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이 아니었어
고개 숙인 벼 사이로 자란 바람풀,
아, 쓸모없다 생각했던 잡풀
피가 소중한 이유를 알았어
벼잎을 제치고 쑥쑥 뻗어나간 건
교만이 아니었나 봐
저 작은 줄기에 매달린 수많은 새떼가
그것을 보여주었어
참새떼가 몰려와 바람풀에 매달리자
들녘은 금세 잔칫집이 되었고
조잘대며 열매를 쪼아 먹는 소리,
그 풍요로운 수다는 길을 멈추게 했어
그때, 보고 싶지 않은 손님 한 마리
스르르 논두렁을 넘어 들어서자
참새떼는 순간 하늘로 흩어졌어
마치 잿가루가 흩어지듯
고요해진 들판
습지 쪽에서 하얀 두루미 한 마리
유유히 날아오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작가 노트
겉으로는 쓸모없어 보이는 것조차 자연의 질서 안에서는 제 역할을 지니고 있었다.
벼와 바람풀(피)이 보여준 공존의 풍경에서, 생명의 다름이 곧 풍요로움임을 깨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