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헌 Aug 15. 2016

어느 개의 죽음(장 그르니에) 2

⑩ 타이오와의 이별

(1편 이어서)


장 그르니에의 회고록에는 한두 장 분량의 글 90편이 실려 있다. 글에는 반려견 타이오의 털이 무슨 색이고, 어떤 간식을 좋아했고, 몇 해를 살았는지에 대한 언급 한 번 없지만, 그르니에가 유기견을 데려다 키우게 된 과정, 녀석과 기차 한 켠에 쭈그려 앉아 여행하던 추억, 노견 간병에 대한 소견이 적혀있다. 이 글은 먼저 간 벗에 대한 조문이자 여행기다.


벤이 떠난 지 1년이 되는 올해 11월이 되면, 그르니에가 타이오에게 그랬던 것처럼 묶음집 한 권을 낼 계획이다.


170쪽 분량의 '어느 개의 죽음' 본문 중 일부를 옮겨 봤다.


14

개의 눈빛이 우리와 마찬가지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누가 감히 고집할 것인가? 마찬가지의 감정? 오히려 우리가 개만큼 느끼지 못한다. 얽히고 설킨 감정 때문에 우리는 개가 느끼는 것과 같은 절대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33

만약 진료를 제때에 받았다면 녀석을 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만일 그 여행에서 목적지를 향해 좀더 서둘렀다면 녀석의 고통을 덜어주지 않았을까? 왜 생 마르탱 드 카스티옹에서는 기나긴 두 시간 동안 녀석을 차 안에 내버려두었을까? 그냥 지나쳤어도 될 그곳에서 녀석은 파리를 쫓기 위해 내내 서 있어야 했는데 말이다.


46

짐승들이란 얼마나 자유로운가! 마음 내키는 대로 할 뿐 일이라곤 없으니 말이다.


고쳐 말해야겠다. 짐승들은 애정에 길들여지지 않는 한 자유롭다. 주인과 집을 사랑하는 개들이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고양이들은 자유롭다. 충직함과는 거리가 멀기에 놈들은 그 보상으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인간과 짐승들이 영위하는 삶의 두 방식 사이에 놓여, 죽음 뒤의 천국에 대한 믿음도 없이 지상에서의 천국마저 누리지 못할 위기에 처한 개들은 참으로 불쌍한 동물들이다!


63

아침, 층계를 올라오는 녀석의 발소리를 들을 수 없음에 허전함을 느낀다. 녀석은 허락도 받지 않고 침대 위로 뛰어오르곤 했는데…


낮에는 그렇게 과감하지 못했다. 방 안 양탄자 위에 누워, 새털 이불 위로 올라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눈빛으로 간청하고 했다.


87

이 개들 묘지의 묘비명에는 충직했다, 후덕했다, 헌신적이었다, 주인이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등의 칭송이 난무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곳에 묻히지 않는다. 개들의 소멸성이 인간의 불멸성을 손상시킬까 저어해서인가? 행로가 다른 두 운명의 구분을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해서? 그런 조건 하에서만 불멸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가?


장 그르니에(1898~1971)




벤과의 5600일 - 프롤로그

이야기를 시작하며


벤과의 5600일① 대낮의 실종

8월 땡볕, 가출, 도깨비풀


벤과의 5600일② 녀석의 간식들

천하장사 소시지


벤과의 5600일③ 벤과의 러닝

형, 이것밖에 못 뛰어?


벤과의 5600일④ 털 손질

탈모여도 괜찮아


벤과의 5600일⑤ 오줌 소탕작전

쉬, 가죽소파, 베이킹소다


벤과의 5600일⑥ 사진 수집을 게을리한 개 주인의 푸념

6월 강릉


벤과의 5600일⑦ 벤의 소리들

까닭 없이 짖는 개는 없다


벤과의 5600일⑧ 개와 목줄

목줄에 얽힌 장면 세 가지


벤과의 5600일⑨ 타이오와의 만남

어느 개의 죽음(장 그르니에) 1


매거진의 이전글 목줄에 얽힌 장면 세 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