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2033년 11월 12일 토요일.
장유호의 기록을 각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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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우 (35살, 1999년생)
9월 19일 퇴사
지수아 (26살, 2008년생)
10월 25일 퇴사
박준서 (30살, 2004년생)
11월 3일 퇴사
권유진 (26살, 2008년생)
11월 10일 퇴사
장민혁 (30살, 2004년생)
퇴사 여부 확인 안 됨
신규민 (33살, 2001년생)
10월 12일 퇴사 …. 그리고 사망 처리.
내가 회사에 입사하고 알아낸 케이스만 해도 6건이었다. 모두 갑자기 퇴사를 했고, 짐 정리도 못한 체 사라졌다. 퇴사야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사라지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가은이 말한 유진의 케이스도 특이했다. 퇴사를 했는데 다음 날, 몸이 아파서 결근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라…. 가은의 말처럼 상황이 이해가지 않았다. 그리고 신규민…. 사망 처리. 퇴사와 사망, 그리고 처리. 3개의 단어가 모두 이어지지 않았다. 대체 회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
“이명훈. 관리팀에 계신 분인데 이 분도 얼마 전에 퇴사하셨데요.”
가은이 커피를 가져오며 말했다. 우리는 카페에서 어제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퇴사 후 사라지는 사건에 대해 내가 이야기하자 가은은 흥미를 보였다. 가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좋다는 남자와 자신이 가장 아끼는 동료가 사라졌으니….
“7건이면 정말 케이스가 많네요.”
“그것도 모두 9월 이후에 생긴 건이라는 것도 신기하네요. 물론 우리 회사에 퇴사자야 매달 있었지만 이렇게 사라지면서 퇴사를 한 경우는 그동안 없었어요.”
“그러게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소문…. 그게 사실일까요?”
“소문이라뇨?”
가은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회사에서 연구하는 것 관련해서 임상실험을 시작했다는 소문이요. 아직 임상 단계는 아닌데 대표가 무리해서 추진했다고 하더라고요.”
“임상실험….”
“그리고 이건 정말 비밀인데…몇 달 전에 연구원 중에 돌아가신 분이 있었어요. 지병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실험 중에 그랬다는 소문도 있죠.”
“그런 소문은 다 어디서 듣는 거예요?”
“안내데스크에 있으면 별소리를 다 들어요. 민혁 님처럼 꼬시려는 사람도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상한 발언을 하는 사람도 있고 괜히 근처에 와서 이것저것 소문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회사에는 별 사람들이 다 있죠. 친절하신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안 그런 부류도 생각보다 많아요.”
가은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어딘가 지쳐 보이는 인상이었다.
“들어가서 쉬세요. 오늘은 주말이잖아요. 어디 안 가세요?”
“그러는 진우 님은요? 반지도 있던데 여자 친구 안 보러 가세요?”
여자 친구는 지난주에 마지막으로 본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았다. SNS에는 사진이 올라오는 걸 봐서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의도적으로 그녀는 내 연락을 무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슬픈 예감이 들었다.
“취준생이라서요. 많이 바쁜가 봐요.”
“여자 친구분이랑 자주 연락하고 주말마다 보고 그러세요. 여기 와서 안 좋게 끝나는 부류 많이 봤어요. 사실 저도 그랬고….”
가은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 그렇군요. 좋으신 분 만나실 거예요.”
“별로 정은 안 갔는데 민혁 님이라는 분도 있었죠. 갑자기 퇴사를 했다지만….”
“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너무 어색했다. 가은과는 지난주에 처음 만났고 어제 어떻게 하다 보니 이야기를 나눈 상대였다. 그녀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취미는 어떤 거세요?”
“풉…. 저희 갑자기 소개팅인가요?”
“아…. 아니요. 그냥 스몰토크예요. 스몰토크. 이런 우울한 이야기만 할 수는 없으니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면서 울컥했다.
“농담이에요. 여자 친구도 있으신 분이 무슨. 저요? 회사 오기 전에는 클라이밍 했어요.”
“클라이밍이요?”
전혀 의외의 취미였다.
“이래 봐도 꽤나 근육이 탄탄하답니다. 진우 님은 취미가 어떤 거세요?”
“저는 여름에 서핑을 즐겨하곤 해요. 겨울에는 스키나 이런 거 하고요.”
“둘 다 운동을 좋아하네요. 회사 헬스장 가보셨어요? 좀 구려요.”
“아 진짜요? 여기 근데 복지가 많다고는 하는데 좀 하나같이 어설프긴 하더라고요. 저희 방 창문 안 열려요. 전동식이라 뭔가 했는데 고장 났어요.”
“와 대박. 저희 방도 그래요. 여름에 에어컨 바람은 그렇고 선풍기도 별로고 할 때는 창문 열고 싶잖아요? 창문은 열고 싶은데 문은 안 열려서 난감했어요.”
“그래서 그냥 에어컨 틀었어요?”
“저희요? 아니요? 그냥 방 문 열고 지냈어요.”
“그러다가 누가 방 들여보면 어떡해요?”
“무슨 상관이에요. 저희 여자 기숙사인데.”
“아 맞다. 그렇지. 나 바보네.”
“풉… 진우 님. 진짜 바보 같을 때 있어요.”
아니,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봤다고.. 가은은 뭐가 재밌는지 한참 동안 웃었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지켜봤다. 며칠 동안 마음이 이상했는데 그녀랑 이야기하니 무언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미안해요. 진우 님. 요새 좀 우울한 상태였는데…. 오랜만에 진우 님 덕분에 웃었네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
그녀에게 더 말을 하려고 할 때 전화가 울렸다. 소은이의 전화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소은아? ”
“응…”
“어… 전화했잖아? 무슨 일 있어?”
“오빠가 전화했잖아. 무슨 일 있어?”
내가 소은이에게 전화를 한 것은 이번 주 내 내였다. 우리는 연인이다. 연인이 전화를 하는데 이유가 있을까?
“어…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나 바쁘잖아….”
“아… 그래. 그냥 메시지만 보낼걸 그랬나?”
“그냥 주말에만 연락하자 우리.”
그녀의 반응은 지난 주보다 더 차가워졌다. 그녀의 반응에 수없이 많은 헤어짐이 떠올랐다. 모두 같았던 결말. 그 결말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어… 나 남자 친구잖아. 너 바쁜 건 아는데. 나도 취준 할 때 너랑 연락 많이 하고 많이 만났어. 그런데….”
“그래서?”
그녀의 대답을 듣자 말문이 막혔다.
“….”
“오빠 회사는 다닐 만 해?”
“…어….”
“그래. 혹시 인사팀에 물어봐준다는 거는….”
“아! 그거는 미안. 나도 아직은 눈치가 보인다. 내가 다음 주에….”
“아냐. 미안해. 내가 괜한 말을 했다.”
“아냐. 내가 미안해.”
“뭐가 미안해. 그래. 이제 목소리 들었으니 됐지? 나 끊을게.”
“어… 소은아 잘 지….”
그녀는 내 대답을 다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예전 같으면 그녀에게 따졌겠지만 이젠 그럴 힘이 없었다. 하늘을 봤다. 너무나 맑은 날이었다. 그녀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다시 카페로 들어갔다. 가은은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뇨. 진우 님이야말로 여자 친구 같던데 잘 통화했어요? 으…. 아닌가? 표정 보니 내가 괜한 걸 물었나?”
가은은 눈치가 빠른 사람 같았다.
“아니에요. 괜찮… 은 것 같아요.”
“음…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잘 해결해봐요. 이렇게 주말에 회사에만 있지 말고 내일이라도 여자 친구 보러 가요.”
“제…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나도 모르게 가은에게 힘을 주어서 말을 해버렸다. 그녀는 잠시 내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아 미안해요.”
그녀에게 사과했다.
“흠… 미안하면 내 이야기 좀 들어줄래요?”
“뭔데요?”
“퇴사자들이 어디로 간 것일까요?”
“뭐…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집에 가셨겠죠?”
“유진 님은 오늘까지도 연락이 안 되고 있어요. 하루 정도는 모르겠는데 이틀이나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사라졌을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토요일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고.”
“그.. 렇죠. 신규민이라는 사람도 그래요. 사망이라면….”
“가족들이 찾아왔겠죠. 회사에서 죽은 거라면.”
“가족이라….”
“우리 한번 제대로 조사해보는 건 어때요?”
가은이 내게 더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면서 말했다.
“네? 같이요?”
“뭐야… 같이 조사하고 싶어서 어제 절 꼬신 거 아니에요?”
가은이 다시 의자에 기대면서 말했다.
“꼬시다뇨. 유진 님 이야기가 내가 지금 찾고 있는 것이랑 비슷해서 물어본 거죠. 아니다. 가은 님 너무 몰입했다. 이건 저 혼자 조사….”
“제가 회사에 더 오래 있었죠? 회사를 알아도 제가 알아요. 안내데스크에 있으면 별 사람들을 다 본다니까요? 제가 한 번 조사해볼게요. 어때요? 매일 퇴근하고 이 카페에 만나서 서로 조사한 것을 이야기해봐요.”
가은은 의욕이 넘쳐 보였다.
“거기서 뭘 조사한다는 거예요. 그냥 제가…”
“저는 조사할 거예요. 저는 소중한 사람과 소중할 수도 있던 사람이 사라졌어요. 이건 정말 퇴사여야 해요. 만약 퇴사가 아니라면….”
나는 가은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표정은 슬퍼 보였다.
“알았어요. 그러면 매일 퇴근 후에 여기서 봐요. 매일은 아닐 수도 있지만…”
“좋아요! 이 모임 이름을 뭐라고 할까요?”
“모임이요? 이게 무슨 모임….”
“여기 흥미 있어할 만한 사람이 또 있을 것 같아서요.”
“아니, 저기 가은 님… 이건 장난이….”
“퇴사자 모임! 어때요? 아 퇴사자를 찾는 모임인가?”
“되게… 오해하기 좋은 이름이네요.”
“제가 멋진 이름은 정하지는 못해서요. 일단 진우 님도 좋은 아이디어 없으면 이걸로 할게요!”
“아…네….”
가은의 의욕을 막을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 월요일 저녁 7시에 여기서 만나요. 야근하시면 미리 말씀 주시고요. 저는 오늘부터 유진 님에 대해서 조사해볼게요.”
“저는 저의 룸메이트가 되었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그럼 저 먼저 일어날게요.”
가은은 남은 커피를 쭉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나에게 손을 흔들며 카페 문을 열고 사라졌다.
하아… 뭔가 일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가은도 버거운데 또 누구를 데려온다는 걸까.
입사, 회사, 퇴사 사건, 소은이와의 소원한 관계, 그리고 최가은, 이상한 모임… 이번 달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가 생기는 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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