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면 알려나? 아니, 내 마음 좀 알아줘
士내女내 #6_넌, 이런 내 맘 알까?
종점, 즉 끝나는 순간이 언제일지를 알고
기다리는 것과 그것을 모르는 채
마냥 기다리는 것.
후자가 주는 고독함과 초조함.
느껴본 사람은 알 거다.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고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동안
점점 가벼워지는 두 다리,
희미해져 가는 천국행 티켓,
커져만가는 시계의 분침소리.
또각 또각 또각.
드디어 들리는 하이힐 소리.
날카로운 구두굽 소리가
유난히 반갑게 느껴진다.
이때다, 놓치기 싫은 그녀를 잡고자 무작정 뛰었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는 못 만날 인연인 것처럼.
"유미 씨, 이제 집에 가세요? 오늘은 일이 많았나 봐요?"
다행이다!
그녀가 자리를 박차 일어남과 동시에 따라 일어섰다면
혹여나 우연으로 가장하지 못했을 필연.
일부러 한 템포 쉬었다가 뛰어서 잡으려 했던 것이
"아 네, 오늘따라 일이 좀 많이 밀렸네요. 규민 씨도 일 많았어요?"
대사는 형식적인데 감정은 따뜻했다.
눈을 마주치며 건네는 환한 미소,
급하지도 겉치레도 아닌 진심 어린 말투.
예상 가능한 답변 속에 섞여오는 따뜻한 비언어적 표현들.
내 자신감은 한층 더 상승했다.
"오늘따라 일이 정말 많았네요. 퇴근시간 겹친 것도 우연인데
저번처럼 집에 같이 갈래요?"
무엇이든 밝고 환하게 받아주는 여자.
그런 반응에 자신감이 솟구치는 남자.
이보다 더 초록빛 신호가 있을까?
보행 신호가 확실하면 나,
남자는 멈추지 않고 간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면 안색이 피곤해 보일 만도 한데,
하루 종일 그대 로시네요. 이쁘세요."
하아 참, 콩깍지가 씌어버렸나.
한유미 이 여자,
수줍게 웃어도 대놓고 웃어도
웃는 모습이 너무나도 이쁘다.
자꾸만 웃게 해주고 싶다.
무엇보다도, 그 누가 아닌 나로인해.
이윽고 난 옆모습이 이쁜 그녀 옆자리에 앉아
당당하게 한마디 건네었다.
"유미 씨,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요? 저랑 같이 밥 먹을래요?"
초록빛 보행 신호에 무작정 질주하던 나.
저질러버린 질문 뒤, 답을 듣기까지의 시간은
저엉말 길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치 제일 궁금한 순간을 앞두고 끝나버린 드라마처럼,
예고편도 없이 애타게 속편을 기다려야 하는 애청자처럼.
"음..."
'음... 이라니!? 지금까지 분위기 좋았는데 설마 거절하겠다는 건가?
바로 좋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 제발 여기까지 잘 왔잖아!'
"네 좋아요! 이번 토요일에 봐요."
'오예에~!'
노란색 신호에 두근 반 세근 반 하던 내 심장이
이제는 좋아서 요동친다.
물론,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다.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완전무장한 총사령관의 심정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성공적인 첫 데이트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제 겨우 하나 완성된 육하원칙의 첫번째.
나머지를 잘 채워나가기 위해선
경험 많은 선배 지식인들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다시 찾아왔다.
이규민 님이 ㅇㅇㅇ님, ㅁㅁㅁ님, ㅎㅎㅎ님을 초대했습니다.
ㅈㅈㅈ님, ㅂㅂㅂ도 초대했습니다.
ㅊㅊㅊ님 마저 초대했습니다.
콩깍지에 씌인 이규민 총사령관님이 여자 때문에
지 친구 6명을 초대해 똑방을 만들었습니다.
"나 이번 주 토요일 데이트한다.
이 분이랑은 첫 데이트인데 몇 시쯤 보는 게 좋을까?
첫 데이트면 뭐 먹으면 좋으려나?"
염장맛나는 질문에 질투 섞인 화살들이 빗발친다.
"연애고자도 아닌 놈이 무슨 이런 걸 물어봐?"
"솔로몬에게 솔로몬다운 답을 원하는 게냐? 이런 시몬..."
하지만 이내 곧 잠잠해지는 화살들.
"그런데 많이 이쁘냐? 사진 고고"
"오~ 몇 살 차이야?"
'이것들이 여자외모만 궁금하냐.
이분과 나는 마음이 통했다고...'
결국 이날의 최고 중 최고.
우문현답이 날아들어 내 귀에 박혔다.
"시간이든 장소든 음식이든,
서로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좋은 옵션들 던져주고 같이 골라보길."
그래, 누가 정해준 길에 책임도 남에게 돌리기보단,
결국 내가 책임지고 걸어서 잘돼도 내 탓하는 게 낫겠지.
그래도 몇몇 맛집들에 대한 꿀팁 정보들은
정말로 고맙다 친구들아.
회사에서도 그랬지만 오늘도 거울 속 나는 단정하게 가자.
타이까지는 안 하지만 그에게 가벼워 보이지는 않게
적당한 무게감과 신뢰감을 주는 셔츠와 면바지.
구두까지 신기엔 너무 출근복장 같으니
아래는 괜찮은 운동화로 맞춘다.
"유미 씨, 혹시 5시에 보는 거 괜찮아요?
장소는 강남역 어떠세요?"
좋아하는 음식 있으세요? 혹시 파스타 좋아하세요?"
나 참, 입사 면접 보러 갈 때에도 긴장하지 않았던 내가 정말 떨린다.
문장 하나하나, 미사여구 하나 없는 의문문인데
단어 하나하나가 너무 조심스럽다.
분명히 그동안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이인데도 말이다.
약속시간보다 늦지 않게 15분 먼저 미리 도착했다.
혹시 그녀가 미리 도착해있을지도 모르기에
식당 입구 유리문에 비치는 날 보며 머리를 한번 더 만진다.
후우우, 크게 심호흡을 하고 들어서자마자 예약석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그녀.
화장실에 들러 좀 더 깨끗한 거울에 비춰볼 귀중한 시간을 얻었다.
내 머리, 얼굴, 옷 등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자리로 돌아와 테이블 주변 분위기와 다른 자리들을 살피며
어떤 자리에 그녀를 앉힐지 고민한다.
아무래도 내 기준에 잘생긴 저 남자가 보이지 않을 이 자리에 앉혀야겠다.
내 욕심인 것 같지만,
저기 뛰는 내 심장을 조금 진정시켜줄 그녀가 오고 있다.
본 에피소드는 한창 연재를 진행 중인 로맨스 소설 '士내女내'의 여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아래는 이전 에피소드 목록이며, 전편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은 차례대로 읽어보면 재밌을 듯싶습니다.
1편 - #1_'쿨하다'는 것
2편 - #2_'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럼
3편 - #3_오작동! 내 이성적 사고회로
4편 - #4_그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5편 - #5_설레임,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6편 - #6_넌, 이런 내 맘 알까?
7편 - #7_너라는 우주에 첫걸음
8편 - #8_시나브로 길들여지기
9편 - #9_보통남자? 보통이 아닌 듯
10편 - #10_보통여자? 내게는 다른 걸
11편 - #11_이 밤의 끝자락
12편 - #12_갈피와 타이밍
13편 - #13_참 묘한 '첫 통화'
- 퍼피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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