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정진우의 하루

어떤 증언

by 우주 작가

2033년 11월 16일 수요일.

정진우의 기록을 각색.



아침부터 아영의 눈치가 보여서 죽을 것 같았다. 아영이 이번 일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우리 클럽에 와달라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아영과 선준이 예전에 만나던 사이였다니…. 그리고 그걸 대놓고 말하는 선준도 놀라웠다. 아영 님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고 얼마 안 있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선준은 그런 아영을 잠시 바라볼 뿐이었다. 그에게는 이제 유진이 더 중요했다.

아영은 오늘 아주 일찍 출근한 것 같았다. 내 인사도 무시한 체 그녀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 옆자리였는데 나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조용히 의자에 앉았고 숨 쉬는 소리조차 내지 않으려고 했다.


‘띠링’


침묵을 깬 것은 누군가의 메시지였다. 내가 알림 소리를 끄는 것을 깜빡한 탓이었다. 나는 괜히 아영을 향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아영은 상관하지 않고 있었다.


[진우 님! 오늘 아영 님 어때요?]


눈치 없는 가은의 메시지였다. 그걸 몰라서 물어봅니까?


[그냥 절 완전히 무시하고 있어요.]


[아영 님은 이제 못 나오겠죠? 선준 님 때문에?]


가은은 하나마나한 말만 하고 있었다. 나는 미칠 것 같았다.


“진우 님.”


아이 깜짝이야!! 아영이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아…. 진짜 놀랐어요. 아영 님.”


“그 퇴사하고 싶어 하는 모임 있잖아요.”


“어… 퇴사를 하고 싶어 하는 모임은 아니고요. 퇴사자를 찾는 모임….”


“오빠… 아니 선준 님은 왜 거기 있는 거예요?”


“어…. 그게……”


아영에게 유진의 이야기를 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되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미 헤어진 연인인데 말 못 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 유진 님이라고 가은 님 동료 분을…. 선준 님이 좋아했어요. 그런데….”


“유진 님도 없어졌다. 그 이야기겠죠? 그래서 선준 오빠는 그 사람을 찾기 위해서 여기 온 거고? 가은 님이 부른 이유가 있었군요.”


“네. 그렇습니다.”


“흠…. 진우 님이 나를 부른 이유는 내가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아서겠고. 그런 거죠?”


“아…네….”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겠지…. 휴우…. 오늘도 모여요?”


“아?? 네....”


“할 줄 아는 말이 그거밖에 없어요? 아…. 네…. 앗…. 됐고 오늘 모임 때 갈게요.”


“네?? 아.... 아니....”


“저기 팀장님 오신다. 그러면 이따 다시 이야기해요.”


“좋은 아침입니다. 둘이 벌써 친해졌어요?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있었어.”


팀장이 등장했다. 아영은 자신의 컴퓨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탕비실로 가서 팀장님께 드릴 커피를 타기로 했다. 그렇게 내 하루가 시작되었다.


.

.

.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는 하루가 또 끝났다. 나는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카페로 가려고 했다.


“진우 님!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요?”


건우였다.


“진우 님. 우리 술이나 한 잔 하죠? 어때요?”


술 약속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아니, 당분간은 아니었다.


“저…죄송하지만… 오늘은….”


“오늘은 저랑 데이트하기로 했어요. 건우 님. 미안하지만 다음에 술 마시죠.”


아영이 갑자기 끼어들면서 말했다. 아니, 그보다 데이트라니? 이게 무슨….


“뭐야? 언제부터 둘이 그런 사이가 된 거예요? 아영 님이?”


건우가 흥분해서 말했다.


“신경 끄세요.”


아영은 시크할 때가 있었다.


“에이… 또 나 놀리는 거구나? 뭘 또 혼낼 일이 있나 봐요?”


“갈게요.”


아영은 쿨하게 건우를 무시하고 나를 데리고 회사 근처 카페로 갔다. 이렇게 말해도 정말 괜찮은 건가? 이 부서 사람들은 대체 뭐야?


“안녕하세요! 아영 님! 오늘 나오셨네요.”


가은과 선준은 먼저 와있었다. 선준은 아영을 보고 다시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표정이었다.


“오랜만이야.”


“그러던지.”


둘이 말하는 것을 보는데 내가 다 긴장이 되었다.


“오빠는 그 유진이라는 사람 찾으려고 하는 거고, 가은 님도 유진 님 찾으려는 거죠?”


“네. 맞아요. 뭐 저 좋다는 남자도 있었고. ”


“그러면 진우 님은 누구를 찾으려는 거예요? 아직 회사에 아는 사람도 없을 텐데… 여기에 있는 게 전부 아니에요?”


“저… 저는 만나지도 못한 룸메이트들이 있어요. 제 방에 배정받았던 사람들. 그중 두 명이 갑자기 퇴사를 했어요. 아영 님이었어도 이게 궁금하지 않겠어요?”


“그래요. 다들 동기가 충분하네요. 나만 빼고요. 그럼 각자 생각하는 이번 일에 대한 가설이 있어요?”


아영이 우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민아영. 우리 나름 간절하게 하고 있어. 꼭 그렇게 어디서 내려보는 듯한 자세로 이야기를 해야겠어?”


선준이 아영의 행동을 꼬집으며 말했다.


“난 도와주려고 하는 거야.”


민망한 상황이었다. 둘 다 이성이라고는 없는 상태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다가 가은과 눈이 마주쳤다. 가은 역시 난처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어… 저는… 제 생각을 먼저 말할게요.”


가은이 먼저 말을 꺼내기로 했다.


“얼마 전에… 아니지 월요일 지수아라고 하는 분의 어머님이 찾아오셨어요. 자식이 퇴사했는데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경찰이 수사를 하고 있지만 제대로 하지 않으려고 하는 듯했다는 것이죠. 회사에 경찰이나 다른 사람들이 온 적은 없었어요. 사람이 실종되었는데 아무도 회사를 의심하지 않은 거죠.”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아영이 물었다.


“회사의 인사팀에서 수아 님의 어머님을 데려갔어요. 충분히 설명한다고 하면서….”


“그럼 설명이 된 거 아닐까요?”


선준이 아영의 말에 반응했다.


“그런데 어머님이 인사팀으로 간 이후에 나오시는 걸 못 봤어요.”


“이야기가 아주 길어졌을 수도 있겠죠. 연구실 구역 쪽에도 출구는 있잖아요?”


아영이 말했다.


“그래서 가은 님의 가설은 뭔가요?”


“회사에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어요. 퇴사자들을 어딘가로 보낸 것 아닐까요?”


“보내요? 어디로요?”


“글쎄요. 아영 님이 뭔가를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아영 님이 이야기를 해주시는 게 어떨까요?”


“다음은 선준 오… 선준 님의 가설이요.”


아영은 가은의 말을 무시하고 선준에게 물었다.


“저는 모르겠네요. 아영 님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 이게 제 가설입니다.”


또 둘이 맞붙었다. 으….


“재밌네요. 진우 님은요? 아무래도 이번 사건에 대해 제일 궁금해하는 분 같은데.”


“회사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아주 멀리 도망치라고 하죠. 무언가 무서운 게 있다는 소리일 수도 있죠. 그런데 팀장님과 아영 님은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제 가설을 듣기 전에 아영 님이 먼저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대체 회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아영은 내 말을 듣더니 아주 오랫동안 내 얼굴만 쳐다봤다. 가은과 선준은 그런 아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잠깐. 나와서 다들 걸어요. 좀 추운 날씨니깐 다들 따뜻하게 하고 가요. 기숙사 가서 옷 챙겨 오실 분은 가져오셔도 괜찮아요.”


아무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옷을 챙겨 입고 아영이 무언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다들 괜찮은 거죠? 다들 따라와요.”


우리는 한참을 걸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행인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거리를 걷는 사람은 우리 네 명뿐이었다.


“언제까지 걸을 거야? 이제 이야기해줄 때 되지 않았어?”


“나도 잘 몰라.”


아영의 말은 그저 어이없었다. 그럼 왜 따라오라는 거야?


“금지구역. 저는 그곳을 봤어요.”


아영의 대답은 전혀 의외였다. 출입금지구역? 그곳을 말하는 건가?


“윤지혜. 회사에서 일하던 연구원이죠. 저랑 같은 학과를 나온 동기이기도 하고요. 가은 님. 아까 수아 님 어머님이 회사로 찾아왔다고 했죠? 사라졌는데도 의문을 재기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지혜는 죽었는데도 아무도 의문을 재기하지 않았어요.”


아영은 발걸음을 멈추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가 말을 시작하자 내 몸은 떨리기 시작했다. 너무 추운 날씨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말은 아주 무서운 이야기였다.


“연구를 하다가 죽었어요. 그런데 사인이 뭔지 아세요? 지병이래요. 지병.”


“그… 그럼… 소문으로 돌던 사람이….”


가은이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아마 지혜 이야기일 거예요. 연구원이 연구를 하다 죽었는데 지병이라고 하고 아무도 의문을 재기하지 않는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말이 안 된다 생각해서 저는 지혜의 죽음을 밝히기로 하고 친한 연구원의 도움으로 연구원들의 기숙사에 잠입했어요. 더 깊은 곳에 가고 싶었지만 단지 도움만으로는 힘들더라고요. 지혜의 방을 찾았어요. 그녀의 흔적은 완전히 지워져 있더라고요.”


내 방에서 퇴사자의 흔적을 지우던 한수가 갑자기 생각났다. 지혜라는 사람도 회사에서 흔적을 없앤 것이 분명했다. 아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우리를 쳐다봤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방에서 나가려고 하는데 침대 밑에 무언가가 보이더라고요. 지혜의 일기장이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종이 쪼가리로만 남아있는 지혜의 일기장이었어요. 저는 혹시나 싶어서 일기장을 확인했어요. 거기에는 이런 말만 적혀있었어요….’ 도망쳐’…. 다른 말은 아무것도 없이 그 말만 적혀있었어요.”


“도망이요?”


내가 물었다.


“그래요. 저는 방에서 나와 그곳을 빠져나가려 했어요. 그런데 불이 꺼진 복도 끝에서 이상한 비명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영화에서 보면 보통 그런 소리가 들리면 굳이 거기를 확인해서 죽잖아요? 저는 항상 그런 장면이 이해가 안 갔는데 정작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니 정말 궁금해지더라고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저는 조용히 소리가 들린 곳으로 갔어요. 아직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방에서 나는 소리였는데 이상하게 밖에 자물쇠가 있더라고요. 이상하다? 우리 보안 시설이면 이런 게 필요 없을 텐데? 저는 방 쪽으로 다가갔어요. 조금씩 조금씩 발을 내밀며 그곳으로 갔어요. 그리고 다 다가갔을 때…. 아주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렸어요. 그 무언가는 문을 부수려고 했죠. 문은 부서지지 않았지만 힘을 더 주면 부서지는 게 불가능한 것 같지가 않았어요. 그때, 저는 지혜의 메모가 생각났다. ‘도망쳐’. 저는 그때서야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누구도 나를 쫓지 않는데도 말이죠. 다시 반대편 복도에 다다르고 이제 다 괜찮다고 생각한 순간, 아까 봤던 문이 날아갔어요. 그리고 아주 끔찍한 몰골을 한 사람이 나를 쳐다봤어요.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냥 괴물? 귀신? 모르겠어요. 그는 엄청난 속도로 저에게 달려왔으니까요. 저는 도망쳤어요. 저는 앞도 뒤도 보지 않고 그저 뛰기만 했어요. 제 뒤로 괴물의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총소리가 들렸어요. 누군가 그 괴물을 사살한 것이었죠. 이제는 연구원 기숙사의 보안요원들이 나를 쫓았어요. 저는 계속 도망갔죠. 도망가고 도망가다가…. 팀장님을 만났어요.”


“팀장님? 아영 님 팀장님이요??”


“팀장님은 저에게 말했어요. ‘쉿…. 조용히 해요. 그냥 조용히 하고 도망치기만 하세요. 무언가를 알아내려고 하지 말고, 그저 도망쳐요.’ 저는 팀장님 덕분에 살아났어요. 그 이후 저에게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왜일까요? 그리고 팀장님은 저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묻지 않았어요. 그저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저에게 ‘도망가’라고만 했어요. 제가 도망치는 대상은 무엇일까요? 아마 제가 그날 봤던 무언가가 아닐까요? 며칠 후, 팀장님은 저에게 휴가를 가라고 했어요. 마침 친구들이 여행을 가자고 했던 때였고 저는 휴가를 갔어요. 그날의 기억은 휴가와 함께 잊었어요. 그렇게 며칠을 노니, 저에게는 그저 회사에 출근하기 싫은 평범한 직장인의 마음만 남았어요. 그렇게 잊으려고 했죠.”


“아영아….”


“제가 봤던 것과 진우 님, 가은 님, 그리고 선준 오빠가 찾으려는 진실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 회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겠죠. 저는 원래 여러분들이 이 사실에 대해서 조사하지 않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결국 난 다 말했네요.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가 봐요.”


우리는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퍼즐이 하나하나 맞춰지고 있었지만 그런 말도 할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오늘 일을 듣도고 계속 조사하고 싶으면 하세요.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제가 책임질 수 없어요. 저는 이 모임에 끼지 않을 거예요. 그럼 다들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영 님!!!!”


우리는 아영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영은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가은의 얼굴을 쳐다봤다. 가은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선준은 답답하다는 듯이 잘 차려입은 옷의 넥타이를 풀었다.


“아영이가 무슨 말을 했어도 저는 유진 님 찾을 겁니다. 겁먹었으면 다들 빠지세요. 아영이 말처럼 위험한 건 사실이니…. 일단 저는 기숙사로 가서 어떻게 할지 대처 방안을 생각해볼게요.”


선준도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가은과 나 둘만 남아있었다. 조그만 가로등 하나가 우리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내가 물었다.


“퇴사 클럽 벌써 문 닫을 거예요? 오늘 좀 충격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해체하지 않아요. 선준 님도 아직 나간 건 아니고요. 그럼…. 약간 제가 무서우니 기숙사까지 같이 갈까요?”


가은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 어이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웃음이라니…. 나 역시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나는 가은과 함께 걸었다. 어둠이 깊어져가고 있었다. 우리 둘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 하지만 이따금 불규칙적인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우리 뒤에서 들리는 소리 같기도 했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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