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3년 내내 입으라고 헐렁하게 맞춰준 검정 교복에, 교모에, 중학생 가방을 들고 다니던 빡빡머리 애들 시절이었다. 서로 다른 초등학교를 나왔지만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실내에서 놀 수 있는 거리가 별로 없던 때라 ‘아마도’ 요즘 아이들보다는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으리라. 우리가 살던 곳은 대도시라지만 당시는 흙길, 손수레, 소달구지마저도 눈에 보이던 그런 시절이었다. 왕복 1시간쯤은 누구나 걸어 다니던 때. 당연히 나도 1시간 정도 걸어 통학했다. 요즘 애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불쌍하다 어쩌다 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 이상의 호사를 누리는 애들도 없었거니와 걸어 다니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대여섯이 몰려다니며 재잘거리는 자체가 재미있는 놀이였으니까 말이다.
우리 나이로 열네 살, 스스로는 청소년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몸도 마음도 어린이였다. 세상 모든 게 궁금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시절. 통학도 그렇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학교가 동네 안에 있어서 통학이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중학교엘 가니까 1시간 이상의 통학이라는 게 생겼다. 학교생활이야 예나 지금이나 같겠지만 통학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막 입학하고 얼마 안 지난 봄날이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그날도 친구 대여섯과 하교를 하고 있었다.
그날의 화제는 한 친구에게 동생이 생겼다는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가?’
격론이 펼쳐졌다.
1. 다리 밑에서 데리고 온다.
2. 아니다. 큰 새가 물어다 준다.
3. 아니다. 엄마 배꼽에서 꺼낸다.
4. 아니다. 아버지가 사 온다.
5. 아니다. 어떤 할머니가 집으로 갖다 준다.
틀렸어! 아니야! 아닐걸…….
내 기억으로 그날 우리는 아무런 결론도 못 내고 1시간 내내 토론만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모든 의견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동생이 둘씩이나 있는데 잘 봐둘 걸 그랬나?
우리가 의견 일치를 본 것은 부모님께는 절대로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각자 한 번쯤은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혼만 나고 끝났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저절로 알게 돼!” 한참 동안 입씨름만 하다가 제풀에 지친 아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