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일상어로 직조해낸 안데르센의 아름다운 상상은 여러 장르에 영감으로 퍼져나갔다.
<공주와 완두콩>은 널리 퍼진 유사 서사를 재구성한 동화이다. 모럴도 서사도 모호하기에 이 동화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후대에 이르러 안데르센 개인사를 겹쳐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안데르센이 이 작품을 쓴 시기는 세습귀족들이 주도적 지배계층인 근대였다. 유럽의 공고한 계급의식은 효율적인 선민의식 구축을 위해 태생적 우월함을 특히 강조해왔다. ‘블루 블러드’라는 단어에서 유추되듯 잔혹하기까지 한 냉철한 이성과 기민함을 자질로 주장하고 전유함으로써 지배를 넘어선 계급 착취를 신성시한다. 그 자질의 전제란 태생, 핏줄이었기에 부조리한 특권이 당당히 계승될 수 있었다. 이런 계급적 자의식 과잉은 착취는 물론 우생학 같은 폭력을 양산한다. <공주와 완두콩>에서 굳이 원작자가 부여한 의미를 찾는다면 태생적 자질은 타고나는 것이기에 가짜들은 결국 드러난다는 근거 없는 믿음과 안데르센의 개인적인 선망이 어려있다.
로맨스 판타지를 비롯한 창작물에서 일종의 클리셰처럼 쓰이는 나른하고 신경증적인 예민함을 싫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선호는 창작물에 대한 취향일 뿐이다. 21세기 현대인이라면 안데르센의 선망에 응당 뭐라는 거야? 싶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적 의미를 부여해보면 <공주와 완두콩>은 결국 ‘섬세함’을 시각화 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분명 태생적으로 다른 종류의 ‘예민함’이나 ‘기민함’도 존재한다. 이해받지 못하지만 존재하는, 가끔 우연의 기회를 만나 특별한 영감으로 거듭나기도 하는 차이들 말이다.
그러나 그런 차별점이 반드시 무엇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듯 어디서나 특별한 무엇으로 대우받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구차하게 만들어진 예민함을 소셜 포지셔닝으로 활용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시대에선 보호하고 수호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주시야말로 진짜 필요한 예민함 아닐까? 당장의 결과가 좌절뿐이라 해도, 이 평등하지 않은 세상에서 평등을 수호하려 애쓰는 것이 진짜 고귀함이며 현대인의 자세일 것이다.
그간 중복 소개해온 작가는 이전 글로 대신한다. 판본마다 조금씩 다른 표제는 <공주와 완두콩 The Princess and The Pea>으로 통일한다.
#공주와 완두콩, 짐작과는 다른 일들 https://brunch.co.kr/@flatb201/73
#공주와 완두콩, 빈티지 일러스트 https://brunch.co.kr/@flatb201/303
안데르센의 수많은 매트리스 일러스트 중에서도 에드먼드 뒬락의 이미지는 이제 시그니처와 같다. 수직으로 쌓아 올려진 압도감을 누르는 공주의 나른함에는 그녀의 주장대로 비범한 분위기가 감돈다.
#눈의 여왕, 일곱 가지 이야기 https://brunch.co.kr/@flatb201/286
인기만큼 여러 번 개정된 대표작 <안데르센 동화집>의 수록분이다. 윌리엄 히스 로빈슨은 인물들의 예민함에 초점을 맞췄다. 조형적인 레이아웃은 이미지 언어의 강렬함을 과시한다. 특히 잠 못 이루는 공주의 아름다움에는 광기마저 살짝 비치지 않나? 극 중 왕자는 ‘진짜 공주’를 찾기 위해 수백 명의 공주를 찾아다닌다. 그런데 로빈슨이 묘사한 이 장면의 공주들은 너무 어린이의 모습이라 찜찜한 뒷맛을 남긴다.
#눈의 여왕, 일곱 가지 이야기 https://brunch.co.kr/@flatb201/286
골든 에이지의 수많은 일러스트레이터 중에서도 고든 로빈슨은 유쾌하고 환상적인 캐릭터를 즐겨 구사했다. 쨍한 채도의 팬시한 캐릭터가 넘쳐나는 대표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려 보면 그의 <안데르센 동화>는 다소 평이하게 느껴진다. 수록분 <공주와 완두콩>은 산뜻한 채도의 파스텔톤 아래 아기자기한 디테일을 녹여두었다.
남성 창작자들의 장르 독점에도 여성 창작자들 또한 꾸준히 직업적 활로를 모색해왔다. 마가렛 태런트도 커리어 초기에는 수입원 마련을 위해, 후기에는 인기로 인해 상당 기간 캘린더나 포스트 카드 등 스테이셔너리용 이미지들을 작업했다. <안데르센 동화> 삽화들도 대부분 2차 제작이 고려된 이미지들이기에 좀 더 대중 취향의 소프트한 분위기다.
#눈의 여왕, 빈티지 일러스트 2 https://brunch.co.kr/@flatb201/288
작품마다 아름답긴 해도 카이 닐센의 초기작들은 취향 불문 감탄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후기의 작품들, 특히 동적인 구도와 기민한 분위기를 품고 있는 <공주와 완두콩> 같은 작품들은 내내 초기 스타일을 대입해보며 아쉬움을 곱씹게 된다.
#춤추는 열두 명의 공주들, 우리들은 밤새워 춤출 수 있다 2 https://brunch.co.kr/@flatb201/294
#눈의 여왕, 빈티지 일러스트 1 https://brunch.co.kr/@flatb201/287
#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 마음의 바람이 향하는 곳 https://brunch.co.kr/@flatb201/34
워낙도 탄탄한 기본기를 가진 창작자지만 아서 래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눈의 여왕> 같은 고전적인 섬세함뿐 아니라 희화화된 스타일에도 능숙했다. 장르 불문 기본기가 탁월한 창작자들은 어떤 변주에도 능숙하게 대처한다. 그저 모사가 아닌 자신만의 개성을 녹여둔다. 슥슥 쉽게 뽑아낸 것 같은 결과물은 셀 수 없는 꾸준함을 딛고 선 자기 고민의 결과이다. 타고난 재능 운운하며 기본 교육을 폄하하는 자의식 과잉들이 비웃기는 이유기도 하다.
#돼지치기, 빈티지 일러스트 https://brunch.co.kr/@flatb201/302
#눈의 여왕, 빈티지 일러스트 1 https://brunch.co.kr/@flatb201/287
다수의 아동문학 삽화를 남긴 덴마크 일러스트레이터이다.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에서 커리어를 쌓던 시기 발간한 영문판 <안데르센 동화집> 수록분을 단행본으로 발표했다.
다른 대표작 <호두까기 인형>처럼 아르투스 샤이너는 약간 기괴할 정도의 신비함을 즐겨 구사했다. 그래선지 아르투스 샤이너의 어둠과 밤의 이미지에는 유독 풍부한 색감과 질감이 감돈다. <공주와 완두콩>은 다소 평이해 보이지만 밤의 보랏빛 같은 두껍고 육중한 플러쉬 커튼과 모슬린 잠옷의 대비로 강약을 조절하고 있다.
같은 작가의 <돼지치기>와 마찬가지로 검색 이미지 외에는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 1940년대 발행된 선물용 하드커버 전집 일부로 추측된다.
#돼지치기, 빈티지 일러스트 https://brunch.co.kr/@flatb201/302
분량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레슬리 그레이는 모든 장면을 욕심내진 않는다. <공주와 완두콩>은 로열패밀리도 매트리스도 아닌 시종들의 동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왕비의 거만한 꼿꼿함 아래 분주한 시종들은 일개미처럼 보인다. 수직의 매트리스와 수평의 시종들이 만들어 내는 시각적 리듬은 계급 단차처럼도 느껴진다. 창작자의 의도야 알 수 없지만 공고한 계급의식이 어떻게 쌓이고 구축되는지 보여주는 명료한 인포그래픽 같은 일러스트 아닐까?
#춤추는 열두 명의 공주들, 빈티지 일러스트 https://brunch.co.kr/@flatb201/295
옵셋 인쇄의 발달로 선물용 하드커버가 대량 생산된 196, 70년대 출판 시장에서 존스턴 쌍둥이 자매는 가장 인기 있는 창작자들이었다. 자매인 자넷과 앤 그레이엄 존스턴은 이니드 블라이튼 Enid Blyton의 작품을 시작으로 주요 아동 문학 삽화를 골고루 섭렵했고 평생 100여 권이 넘는 단행본을 남겼다. 그중 <백한 마리 달마시안 The Hundred and One Dalmatians, Dodie Smith, 1956>의 삽화는 그야말로 대대적인 인기와 입지의 발판이 되어준다. 소녀 취향으로 폄하되긴 했어도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산뜻한 채도의 컬러 감각으로 작품마다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다.
또 이 두 여성 창작자는 우리가 ‘쌍둥이’라는 단어에 가지는 막연한 로망을 모두 시연한 듯한 인생을 살았다. 예술적 분위기의 부유한 집안에서 쌍둥이로 태어나 서로에게 베스트 프렌드였으며 아름답기까지 했다. 항상 함께 작업한 후 공동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존스턴 쌍둥이에 관해선 추후 작성 예정이라 <공주와 완두콩>만 소개해 보면 본인들의 스타일에 대한 자신감이 확연하다. 워낙도 아름다운 대표작 속에 범상하게 묻혀있지만 특별한 구도나 연출 없이 캐릭터와 매트리스만으로 압도적인 즐거움을 준다. 캐릭터는 우리가 Fairy Tale에 가지는 로망을 그대로 시현하는데 폭포수 같은 매끄러운 흑발을 늘어뜨리고 폭풍우의 밤에 나타난 미녀를 보고 있자면 안데르센의 서사가 꾸려낸 신비함이 시각적으로 체현된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공주의 찌뿌둥한 표정 외에는 딱히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돼지치기>와 비교해보면 좋을 것 같아 올려둔다. (허리 짚은 자세가 책상 물리는 오후의 현대인 같지 않습니까? 끙차)
#돼지치기, 빈티지 일러스트 https://brunch.co.kr/@flatb201/302
@출처/ The Princess and the Pea, Hans Christian Andersen, 1835