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타이오와의 만남
프랑스의 소도시 시스트롱을 여행 중이던 작가 장 그르니에는 자신을 따라다니던 떠돌이 개를 주워 기르게 된다. 나중에 타이오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 녀석은 짓궂은 아이들이 던진 돌에 맞아 두 눈 사이를 다쳤고, 그르니에 부부는 이 상처를 보고 녀석을 데려다 키우기로 마음 먹는다. 타이오를 기르기로 한 뒤에도 내버릴 수 있었지만 녀석으로 인한 불편함들마저 녀석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북돋웠다는 게 그르니에의 고백이다.
작가는 타이오와의 만남을 회상하며 이렇게 적는다.
'우리가 한 마리의 개를 받아들여야만 했던, 녀석과 삶을 함께하기를 원했던 순간은 그렇게 찾아왔다. 그것은 마치 결혼은 결코 않겠다던 남자가 처음 만난 여자와 느닷없이 결혼하기로 결정을 내리는 것과 같았다.'
타이오는 수년 후 그르니에 부부의 곁을 떠난다. 작가는 1955년 5월부터 두 달간 녀석과의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글을 쓴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어느 개의 죽음'이다. 그르니에는 생전에 녀석과 같이 여행을 가고, 주인의 입 주위를 핥던 녀석을 떠올리고, 떠난 타이오의 빈 방을 정리하고, 아침 이른 시간 층계를 올라오는 녀석의 발소리를 들을 수 없음에 허전함을 느끼고, 개의 묘비명을 적은 기억을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르니에의 글은 반려견에 대한 회상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과 짐승이 영위하는 삶, 개를 하등한 존재로 여기는 편견에 대한 혐오 등 그는 자신의 철학을 담담하게 적는다. 책은 얇지만 그 여운은 길다.
2015년 여름 친구의 책장에 꽂혀 있던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곤 나는 '벤과의 5600일'의 초고가 될 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개 나이 15살에 적기 시작했으니, 많이 늦었다. 벤은 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우리 곁을 떠났다. 그르니에의 타이오가 말년에 주사를 맞고 조용히 떠났다면 벤은 너무나 갑자기, 사고로 생을 달리했다.
그르니에는 개의 죽음을 두고 이렇게 썼다.
'한 존재가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그 존재에 온갖 장점들을 갖다붙인다. 그런 값싼 대가를 치름으로써 그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위선은 구역질이 나지만 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의 위선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나 또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나도 위선자다. 다만 벤과의 5600일 프롤로그에도 적었지만, 나의 복기는 그저 벤과의 기억을 온전히 떠올리기 위한 노력에 불과하다.
(2편 이어서)
벤과의 5600일 - 프롤로그
벤과의 5600일① 대낮의 실종
벤과의 5600일② 녀석의 간식들
벤과의 5600일③ 벤과의 러닝
벤과의 5600일④ 털 손질
벤과의 5600일⑤ 오줌 소탕작전
벤과의 5600일⑥ 사진 수집을 게을리한 개 주인의 푸념
벤과의 5600일⑦ 벤의 소리들
벤과의 5600일⑧ 개와 목줄
벤과의 5600일⑨ 타이오와의 만남
벤과의 5600일⑩ 타이오와의 이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