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구례는 조용했다.
평일이라 그런 건지
얼마 전 지리산까지 번졌던 산불의 영향인지
지나가는 차들도.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화엄사 가는 톨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지는
벚꽃길도 그 화려함이 덜했다.
"벌써 피고 지는 건가..."
"아냐, 아직 덜 핀거야, 바닥에 떨어진 잎들이 없잖아"
"맞네 맞네"
작년 이 맘때와는 달리
설렘보다 초조함이 더 큰 이번 남도 여행길에
아내와 나는 같은 걸 느꼈을 것이다.
같은 봄이지만
다른 봄이라고
어제 나는 퇴사했다.
17년을 다닌 세 번째 회사였고
이직 계획이 없으니 직장생활 30년을 마무리하는 사실상 은퇴다.
승진에서 밀린 5년 전부터
언젠가는 올 거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그날이 오고 나니 기분이 영 묘하다.
대기업 부장의 타이틀을 떼고
눈 뜨면 늘 해오던 출근은 하지 않고
이렇게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생겼는데...
들뜬 해방감 속에 여전히
은근한 불안감이 남아있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알랭 드 보통이 말한 <불안>의 원인 중 하나는 피고용자의 '불확실성'이라 했다.
피고용자가 되는 고통에는
고용 기간의 불확실성만 아니라 수많은 작업 관행과 역학에서 오는 모욕감도 포함된다.
대부분의 사업체가 피라미드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피고용자로 이루어진 넓은 밑변은 관리자들로 이루어진 좁은 꼭짓점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보상을 받고 누가 뒤처지느냐 하는 문제는
작업장을 억압적인 분위기로 이끄는 요인이 되며, 이런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불안이 자라나게 된다.
그는 이런 조직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자기 일에서 최고라기보다,
"문명화된 삶에서는 지침을 얻기 힘든 여러 가지 음침한 정치적 기술"에 가장 숙달된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내 경우는 그럼 뭔가.
열심히, 어렵게 그 지침서는 얻었으나
그 음침함을 따르기 싫어했던
아니, 억지로 흉내까지는 내 보았지만 스스로 어색해 포기한 배부른 보헤미안이라 해두자.
다행히 화엄사의 홍매화는 피어 있었다.
추운 겨울에도 사군자의 기품을 오롯이 간직하다가
봄이 되어 그 붉은 꽃과 향기를 은은히 드러내는 자태가 참 곱다.
직장인으로서 나의 지난 시절이
가장 만개하자마자 바로 떨어져 날리는 벚꽃길의 화려함을 쫓았다면
자유인이 된 지금부터는
오래된 사찰 한 구석의 저 매화나무처럼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