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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백 자판기 Oct 24. 2022

이야기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14)

너와 나만의 세계, 세카이계

Day 20's Topic : Story Grammar

로맨스물과 세카이계


로맨스물에서의 이세계

  로맨스물에서의 가장 중요한 세계의 시작은 상대방으로부터 시작한다. 주인공이 운명의 상대 혹은 운명의 상대라 생각되는 이를 만나는 순간, 주인공의 세계가 뒤집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맨스물은 거시적인 세계보다는 미시적인 세계에 집중하고, 거시적인 사건들은 아무리 큰 사건이라 하더라도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로맨스물은 범세계적으로 사랑받는다. 누구나 경험해 볼 수 있고, 누구나 경험해 보았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세카이계

  로맨스물은 세계의 흐름보다 개인의 감정에 집중하는 서사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은 항상 어딘가 결핍되어 있거나,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그의 아픔에 마음 졸이게 되는 건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에 침몰하여 세상이 어떻게 흐르건 눈길조차 가지 않던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시기를 대표적으로 그려낸 장르가 <세카이계>다.

  <세카이계>는 일본에서부터 시작된 장르로 세상의 종말과 연관된 인간관계에 집중하는 이야기를 말한다. <세카이계>가 주요하게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세상의 종말과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만 택할 수 있다면, 누구를 택하겠습니까?

 이 질문은 생각보다 심오하다. 영웅 신화에서 당연하게 여겨왔던 영웅의 희생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가만 보면 히어로는 항상 세계에 희생되어줄 것을 강요받는다. 그 의지는 때로는 자발적이고, 때로는 강압적이다.

  <반지의 제왕>에서의 프로도가 반지 원정대에 합류하게 된 모습만 보아도 그렇다. 그는 평범하게 호빗 마을에서 살아가고 싶은 호빗이었다. 그러나 반지로 인해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집어졌고, 그는 자신이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원히 잃어버린 안식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영웅이라 칭했지만, 고향에 돌아온 그는 그 평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먼 길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세카이계는 영웅이 아닌 영웅을 사랑하는 히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 히로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세계의 운명을 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할 경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지 않으면 이 세계가 멸망한 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히로인은 묻는다.


그래서?



세상의 전부라는 정의

  세카이계의 포문을 연 대표적인 감독 중 하나는 <신카이 마코토>이다. 그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이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세카이계 장르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보다도 가장 최근에 나온 <날씨의 아이>가 세카이계의 모습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표현했다 생각한다.

  <날씨의 아이>는 세카이계란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호다카는 여주인공 히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이 사랑은 보통의 사랑이 아니다. 고아인 호다카에게 히나는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호다카는 이미 삶에 너무 지쳐있고, 어른들은 그런 그에게 무심하다. 그리고 여주인공 히나 역시 어른들의 무심한 관심 속에서 어떻게든 동생을 데리고 살아가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가고 있다. 이 세계에서 호다카와 히나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어른은 거의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어른들이 갑작스레 말한다. 세계를 구하려면, 세상이 홍수로 인해 멸망하지 않으려면 날씨의 아이 히나가 희생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게 히나의 운명이니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런 상황을 호다카는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호다카의 세계는, 히나이기 때문이다. 히나가 없으면 그의 세계는 사라진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어른들은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호다카의 세계를 희생하라 요구한다. 희생하지 않으면 이기적이라는 듯이. 그러자 호다카는 히나에게 말한다.

맑은 날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해도 상관없어.
스스로를 위해서 기대해, 히나.

  이 지점이 바로 세카이계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세상과, 사랑하는 사람 중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나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택할 것이라고.



무너진 세계

 앞서 로맨스물은 미시적인 세계라 칭했다. 로맨스물에서 다루고 있는 세계는 주인공, 개인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세계만을 비추고 있기 때문에 로맨스물은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 무너트릴 수 밖에 없던 작은 세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게 가능하다.

  <날씨의 아이>에서 무너진 세계는 사춘기 시절의 사랑이다. 이 사랑이 무너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성인들의 눈에 10대의 사랑은 우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나 10대 시절을 겪고, 그 좁은 세계가 그 시절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다. 그렇기에 그 시리도록 미성숙한 사랑이 성인이 되어 비극이 될 것을 알면서도 호다카의 사랑을 응원한다. 과거에 잃어버린 세계를 호다카는 아직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다루는 무너진 세계는 첫사랑이다. 이 사랑이 무너지는 이유도 단순하다. 처음이라 미성숙하고, 어리숙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 세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성숙해진 지금의 모습으로는 실패로 끝났던 엔딩을 성공으로 다시 변모시킬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알고 있다. 스칼렛의 모습이 바보같아 보이듯 과거의 첫사랑에 미련을 가진 자신의 모습도 바보가다는 걸.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고 한들, 이미 지나가버린 시절은 끝이 났고, 사실 그 시절이 그리 아름다운 시절도 아니었다는 것을 스칼렛을 통해 관객들은 깨닫는다.

  이렇듯 로맨스물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험해보았을 법한 세계들을 다루고, 그 세계의 종말을 다룬다. 영웅 서사처럼 거대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누구나 자신의 시절에 주인공이 었던 시절들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영웅 서사보다도 로맨스 물에 더 쉽게 공감하고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자신의 무너진 세계가 아직 작품엔 남아 있기 때문이다.






reference


series

이야기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1) : 조셉 캠벨과 융의 분석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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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7) : 이야기의 황금 비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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