지 이르도록 두루 살펴서 생각하며 보는 것을 ‘관찰’이라고 한다. 학생들이 수업에서 활동지에 제시되는 텍스트, 이미지 또는 영상을 자세히 관찰한다는 것, 그것이 배움의 몰입으로 들어가는 첫 단계인 셈이다. 미래 교육에서는 문제해결력보다 문제 발견 능력을 더 큰 역량으로 본다고 한다. 여러 분야에서 문제 발견 능력이 문제 해결 능력보다 창의적 산출물에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를 발견한다는 것은 자세히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나는 수업에서 ‘관찰’과 ‘삶과 연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활동지 안에 아이들이 관찰할 수 있게 하는 텍스트와 그림 등을 넣고, 그 차시와 연계될 수 있는 삶의 과제를 넣는다. 아이들을 만나는 매 차시 수업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관찰’에 흥미를 갖고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해서, 아이들이 배움의 주체가 되는 긍정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과연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면서 배우고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여전히 망설여진다. 다만 관찰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배움을 경험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중학교 1학년 과학 ‘물질의 상태변화’ 단원에서 아이들과 함께했던 관찰 수업이다. 30분 동안 물속에 담긴 얼음의 상태를 자세히 관찰하여 최대한 많은 현상을 적고, 관찰한 현상 중 물질의 상태변화를 나타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류한 후 물질의 상태변화인 현상은 과학용어로, 아닌 현상은 그 이유를 설명하는 활동이다.
[학습 활동]
1) 얼음이 담긴 컵에서 관찰되는 것을 모두 적으시오.
2) 관찰한 사실 중 물질의 상태변화인 것과 아닌 것을 분류하시오.
3) 물질의 상태변화인 것은 상태변화의 용어로 설명하고, 아닌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적어보시오.
[모둠 대화]
·컵에 얼음을 넣으면 그냥 녹는 거지 아니야? 뭘 보라는 거지?
·자 봐봐, 컵 표면이 뿌옇게 흐려지는데.
·얼음이 자꾸만 움직여.
·얼음에서 기포도 나오는 것 같아.
·얼음에서 빠져나온 기포는 위로 올라온 후에 없어지고…….
·근데 얼음 속이 왜 하얀 거야? 원래 얼음 속이 하얀가?
·우리 집 얼음도 똑같아.
·근데 편의점에 얼음 컵 있잖아 그 얼음은 투명해.
·정말?? 그럼 왜 그런 거지??
· 몰라 다른 거 관찰한 거 말해봐.
· 봐봐 얼음이 떠 있는 부분에 물방울이 커지고 있어.
·얼음이 작아졌네. 이것도 써도 되나?
·될 것 같은데, 그럼 얼음이 떠 있다고 써도 되겠지?
·컵 아래쪽에도 물방울 크기가 커지고 있어, 얼음이 있는 곳에 물방울 크기는 더 커지고
·종이도 젖어가기 시작했어.
·얼음이 떠 있는 위쪽에 물방울이 커지니까 무거워져서 미끄러지면서 내려오는 거지.
·그렇네. 컵 벽면에 물이 흘러내리면서 줄이 생겨.
·종이가 젖는 면적이 점점 동그랗게 넓어져.
·얼음이 거의 녹아서 없어지고 있어.
·얼음이 녹아서 물의 높이가 높아졌어.
·아니야 내가 물 높이 봤거든 근데 변함없어, 아닌가, 조금 많아졌나?
·얼음을 처음 넣었을 때 부력 때문에 물 높이가 올라가고 나면 얼음이 다 녹아도 높이는 똑같아야 하는 거 아니야?
·일단 변함없다고 쓰고 이따 물어보자.
·그럼 이제 다 찾은 것 같아? 더 있어? 없으면 분류해 볼까?
·컵 주변이 시원해졌다는 것도 써야 할 것 같아.
·좋아.
생각보다 아이들은 집중하여 눈에 보이는 사실을 잘 찾아 기록한다. 평소에 자신이 자주 먹는 음료의 형태지만 한 번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컵의 변화를 관찰한 적은 없지 않았을까?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을 때 단 한 명의 아이도 20분 동안 관찰한 경험은 없다고 했다. 다만 어느 순간에 컵에서 흘러내린 물이 흥건하게 젖어있어 노트가 젖었던 경험이라든지 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고 컵홀더를 사용했었던 것 정도를 기억할 뿐이었다.
현상을 자세히 보고 관찰한 것을 찾는 활동의 경우 아이들은 좀 더 쉽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오감으로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발견한 사실을 모둠원들과 이야기하면서 기록할 수 있기에 큰 어려움이 없이 관찰되는 것 같다. 지난해 물질의 상태변화 단원에서 제안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제안 수업을 본 선생님 한 분이 수업 후 협의회 때 이렇게 말문을 여셨던 것이 생각난다.
“사실 얼음이랑 드라이아이스 두 조각 가지고 뭘 하려고 저러나? 1차시 수업이 되긴 하려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아주 사소한 것까지 찾아내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학급에서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도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이 관찰한 것을 친구들에게 말하고 활동지에 기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 말끝에
“머리를 쓰는 것이 아니라서 어려움이 있는 애들도 모두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하셨다. 하지만 난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배움이 느린 아이들이 머리를 쓰지 않는 과제여서 쉽게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관심과 관찰의 중요한 요소를 아이들은 모두 갖고 있기에 가능한 시간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관찰이라는 건 단순 작업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이들이 관찰한 많은 사실을 물질의 상태변화인 것과 아닌 것으로 분류해 보면 그 속에서 또 다른 확장 질문이 나오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 얼음이 녹으면서 왜 벽 쪽으로 이동할까?
· 얼음이 물에 뜨는 이유는 뭘까?
· 얼음에서 기포가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 집에서 얼린 얼음과 편의점 얼음의 차이점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 얼음이 녹아도 왜 물 높이는 변하지 않는 걸까?
· 종이가 젖으면서 번지는 이유는 뭘까?
· A4 종이와 갱지에서 물이 번지는 속도가 다른 이유가 뭘까?
· 물방울이 맺히다가 아래로 흘러내리는 이유는 뭘까?
· 물질마다 표면에 맺히는 물방울의 모양은 같을까?
· 유리컵과 플라스틱 컵의 녹는 속도는 같을까?
자연스럽게 다음 과제는 ‘우리가 여름이나 겨울에 사용하는 컵홀더의 역할은 무엇인가? 홀더의 모양이 다양한 이유는 무엇일까? 컵홀더를 디자인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컵홀더를 꼭 사용해야만 하는가?’ 등등으로 삶과 연계하는 과제를 제시할 수 있다. 아래의 사진은 한 학생이 질문하여 찍게 된 사진이다. 물질의 상태변화 수업 후 아이들에게 보이는 ‘관찰’의 의미가 이런 게 아닐까? 생각되어 뿌듯한 순간이었다.
“선생님 그런데요. 주전자에서 물이 맺히는 거랑 컵에서 물이 맺히는 모습이 달라요. 주전자 표면에서는 동글동글 맺히거든요. 그런데 컵에서는 처음엔 동그래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동그랗다기보다는 모양이 퍼진다고 할까? 아무튼요. 좀 다른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그래서 시간이 될 때마다 다양한 표면에 맺히는 응결 사진을 찍어보기로 했고, 같은 플라스틱이라고 생각했던 컵도 모두 다른 모양으로 물방울이 맺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플라스틱 표면에서 다른 액체를 떨어뜨렸을 때 그 모양이 또 달라진다는 것도 실험을 통해 확인하게 되면서, 응결 모양이 다른 이유를 응결이 되는 물체의 재질과 표면의 매끄러운 정도 등등으로 좁혀가면서 더 과학적인 이유를 찾아보려고 애썼다. 아이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과학용어인 응집력과 부착력, 표면장력으로 설명된 자료였지만 되도록 쉽게 이해해 보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궁금점을 갖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관찰’에서 깊어지는 배움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 같다.
화가
윤희상
화가는
바람을 그리기 위해
바람을 그리지 않고
바람에 뒤척거리는 수선화를 그렸다
바람에는 붓도 닿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어떤 사람들은
그곳에서 바람은 보지 않고
수선화만 보고 갔다
화가가 나서
탓할 일이 아니었다
-「소를 웃긴 꽃」 (문학동네, 2007)
김태현 선생님의 『교사, 수업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책에서 알게 된 윤희상 시인의 ‘바람’이란 시이다. ‘비평적으로 수업 바라보기’라는 부분에 들어있던 시 한 편이었는데 너무 가슴에 와닿았다. 그 이후 나의 수업에서의 바람과 수선화는 무엇이며 과연 바람을 잘 넣어서 수선화를 그리고 있나? 아이들은 그런 나의 바람을 잘 읽고 있나? 수선화만 보고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수업 성찰의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아이들의 삶에 ‘관찰’을 통해 배움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경험을 수선화를 통해 바람을 그렸던 화가처럼 수업에 넣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나 또한 끊임없이 ‘관찰’에 의미를 더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 한다.
들어가는 글_2022 새넷 여름호
1. 시론
2. 포럼 & 이슈
3. 특집
4. 전국넷
5. 수업 나누기 & 정보 더하기
6. 티처뷰
7. 이 책 한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